지난주 금요일이었다. 수영 선생님이 몇 명에게 다음 시간엔 오리발을 챙겨 오라고 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진도 나가야죠(찡긋)"라는 의미심장한 멘트의 의미를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월요일. 나는 중급반으로 방출(?)됐다. 아직 자유형도, 배영도, 평영도 불안한데... 특히 평영은 같은 초급반 사이에서야 자세가 나오는 편인 듯하다만, 내 입장에선 이제야 조금씩 자세를 알겠다 정도인 상황으로 아직 쉬지 않고 레인 끝까지 갈 수 없다. 그런데 중급반이라니? 이건 정말 승급이 아닌 방출 같은 느낌이다.
중급반은 시작부터 달랐다. 오자마자 자유형 두 바퀴를 시키더니 짧은 설명 후 다시 세 바퀴, 배영 한 바퀴, 뭐 쉴 새 없이 돌아간다. 오리발은 처음 끼워봤는데 확실히 물살을 헤치고 나가는 힘이 달랐다. 그러나 오리발 너무 안 좋은 것(a.k.a. 싼 것) 사 왔다고, 이런 오리발은 그냥 수영할 때와 별 차이도 없을 거라며 선생님은 이 오리발은 당근에 팔고, 다음 시간까지 좋은 오리발을 다시 사 오라고 말했다. 난 지금도 변화가 느껴지는데, 여기서 더 좋은 오리발이면 얼마나 빨리 나간다는 걸까. 수영이 끝난 오후, 좋은 오리발을 당근으로 구할 수 있을까 싶어 뒤져보는데 오전에 같이 중급반으로 넘어온 옆사람의 것과 똑같은 오리발이 당근에 올라와 있다. 아마 그 사람이 올린 것 아닐까. 아무런 입질의 흔적도 없다. 나는 조금 더 기다렸다 올려봐야지.
아무튼 오리발을 끼니 더 빠르게 멀리까지 나아가긴 하지만 그만큼 몸에도 물의 무게가 느껴진다. 수영을 시작한 뒤로 근력 운동을 하나도 안 하고 있는데, 이대로는 도저히 진도를 따라갈 수 없으리란 걱정이 커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 근력 운동을 하지 않겠지. 그리고 여기 모인 이 많은 사람들이 다 근력 운동을 병행하고 있으리란 생각도 안 든다. 대체 다른 분들은 이 속도와 운동량을 어떻게 따라가는 걸까. 다만 거친 숨을 헉헉 몰아쉬면서 죽을 것 같아서 몸에 힘이 조금씩 더 빠지고, 더 힘을 안 쏟아붓는 쪽으로 자세가 조금씩 바뀌어 나가는 것 같은데, 왠지 자연스럽게 이렇게 교정이 또 되는 건가 싶기도 하다.
충동적으로 제주도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좀 여유롭게 제주도를 다녀올까 싶어서. 사실은 올해까지 안 쓰면 사라지는 마일리지가 꽤 된다고 대한항공에서 자꾸 이메일이 날아와서. 소멸 예정 마일리지로 먼 해외에 나갈 정도는 아니었는데 제주도라면 왕복도 가능했다. 그런데 마일리지 항공권이 이렇게 인기 많은 줄은 몰랐네. 내가 가능한 날짜마다 표가 없어서 결국 늦게 갔다 일찍 돌아오는 표를 끊어야 했다. 백수라서 언제나 여유로운 표를 살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여전히 쉽지 않네. 다들 무슨 일로 이렇게 제주를 가는 걸까. 휴가를 내서 놀러 가는 거라면 평일에 이렇게 휴가를 내는 게 어렵진 않았던 걸까.
이것저것 다양한 시도도 많이 하고, 뭔가 많이 배우기도 하는데, 딱히 취업과 직접적인 연결이 되는 것들이 없다. 퇴사 4개월 차. 전직을 할 것이 아니라면 다시 회사에 들어가야 하나 싶은 불안한 마음이 조금씩 들어 채용 사이트를 자주 뒤적이고 있다. 사실 두 군데 정도 이력서를 내었는데 한 군데는 연락도 안 오고, 한 군데는 면접에서 떨어졌다. 여전히 나는 실무가 마음이 더 편할 것 같은데 내 연차에 경력은 이제 거의 관리자 급을 필요로 한다. 다행인지 마지막 경력이 팀장으로 마무리되었는데, 뭐 하나 잘하는 것 없이 중급반으로 올라온 느낌이랄까. 역시, 조금 더 버텼어야 하나. 그 와중에도 수영을 일 년만 일찍 시작했으면 초보 팀장의 분투기와 엮은 어떤 콘텐츠가 될 수 있었으려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