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짱이 다이어리] 2025.11.04의 글
토요일엔 기차를 타고 수원에 다녀왔다. 옛 경기도청사에서 열리는 무려 기네스북에도 등재된 세계 최대 규모의 보물찾기가 열린다고 했다. 서울역에서 친구를 만나 맥모닝을 사들고 오랜만에 여행하는 기분으로 기차에 올랐다. 마침 날씨도 화창하니 야외 보물찾기 하기 딱 좋은 날이었다. 거진 네 시간을 쉴 새 없이 준비된 게임을 해치우고 수원 화성에도 잠시 발을 담갔다가 저녁으론 수원왕갈비통닭을 먹었다. 오랜만에 하루가 참 알차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요일엔 코보게에서 진행하는 신작 게임 설명회에 도우미로 참석했다.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며 얻을 수 있었던 기회다. 그러나 내가 방문한 일요일 오후는 사실상 체험 손님이 적어 그냥 같이 게임하러 놀러 간 셈이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데리고 왔던 엄마와, 머리가 하얗게 세어서도 게임을 배우고 싶은 열정 가득한 엄마를 모시고 온 중년의 딸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어떤 사람들이 게임을 배우러 여기까지 올까 내심 궁금했는데 둘 다 내 상상 속엔 없던 모습이다. 어쩌면 어린 아들의 엄마와 늙은 엄마의 딸과 나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비슷한 또래 여성들의 서로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좀처럼 마주칠 일 없을 것 같은 세 방향의 삶이 마침 마주한 공간이 게임을 배우는 자리라니, 나는 그 우연이 참 묘하고 또 귀하게 느껴져 다음 기회에도 할 수 있다면 또다시 도우미로 참여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것까지 기록에 남겨야 하나 고민이 되지만, 부끄럽게도 일요일엔 또(?) 출근을 했었다. 보드게임 도우미로 가기 전 3시간 정도,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아무래도 지난주에 다 못 끝낸 원고가 불안하여 다른 낮 일정을 포기하고 들렸던 것인데,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끝을 정해 놓고 집중해서 인지 그제야 꼬여있던 문장의 실타래가 돌돌 풀려 나왔다. 역시 여러 사람과 뭔가를 조율해 가며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일보단 조용히 혼자 처박혀 글을 쓰고 있을 때가 마음도 기분도 좋다. 금요일에 하루 종일 붙잡고 있을 때는 도저히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던 원고의 3분의 1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나올 수 있었다.
월요병이 없으려면 일요일에 출근을 하라던 조언이 영 틀린 말은 아닌가 보다. 실마리를 찾은 원고 때문일까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출근을 했다. 요 몇 주간, 주말에도 일을 하지 않으면 뭔가 잘못하고 있는 듯한 불안감에 쌓여 놀아도 노는 것 같지가 않았는데 어제는 점심시간에도 꽤 여유를 부렸다. 책을 한 권 들고 사무실에서 조금 떨어진 카페를 찾아가 샌드위치를 먹고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뭐랄까, 이제야 다시 조금 나를 찾은 느낌. 재미있게 놀고, 충분한 햇빛을 받고, 맛있는 걸 먹고, 일도 열심히 하고. 사는 게 별게 있나, 이런 게 바로 생활의 리듬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달까.
물론 오후에는 또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 일들로 인해 9시까지 저녁도 못하고 사무실에 남아 있어야 했다. 그렇지만 지난주만큼 마음이 심란하진 않았다. 최근에 만난 친구는 내가 좀 변했다고 말했었다. 한 번도 그런 말을 해본 적이 없던 애가 지금 회사에 들어온 뒤로 ‘내가 일을 못하는 것 같아’라는 말을 자꾸 하더라고. 그런데 그건 아마 일을 더 잘하고 싶은 욕심 때문일 거라고, 그래도 여기서 뭔가 배울 게 있기 때문일 거라고 덧붙였다. 생각해 보면 나는 늘 회사와 클라이언트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한 사람이었다. 내가 보기에 일을 효율적으로 하지도 못하고, 정말 일보다는 요식행위, 의전 따위나 신경 쓰고, 직장 생활이란 내게 의미도 배울 것도 없지만 정말 그냥 돈 때문에 다닌다는 말을 많이 하고 다녔더랬다. 그러고 보면 이 회사에 온 뒤론 돈 때문에 이 일들을 버티며 하고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오늘은 정시 퇴근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또 뜻대로 되지 않았다. 대신 클라이언트가 또 다른 프로젝트 하나를 요청해 왔다. 엄청 헤매고 있다 느꼈는데, 그래도 나름 잘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나. 그래서 새 일을 의뢰한 걸까. 이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할 때 대표도 그랬다. 힘들 거야, 힘들겠지만 잘 해내면 앞으로 이 분야의 일은 계속 우리에게 올 거야. 그러니까 지금은 다른 일 생각하지 말고 여기에 많이 집중해 줘.
집에 오는 길, 고민 끝에 피자를 한 판 시키고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사 왔다. 요즘 나의 낙인 <냉장고를 부탁해> 최근 편을 아직 못 봤다. 요리 예능은 역시 먹으면서 봐야 즐겁다. 한동안 집에 오면 가만히 누워 있다가 TV를 틀었다. 가만히 있는 시간이 뭔가 아까운데, 다른 무언갈 하기엔 왠지 에너지가 없어서 TV를 봤다. 그래도 뭐라도 보고 있으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느낌이 덜 들었달까. 오늘은 눕지도 않고 집에 오자마자 아이패드를 꺼내 블로그를 켰다. 사실 지난주에는 몇 번이나 뭔가를 쓰다가 지우다 결국 완성하지 못했는데, 그건 다 리듬의 문제였나. 그러고 보니 몇 달 동안 고민하던 노트북도 어제 드디어 질렀다. 11월부터 운세가 좀 피는 걸까, 아니 그보단 역시 잔뜩 좋아하는 것들로 주말을 잘 보냈기 때문은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