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보게 신작 소개] 보드게임 <크베들린부르크의 돌팔이 약장수 대결>
지난달부터 코리아보드게임즈의 협찬을 받아 보드게임 신작을 체험하고, 콘텐츠를 제작해 올리는 크리에이터로 활동을 하고 있다. 4월에 지원받은 게임은 <크베들린부르크의 돌팔이 약장수 대결>. 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무슨 이름이 이렇게 길어?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보드게임을 조금 아는 사람들이라면 '오~ 이거?' 하며 반가움을 표시할지도 모르겠다. 이 게임은 2018 독일 올해의 게임상을 수상한 <크베들린부르크의 돌팔이 약장수(이하 돌팔이 약장수)>의 2인용 버전이다. 독일의 번성한 무역도시 크베들린부르크에 등장한 돌팔이 약장수들의 약 장사 경쟁을 테마로 한 게임으로, 출시 이래 꾸준한 인기를 얻으며 드디어 2인용 게임인 대결이 새롭게 출시 됐다. 4월의 신작 게임으로 여러 가지 후보들이 있었는데 굳이 이 게임을 고른 건, 그렇게 유명한 줄 알면서도 아직까지 원작게임을 못 해봤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보드게임을 다시 한 지 얼마 안 되었다고 적었었지만, 어쩌면 나는 이 세계의 화석... 아니 냉동인간쯤 되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한 십몇 년 잠들었다가 갑자기 눈을 떠버린, 과거의 기억에 머물러 있는 냉동인간. 나는 우리나라 보드게임의 1세대라고 불리는 2000년대 초반에 보드게임을 처음 접했다. <루미큐브>, <카탄>, <카르카손>, <클루> 같은 게임들을 한참 했던 기억이 난다. 조금 더 깊게 보드게임을 즐기고 싶은 마음에 아르바이트도 하고, 카페가 문 닫으면 함께 일하던 친구들과 밤을 새워가며 게임을 하기도 했었다. 최근 다시 출시되며 주목을 받은 <푸에르토리코>로 대표되는 알레아 빅박스 시리즈도, 세계 2차 대전을 다루는 <액세스 앤 얼라이즈>도 이때 처음 해봤다. 그러나 당시 함께하던 친구들과의 인연이 그리 오래가지 못했고 나의 보드게임 생활도 곧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말하자면 냉동상태에 들어간 것이다.
최근의 급격한 지구 기온 상승과는 전혀 관련이 없겠지만, 아무튼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몇 년 사이에 얼음이 급격하게 녹아버렸다. 냉동 상태에서 깨어난 나에게 보드게임은 여전히 가장 즐거운 취미. 그러나 내 기억이 아직 <카탄> 등등에 머물러 있는 사이, 당연하겠지만 너무 많은 훌륭하고 재밌는 보드게임들이 등장해 있었다. 새로운 시대에 깨어난 나는 이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열심히 새 게임을, 그리고 내가 잠들어 있는 사이 등장한 수많은 명작들을 배우느라 벅찬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참 카페에서는 <테라포밍 마스>와 <아크노바> 같은 게임이 많이 플레이되고 있었다. 보통 웨이트 3점대 정도 되는 게임으로 초심자들에게 바로 추천하지 않는 편이지만, 나는 조심스러운 초심자의 표정으로 바로 그 단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다행히 아직 내 몸에 남아있는 보드게임 근육들이 잘 작동해 주었고, 나는 곧 빨리 배우고 잘 익히는 꽤 빠릿한 초심자가 될 수 있었다.
정석대로라면 <도미니언>에서 덱 빌딩을 배우고 <테라포밍 마스>로 넘어가야 했을 순서가, 나는 <테라포밍 마스>를 먼저 배우고 뒤늦게 <도미니언>을 체험해 보는 방식으로 뒤집혔다. 굳이 기본형의 게임을 돌아가서 체험해 본 건 명색이 보드게임 클럽을 운영하는 클럽장으로서 구색을 맞춰야겠다는 욕심에서였으니, 이쯤 되면 이제는 냉동인간보다는 돌팔이에 가까운 건지도 모르겠다.
<돌팔이 약장수 대결>이 비슷하다. 게임 속 약장수는 제대로 된 순서에 맞추어 약을 만들 줄은 모르는 그야말로 돌팔이다. 그저 화려한 볼거리를 내세워 사람들을 가판대로 끌어모으면 자기 할 일은 끝난 셈이다. 만든 약이 얼마나 효능이 있는지는 관심 없다. 중요한 건 그 약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홀렸느냐일 뿐. 순서대로 보드게임에 빠져드는 재미를 알려주기보다, 지금 당장 핫하고 재밌다는 게임 (그것도 대체로 파티파티한 게임)을 들쭉날쭉 가져와서 클럽원들을 현혹시키는 나와 묘하게 오버랩 된다면 그저 나의 과몰입일까.
아무튼 그래도 사람을 잘 끌어 모았다면, 그리고 그들이 약에 만족했다면 될 일이다. 플라시보라도 효과는 효과인 셈이니까. 참고로 <돌팔이 약장수 대결>은 부러 보드게임 경험이 거의 없는 친구를 데리고 해 봤다. 운빨 요소가 강한 편으로, 초심자와 숙련자가 함께 해도 밸런스가 잘 맞는다는 설명 때문이었다. 게다가 게임 속에는 불리한 상황의 플레이어를 지원해 주는 장치가 꽤 많이 들어 있어서 2인용 게임으로 더욱 좋았다. 여럿이 하는 게임도 그렇지만, 특별히 둘이서 하는 게임에서 한쪽이 너무 잘해버리면 다른 한쪽이 전의를 상실하고 마는 건 시간 문제다. 내 돌팔이가 손님을 하나 끌어오면 상대의 돌팔이가 약재를 하나 얻게 되는 등, 마지막까지 플레이어 간의 적절한 견제와 균형을 고려한 시스템을 보고 있자니 이 게임이 왜 이리 오랜 시간 명작의 자리를 지켜오고 있는지 알 것도 같다.
<돌팔이 약장수 대결>의 핵심인 약 만들기는 주머니 속에 든 약재 토큰을 랜덤으로 하나씩 꺼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말하자면 <도미니언>의 덱빌딩 시스템에서 가져온 일명 '백빌딩(덱deck 대신 백bag)'인 건데, 보통의 덱빌딩처럼 손에 든 몇 개의 패를 보고 순서를 정해서 꺼내놓을 수 없다는 게 아찔하다. 필요할 때 필요한 약재가 나오지 않고, 엉뚱한 순간에 솥이 터져버리기도 해서 역시나 초심자니 숙련자니 하는 감투가 크게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대결>을 몇 번 해보고 나니 빨리 더 기본판 <돌팔이 약장수>도 하고 싶다. 아, 이번에도 순서가 꼬였다. 돌팔이라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아직 솥은 터지지 않았으니 괜찮다.
*<크베들린부르크의 돌팔이 약장수 대결> 보드게임은 코리아보드게임즈를 통해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