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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짱없는 베짱이 Jul 18. 2018

19. 아타카마, 그곳은 별보다 눈

2017.5.3.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 칠레(D +86)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외계인 도민준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라 말했다는 아타카마 사막. 일 년 내내 비가 내리지 않아 지구 상에서 가장 건조한 곳, 그래서 또한 지구 상에서 하늘의 별이 가장 잘 보인다는 곳이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역시 별을 기대하고 이곳에 온다. 그러나 그 밤, 우리는 별만큼이나 눈을 보고 싶었던 것 같다.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는 칠레 북부에 위치한 아주 작은 마을이다. 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지대라는 이 곳에는 그 모습이 마치 달의 표면과도 같아 달의 계곡이라 이름 붙여진 곳도 있다. 그래서일까 이 도시는 온통 노란색이다. 흙길, 흙벽돌, 모래바람, 저 멀리 보이는 산들도 모두 황량한 황토빛으로 가득한 곳.  

그렇다면 아타카마 마을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풍경이란 그 낮게 깔린 노란빛의 느낌이어야 할 텐데, 왠지 딱 하나만 고르자면 그건 따로 있다.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싼 설산. 이건 지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풍경에 대한 이야기다. 끝없이 펼쳐진 마른 사막 너머, 넓어진 시야 때문인지 이곳에선 저 멀고 먼 곳에 있는 산의 모습이 언제 어디에 있건 눈에 들어온다. 그 언젠가 불을 뿜는 화산이었다는 산들의 꼭대기에 이제는 녹지 않는 만년설이 하얗게 쌓여있다. 마을에 어둠이 내려 모든 노란빛을 덮어버린 시간에도 저 멀리 사라지지 않는 풍경 속의 만년설은 여전히 녹지 않고 어둠 사이에서도 반짝인다.


여기에도
여기에서도
또 여기에서도 보이는 설산


카우치서핑으로 묵었던 집은 시내에서도 조금 벗어난 곳으로 대문을 열면 그 앞에 바로 광활한 평지가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풍경의 끝에도 어김없이 아스라이 눈 덮인 설산이 있었다. 내가 떠나던 날 호스트들이 내게 그 설산의 모습을 그려 선물로 주었을 정도로 그 풍경은 그곳 사람들에게 아주 가까운 것이었다. 하늘을 수놓은 별들만큼이나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그 산들의 모습이 어느새 익숙해질 때쯤 페루를 떠나 온 W와 M이 도착했다.

나와 함께 먼저 아타카마로 온 P까지 합쳐 동행은 다시 4명이 됐다. 그제야 미뤄놨던 달의 계곡 투어를 급하게 다녀오는 등 슬슬 이곳을 떠날 준비를 했다. 그 준비란 것에는 이곳의 모습들을 아쉽지 않을 만큼 충분히 사진으로 남겨놓아야 한다는 욕심도 있었다. 그래서 이날 밤, 잠들지 못하는 M과 나는 살짝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섰다.

가지고 있던 디카는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야 샀던 나의 첫 번째 카메라이기도 한데, 아직도 그 기능을 다 익히지 못한 상태였다. 심지어 한 달여 전 쿠스코를 떠나오던 날, 당시 함께 있던 W가 밤에 별 사진 찍기 적당할 것이라고 맞춰 준 수동 모드를 내내 그대로 들고 다녔기에 마지막 코스였던 우유니에서 별 사진을 겨우 찍을 수 있던 나였다. 이곳은 이제 슬슬 보름을 향해가는 달. 더 밝아진 하늘과 달라진 풍경. 그리고 밤하늘 별 사진에 추가된 하나의 미션. 늘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싼 그 만년설을 별과 함께 꼭 담고 싶었다.

 

바로 이 풍경을 어둠이 내린 뒤에도 별과 함께 남기고 싶었다.


깜깜해진 도로 맞은편 황량한 평야, 그곳에 준비된 무대라도 되는 듯 휑하니 서있는 한 그루의 나무로 갔다. 그 아래는 언제 버려졌는지 모를 고무 타이어가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피곤하다고 따라 나오지 않은 W가 추천해 준 John Legend의 ‘Under the Stars’라는 노래를 반복 재생으로 틀어놓고 누워있는 타이어 위에 디카를 올렸다. 그나마 나보다 조금은 더 카메라를 다룰 줄 아는 M과 함께 조금씩 조리개, 초점 등을 조절하며 셔터를 눌렀다.  

그러나 노래가 10번이 넘게 재생이 되도록 우리는 만족할 만한 사진을 찍지 못했다. 패딩으로 꽁꽁 싸매고 나왔는데도 손 끝부터 시작된 추위는 점점 온몸으로 퍼졌고, 밤이 깊어갈수록 인적도 없는 이곳이 무섭기도 했다. 결국 이쯤에서 그만하자고 발걸음을 돌리려는데 디카 모니터 쪽의 나사 하나가 어느새 빠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밤하늘만 찍었다면 모르겠지만, 굳이 설산도 같이 나오게 찍겠다며 각도 조절을 한답시고 틸트형 모니터를 벌려 받침대 대신 쓰다가 그런 모양이었다. 그나마 움직인 데라곤 타이어 주변밖에 없었고 바닥은 온통 흙이었기에 핸드폰 후레시를 비추면 금세 반짝하고 찾을 줄 알았지만 워낙 작은 것이라선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가자. 이 넓은 사막에 내 물건 하나 정도는 두고 가도 괜찮겠지.”


나의 게으름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한국에 돌아온 지 일 년이 가까워오는 지금까지도 내 디카는 그때 잃어버린 나사를 채우지 못한 채 남아있다. 어쩌면 일부러 수리를 하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빠져버린 나사 구멍이 속상하기보단, 그 빈 자리를 볼 때마다 이제는 꿈같아진 내 여행이, 내가 좋아했던 낯선 풍경들이, 어딘가에 남아있을 없어지지 않는 현실이 되어 떠오르기 때문이다. 사라진 나사가 선명하게 남은 어떤 흔적의 연결고리가 되어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과학자들이 찾아냈다는 별의 움직이는 소리를 담은 노래. 등 뒤로 밝은 달이 떠있었는데도 빛을 잃지 않은 채 쏟아질 듯 하늘을 꽉 채운 별들. 그리고 그 동네에서의 모든 순간을 함께 했던 설산의 풍경들.  


잘 찍지 못했다는 그 사진들 중 그나마 잘 나온 것 같은 사진을 꼽아봤다.


아타카마에 간다면 놓치지 말고 보라고 하고픈 멋진 풍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이야기가 조금 샜다. 마침 얼마 뒤 이 마을을 방문하게 될 친구가 있어 그곳에 남아있을 호스트들에게 내가 찍었던 사진 몇 장을 뽑아 주려다 보니 어김없이 떠오른 기억들이었달까. 인화한 사진들에도 온통 저 설산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아타카마에서 내가 만난 모두가 사랑했던 그 모습이.

언제나 그곳에 있는 것은 그래서 가끔은 더 눈에 안보이기도 하는 것 같다. 그곳엔 어딜 보아도 늘 있어서 알기 어려울 뿐 별만큼이나 아름다운 풍경이 있다. 조금만 시선을 멀리 저 지평선의 끝을 보면 거기에 잡히진 않겠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설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을 거다. 은하수만큼이나 아름답고, 별빛만큼이나 반짝이는 그 눈들을 잊지 말고 기억해주길.



그런데 결국 건진 사진은 없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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