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짱없는 베짱이 Sep 01. 2018

32. 끊이지 않는 소녀들의 웃음소리

2017.6.12. 따리하, 볼리비아(D +126)

약속한 시간이 10분, 20분, 30분이 넘도록 아라셀리는 나타나지 않았다. 남미에서 이런 일이야 이제 익숙할 때도 되었건만, 그렇다면 얼마나 더 기다렸다가 자리를 떠야 최선을 다한게 될까 고민을 할 때였다. 저쪽 공원 맞은편에서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며 뛰어오는 한 아가씨를 발견했다.




전날의 솜사탕 소녀는 어디로 갔나요? 힘껏 차려 입은 것이 분명한 위아래 검은색 깔맞춤에 부츠, 풀어내린 긴머리, 화장까지. 어제 내가 보았던 그 녀석이 아니라 얼마나 당황했는지. 함께 나온 M과 서로 인사를 시켜준 뒤 우린 아라셀리를 따라 그녀의 초등학교로 갔다. 분명 여기서 가깝다고 했는데, 지도로 보면 교회 근처에 있던 그 학교인 줄 알았는데. 아마 내가 따리하에 사는 사람이었다 하더라도 딱히 가볼 일 없었을 것 같은, 사람도 많지 않아 보이는 동네의 외곽으로 추정되는 대로변을 땀을 뻘뻘 흘리며 30분을 걸어야 했다.


아라셀리가 우리를 데려간 학교.


아라셀리는 학교 축제를 앞두고 친구들과 춤 연습을 해야 한다고 했다. 뭔가 90년대 K-pop(?) 같은 현란한 음악과 댄스. 왠지 이 동네 아이들은 순박하고, 춤을 춰도 전통 춤 같은 것 일거란 내 상상은 와장창. 애초에 그런 나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었겠지만. 그렇다. 어디에 가나 다 똑같이 사람 사는 세상이겠지. 그녀들이 원하는 걸 알았기에 같이 춤도 춰보려고 하고 그 안에 껴서 놀고 싶었지만, 사실 멋부리고 예뻐보이고 싶은 초등학교 고학년 친구들과 나는 도저히 어울릴수가 없었다.

우리는 그냥 구경을 할께, 라고 앉아있는데, 앞서 인사했던 다른 조그만 녀석들이 떠나질 않는다. 같은 학교의 저학년 학생들 같았는데 옹기종기 모여오더니 궁금한게 어찌나 많은지. 어디에서 왔어? 너는 우리 말 할 줄 알아? 머리카락은 한국말로 뭐라고 해? 신발은? 부터 도대체 알아들을 수 없는 또 다시 시작된 수다타임.

그중 한 녀석이 갑자기 무슨 생각을 하냐길래, 너네들 참 예쁘다. 그랬더니 애들 표정이 다 이상하다. 저 정도의 문장이 틀릴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왜 못알아듣지? 알고보니 우리가 한 대답이 영 엉뚱했던 것. "Que cree?" 그건 무슨 종교를 믿느냐는 말이었다. (creer, 믿다, 생각하다라는 뜻의 동사. 그간 '생각하다'는 의미로 많이 사용했기에 '무슨 생각해?’라는 말로 알아들었다.)

종교가 없다고 말하는 나를 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좀 더 설명을 해주고 싶었지만 나는 말이 서툴렀고, 아이들은 어렸다. 아무리 다른 도시, 다른 나라, 다른 환경에 사는 사람들이라 해도 달라봤자 얼마나 다르겠냐고, 조금만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그래도 다 비슷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는 편이었는데 이날 나는 사실 꽤나 충격을 받았다. 종교에 대한 말 이후로 그 조그만 아이들 입에서 생각도 못해봤던 무서운 말들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강간범이 많아?"

"그럼 도둑은?"

"코카인 많이 해?"

대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아니 대답하기 전에, 이 조그만 아이들이 처음 본 우리에게 궁금한게 왜 이런 것들 인걸까. 문득 전날 아라셀리와의 대화가 생각났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한국인 남자친구를 가지고 싶다던 아라셀리는, 이곳의 남자는 여자를 임신시키고 쉽게 버려. 라는 말을 했더랬다. 네가 몰라서 그렇지 (<꽃보다 남자>의) 준표같은 남자는 드라마에만 있어. 한국인이라고 모두가 준표같진 않아. 라고 속으로만 대답했었는데 그 말을 입으로 안 내뱉길 왠지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고 받아들였던 그것보다도 어쩌면 이 아이들은 정말 더 다른 삶을 살고 있던 것 같아서. 쉽게 생각하고 쉽게 말하는건 언제 어디서나 조심해야 하는 거겠지.

햇빛이 쏟아지는 오후였고, 아이들의 표정은 천진난만했다. 분위기는 한번도 무거워지지 않았다. 우리가 대답을 잘 못해서일까 금방 또 다른 주제로 넘어가 깔깔깔 키득키득 거리면서 대화는 쉴 새없이 이어졌다. 특히나 말을 더 못알아 듣는 나 때문에 아이들은 천천히 또박또박 두 번씩 말해야 했고, 핸드폰 번역기도 아주 쉴 틈없이 돌아갔다.


해질 무렵 따리하.


더 큰 자기들이랑 놀지 않는 것에 아라셀리가 서운해 하나 싶었는데, 그럼에도 사진을 찍을때면 내 곁에 붙어서 내 팔을 꼭 끌어안고 기대곤 했다. 내가 친구라고 부르는 말에 얼마나 부끄러워하며 화사하게 웃어 보이던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다 같이 버스를 탔다. 아라셀리보다 우리의 숙소가 더 앞이었는데, 내려야 할 곳을 알려주는 그녀의 표정엔 더 이상 아쉬움이 없어 보였다. 연락처를 주고받지도, 다른 날 또 다시 만나자는 약속도 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또 만날 것처럼 환하게 인사를 하며 헤어졌다.

두 달 전 처음 볼리비아에 왔을 때, 대학생인 마리사벨과 엘리자베스, 로사리나, 세사르를 만나 아주 전례 없던 1박 2일을 보냈더라지. 그때 그 나라를 떠나오며, 힘들어도 당신들의 웃음소리 덕분에 버틸 수 있었나보다 했는데. 두 번째 온 볼리비아에서 또 이렇게 다른 소녀들을 만날 줄이야. 아, 정말, 그녀들의 웃음소리는 어딜가도 끝이 없네. 역시 나에게 이 나라는 어쩔 수 없나보다, 싶더랬다.

매거진의 이전글 31. 마음을 다한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