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아남을래 같이 좀비가 될래

[코보게 신작 소개] 나 혼자 살아남기 : 좀비 편

by 배짱없는 베짱이

*본 리뷰는 코리아보드게임즈에서 제품을 제공받아 작성하는 글입니다.


개인적으로 좀비물을 참 좋아한다. 가장 완벽한 이 세상의 종말 시나리오라면 역시 인간끼리 서로 물고 뜯는 모습 아닐까. 정확히는 세상의 종말까진 아니고, 그냥 현생 인류의 종말이겠지만. '죽었지만 죽지 않는 사람'들의 존재 자체도 그렇지만, 상대를 물어뜯음으로써 (굳이 말하자면) 다른 층위에 있던 존재를 자신과 동일한 상태로 만들어버린다는 메커니즘이 어쩌면 이 시대에 좀비가 더 환영받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워낙에 깨끗한 존재를 두고 못 보고, 같이 올라가려는 노력보단 어떻게든 상대를 끌어내려 상대적 우위라도 차지하려는 시도가 익숙한 세상이니까.


아무튼, 좀비가 창궐했든 전쟁이 터졌든 마침내 세상의 종말 비슷한 것이 닥쳐왔을 때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이미 수많은 영화와 소설들이 아수라장이 된 세계 속에서 예고된 종말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지만, 실제로 내 주변에선 의외로 차라리 빨리 죽어버려서 더 끔찍해지는 세상 꼴 보기 싫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과연 나는 어떨까. 위험한 상황에서 쉽게 포기하기보다 살 방법을 고민하는 서바이벌에는 흥미가 있지만, 한 번씩 그런 행위 자체가 어떤 의미를 가질까에 대한 의문이 들곤 한다.


보드게임 중에도 좀비를 테마로 한 것이 몇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게임은 <데드 오브 윈터>인데, 좀비 떼가 창궐한 겨울, 살아남기 위한 생존자들의 사투를 아주 처절하게 구현해내고 있는 작품이다. 몰려오는 좀비 떼로부터 인간 공동체가 살아남아야 한다는 점에서 협력 게임이지만, 그 안에는 개개인이 성공시켜야 할 은밀한 목표가 따로 있다는 데서 경쟁 게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이 게임은 플레이어들을 자주 딜레마 상태로 빠뜨리곤 한다. 갑작스레 발생한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그 선택의 결과는 나의, 그리고 우리의 생존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웬만한 영화보다 심오하고 싶도 깊게 풀어내는 이 스릴을 멤버들과도 즐기고 싶어 기어코 이 게임도 사버리고 말았지만 아쉽게도 아직 클럽 멤버들과는 시도해보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좀비를 테마로 한 가벼운 새 게임의 출시 소식을 들었다. <나 혼자 살아남기 : 좀비 편>. 카드로 구성된 게임이고 플레이타임이 10분이라는 데서 이미 좀비는 그저 테마를 거들뿐,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보드게임이리란 생각이 들었다. 뭐 이것도 나름대로 나쁘지 않다. 게임을 거듭할수록 게임 속 테마에 관심을 가지는 클럽 멤버가 많아지는 중이었기에, 보드게임의 테마가 어디까지 다양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기 좋을 것 같았달까.


아무리 가볍다고 말했지만, 그럼에도 <나 혼자 살아남기 : 좀비 편>은 게임 속에 테마를 매우 잘 녹여냈다. 사방에 출몰한 좀비 떼로 점점 생존의 가능성이 희박해지는 도시에서, 보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 나를 구하려 온 헬기에 몸을 실어야 한다. 특히 제목부터가 스포일러인 셈인데, 이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나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최대 4명이 할 수 있는 게임인데, 최초의 생존자가 한 명 나오는 순간 게임은 끝난다. 나머지의 참가자의 생사여부 따위는 관심사가 아니다. 그러니 플레이어는 상대의 보급품을 뺏기도, 앞서 나가는 상대를 좀비 떼에 밀어 넣기도 하면서 최초의 생존자가 되기 위한 사투를 벌여야 한다.

운이 나쁘면 좀비에게 당해 플레이어도 좀비가 되어 버릴 수 있다. 좀비가 되면 그때부터 '생존'이었던 목표는 '물기'로 바뀐다. 남아있는 생존자들을 열심히 물어뜯어 모두를 좀비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고민할 것 따위 없는 참으로 잔인한 게임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플레이를 하다 보면 실상은 꽤나 귀엽고 개구진 게임이라는 것도 금방 알게 된다. 카드게임이라는 데서 오는 단순성과 휴대성도 좋고, 카드의 일러스트도 꽤나 재미있다. 생존을 향해 나아가는 길마다 내 운을 시험해 보아야 하는 랜덤 요소는 적절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바로 조금 위에 고민할 것 없는 게임이라고 적긴 했지만, 사실 이 게임에도 미묘한 딜레마가 존재한다. 일단 이 아수라장 속에서 혼자 살아남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최초이자 최후의 생존자가 되기 위해선 상대를 위험에 빠뜨려야 하는데, 그러다 상대가 좀비가 되어버리면 내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가 그만큼 늘어버린 셈이다. 우리도 연달아 4번의 게임을 하는 동안 생존자는 딱 한 번 나왔다. 나머지 세 판은 모두가 좀비가 되는 결말을 맞이했다. 그렇다고 내가 하고 싶다고 일찌감치 좀비가 되어 좀비플레이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인생은 90%가 운이라던가. 어쩌다 운 좋게 내가 바로 그 유일한 승자가 될 수도 있는 거니까, 언젠가 아포칼립소의 시대가 오더라도 일단 쉽게 포기는 하지 말아야 겠다. 좀비가 등장하는 바람에 이야기가 너무 진지해졌다. 아무튼 웨이트 1점대. 가볍고 색다른 분위기의 카드게임을 찾는 사람들과 함께 해볼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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