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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짱없는 베짱이 Jul 21. 2018

20. 아르헨티나의 북쪽으로 가는 길

2017.5.5. 우마우아까, 아르헨티나(D +88)

땅고(Tango)와 축구 그리고 이과수 폭포. 영화에서나 봤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화려한 분위기. 딱 이 정도가 아르헨티나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였다. 물론 지금도 이 이미지들은 유효하지만 이제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신기하게도 그런 깨달음은 대체로 애초에 알지 못했던 장소나 여정을 갑작스레 소화해내는 순간 찾아왔다. 계획은커녕 내 여행 지도 속엔 하얗게 백지로만 남아있던 아르헨티나 북쪽을 여행하게 되었을 때처럼 말이다.

 



우리는 왜 남미에 갈까? 하고 많은 여행지 중에 왜 굳이 그 오랜 시간과 비용을 들여가며 지구의 반대편까지 가는 걸까? 이유를 찾자면 남미로 향하는 그 많은 여행자의 수 만큼이나 제각각이겠지만 나만 놓고 말하자면 이미 밝혔듯이 마추픽추가 보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이곳에서 만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면, 누군가는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인생 사진을 찍는 것이 목표였고, 누군가는 안데스 산맥의 이곳저곳을 누비는 트레킹이 하고 싶었고, 누군가는 단지 이제 남은 여행지가 이곳밖에 없었고, 또 누군가는 그저 자유롭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요즘처럼 자유롭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많았던 적이 또 없는 것 같다. 나 역시 목표였던 마추픽추를 일찌감치 끝낸 뒤론 그 해방감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느끼고 싶어 정처 없는 여행길에 올랐던 것 아닌가. 마침 신기하게도 남미에서 내가 두 번째로 동행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된 이 인연들은 다른 것보다 그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여행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모두 이후에 대한 계획을 세워놓은 것이 없었고 그때그때 그 자리에서 가고 싶은 곳, 갈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그런 4명이 만나 처음으로 함께 움직인 목적지는 아르헨티나 북쪽에 있는, 딱히 할 일은 없지만 예쁘고 오래 머물기 좋다는 작은 마을 우마우아까(Humahuaca)였다.


칠레의 아타카마 정류장에는 아르헨티나의 북부로 향하는 버스가 2~3대 정도 있다.


볼리비아에서 온 우리를 내려줬던 칠레 아타카마의 버스 정류장에는 아르헨티나 북쪽의 후후이 주(州)로 넘어가는 버스가 2~3대 정도 있었다. 조금씩 가격이 다르고 출발하는 날짜와 시간도 달랐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괜찮다는 안데스마르 버스를 예약했다. 어디서나 흥정이 가능한 남미답게도 맨 처음 물어볼 땐 2만 페소, 4명이 탈거라니까 18,000페소를 부르더니, 막상 예약을 할 땐 아무것도 묻지도 않았는데 17,500페소라기에 흥정도 없이 콜을 외쳤다.

버스는 국경을 넘어 아르헨티나 후후이 주(州)의 주도인 산살바도르 데 후후이(San Salvador de Jujuy)를 거쳐 여행자들에게 많이 알려진 살타(Salta)까지 가는 버스였다. 그러나 우리는 중간의 푸르마마르까(Purmamarca)라는 작은 도시에서 내렸다. 이곳에서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는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걸어서 15분이면 온 동네를 다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작고 먼지가 날리는 황량한 마을 푸르마마르까. 바로 몇 시간 전 국경을 통과하며 여권이며 짐 검사 등을 했기에 망정이지, 이곳이 아르헨티나라는 새로운 나라임을 알아볼 수 있는 단서는 어디에도 없었다. 언어도 똑같고, 사람들의 생김새도 비슷하고, 심지어 계속 보아온 잉카의 느낌 물씬 풍기는 분위기까지. 그나마 조금 더 내륙으로 들어오며 높아진 듯한 산세, 그리고 더 이상 쓸 수 없는 페루의 솔(sol)과 칠레의 페소(peso) 만이 우리가 다른 나라에 왔음을 실감시켜줬다. 심지어 이 작은 마을엔 환전소도 ATM도 없어 슬슬 배가 고파오는 시간에도 우리는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P가 미리 챙겨둔 아르헨티나 페소가 있어 목적지까지 가는 다음 버스표를 겨우 살 수 있었다.  

이곳에서부터 가장 끝으로는 볼리비아의 국경까지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마이마라(Maimara), 틸까라(Tilcara), 유끼아(Uquia), 우마우아까 등의 작은 도시들이 30분~40분 정도의 간격으로 떨어져 있다. 푸르마마르까를 포함해 북부의 이 지역들은 모두 페루나 볼리비아처럼 과거 잉카 제국에 속해있던 곳이었다. 무지개 빛의 칠색산이라든가 잉카의 유적지 등 마을마다 여행자들의 흥미를 돋울만한 다양한 특징이 있는데도 이곳을 찾는 여행객이 많지 않았던 것은 워낙에 마을들이 작은 데다 아래쪽의 큰 도시인 살타로부터 운영되는 당일 투어 등이 많기 때문이었다.  

저녁 6시가 넘어서 우마우아까로 올라가는 버스를 탔다. 시내 통근버스 같은 느낌의 버스에는 퇴근길인 듯한 동네 어른들, 학교를 마치고 혹은 옆 동네 놀러 왔다 돌아가는 듯한 아이들로 만원이다. 짐을 어떻게 올렸는지 기억도 안 나게 버스에 끼어 탔다. 낯선 동양인에 대한 관심은 이곳에서도 여전해서 불편한 자세였음에도 쉴 새 없이 버스 안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 우리 아빠 정도의 나이 때로 짐작이 되는, 푸르마마르까에서 일을 마치고 틸까라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던 파블로 아저씨는 내 이름은 물론 누가 지어준 이름인지 그 뜻은 무엇인지 등을 끝도 없이 물었다. 결국 성사되지 못했지만, 나중에 틸까라에 오면 꼭 또 보자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환전소도 없으면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것같은 각종 공예품 상점만 가득했던 작은 마을 푸르마마르까. 알고보니 이곳은 다른 큰 도시에서부터 당일치기 투어로 많이 오는 동네였다.


생각해보면 한때의 내겐 여행을 간다면 모든 계획을 철저하게 세워놓고, 교통편이나 숙박 장소도 미리 다 정해놓고 그대로만 움직여야 마음이 놓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건 낯선 장소에 대한 불안함 때문이기도 했고 더 많은 것을 보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랬다면 이렇게 흙먼지가 날리는 작은 도시에서 통근길 버스에 캐리어를 싣는 일은 절대 없지 않았을까. 물론 처음 만난 아저씨에게 내 이름의 뜻을 설명하기 위해 스페인어로 머리를 굴리는 일도 없었을 거다. 그리고 내가 알고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고 넓은 세상이 있다는 걸 지금처럼 온몸으로 깨닫지도 못했을 것만 같다. 애초에 계획이 없던 길, 그래서 조금은 더 힘들고 복잡하지만 언제부턴가 자꾸 그런 길에 들어선다. 그런데 계획한 것을 볼 때 만큼이나 가끔은 그 이상 재밋는 것들이 많다. 예상치 못했던 그 길은 늘 생각보다 가볼만한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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