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보게 신작 소개] 텀블링 몽키
*본 리뷰는 코리아보드게임즈에서 제품을 제공받아 작성하는 글입니다.
파티게임의 원조, 추억의 게임 <텀블링 몽키>가 돌아왔다. 때는 2000년대 중후반, 내가 보드게임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로 돌아간다. 당시 <루미큐브>나 <카탄> 같은 가벼운 전략게임이 소개되며 보드게임의 붐을 주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편에선 <젠가>와 <할리갈리> 같은 파티게임의 인기도 빼놓을 수 없었다. 1분이면 설명이 끝나는 간단한 룰, 플레이를 거듭할수록 터져나가는 도파민. 아무리 회전율이 빠르다 해도 하도 찾는 테이블이 많으니 보드게임 카페마다 <젠가>와 <할리갈리>를 기본 10개씩은 준비해놓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여기서, <젠가>도 <할리갈리>도 다 해봤으니 새로운 파티게임이 없는지 찾는 사람들에게 나가는 다음 타자가 보통 <텀블링 몽키>였다.
길게 뻗은 투명한 노오란 몸통과 꼭대기에 달려 있는 초록의 야자나뭇잎. 나무의 몸통을 관통하며 어지럽게 꽂혀있는 색색의 가느다란 나뭇가지들은 눈으로 보기만 해도 즐거워지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그 나무속을 가득 채운, 꼬리가 크게 말려 있는 원숭이 무리들. 색색의 나뭇가지를 지지대 삼아 저들끼리 얽히고설켜 지금이야 나무에 잘 매달려 있지만 곧 땅바닥으로 떨어져야 하는 이 녀석들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다. 하나씩 몸통에 꽂힌 나뭇가지를 제거해 나가며 기어코 이 원숭이들이 바닥에 다 떨어져야만 끝나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한창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에도, 실은 지금도, 파티게임류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특히 내가 처음으로 보드게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던 연신내 카페에서는 알바마다 닉네임으로 명찰을 달아 줬는데, 그때 내 닉네임은 '뿅망치 공포증'이었다. 나는 <루미큐브>나 <카탄>처럼 시간을 가지고 차분히 진행되는 게임들은 곧잘 했지만 파티게임류에서는 영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으니, 게임에 벌칙으로 돌아오는 뿅망치 벌칙은 으레 내 몫이었다. 이제 좀 그만 맞고 싶다며 <젠가>에서도 <할리갈리>에서도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내가 다음 순서로 가져오는 게 이 <텀블링 몽키>였다.
<텀블링 몽키>는 굉장히 단순한 게임이지만, 꽤나 잔머리를 잘 굴릴 수 있는 게임이기도 하다. 나뭇가지를 뽑으며 손을 조금만 잘 놀리면 바닥에 떨어져야 할 원숭이들을 다른 나뭇가지에 옮겨 놓을 수 있다. 주사위를 굴려 운만 좋으면 내 차례에 나뭇가지를 뽑지 않고 지나갈 수도 있다. 마침 매달려 있는 동물이 원숭이라니 뭔가 잔머리와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또 어떻게든 내 실수와 잘못을 잘 모면해 보겠다며 머리를 굴리는 요즘 사무실의 내 모습 같기도 하다.
이제 연말도 코앞이니 마무리되는 프로젝트가 많아져설까, 한동안 힘들었던 시간들이 조금씩 지나가고 있다. 여전히 또 실수한 것은 없는지, 잘못 뽑은 나뭇가지는 없는지 걱정의 걱정은 사라지지 않고 있지만 뭐랄까 조금씩 벗어나는 스킬이 늘어나고 있다. 이직하고 한동안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분명 다른 분야의 새로운 일을 하겠다고 왔으면서도 그 안에서 실수 하나 없으려던, 틀린 것 하나 없으려던 나의 오만함이었다. 당연히 실수도 할 수 있고, 모르는 것도 있을 수 있는데 스스로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걸, 아니, 어떤 게임은 원숭이가 모두 나무에서 떨어져야 끝나기도 한다는 걸 왜 모르고 있었을까.
십몇 년 전 모습 그대로 알록달록한 모습으로 내게 온 <텀블링 몽키>는 무채색 느낌의 환의 사무실에 선물로 가져다주었다. 개구진 표정으로 원숭이가 이리저리 매달린 알록달록 야자나무가 한 그루 놓이니 사무실이 한결 화사해 보인다. 무엇보다, 하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해보라고, 떨어져도 게임일 뿐이니 괜찮다고, 다시 하면 된다고 말해주는 내 친구를 닮은 것 같다.
내년에도 나는 수많은 실수와 잘못을 저지를 예정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올해처럼 괴로워하진 않으려고 한다. 가벼운 파티게임처럼, 지더라도 뿅망치 한대로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그런 나날들처럼, 떨어져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그런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