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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짱없는 베짱이 Jun 04. 2018

04. 꿈꾸고 있다면, 꿈으로 끝나지 않기를

2017.3.14. 쿠스코, 페루(D +36)

집 떠난 지 약 한 달하고 일주일, 페루에 도착한 지 8일, 이카에서 버스를 탄지 17시간째. 드디어 쿠스코에 도착했다. 눈 앞에 보이는 도시의 모습이 선명해질수록 정신은 몽롱해져 갔다. 지금쯤 꿈에서 깨어 출근을 준비해야 할 것 같은데, 깨지지 않았다. 가슴에서 뭔가 울렁하면서 올라오는데, 그 감정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평생 꿈일 줄 알았던 꿈이 현실이 됐다.


나는 왜 남미로 떠났을까? 다녀온 지금도 사실은 아직도 모르겠다. 굳이 이야기를 하자면 마추픽추가 가고 싶었다. 학교 수업시간에 들어본 그곳, 역사책이나 TV에 나오는 그곳, 지구 상에 있다고는 하지만 내 현실에는 없는 것 같은 그곳. 마추픽추에 가는 것. 그게 벌써 15년도 더 된 꿈이었다.  


핑계를 대자면, 학교를 다닐 땐 돈이 없었다. 쓸데없는 현실감각만 있었다. 남미가 한국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비행기 삯은 얼마나 비싼지, 거기에 다녀오면서 생기게 될 내 현실의 공백과 부담을 생각하면서 도저히 나란 사람이 갈 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졸업을 한 뒤론 불안만 있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시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이 불안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만 흘려보냈다. 취업 후에는 시간이 없었다. 그나마 일주일에 이틀 있는 주말마저 내 마음껏 사용할 수 없는 생활.

길었던 수험생활, 아니 백수생활을 청산한 뒤론 남들보다 뒤처져 버렸다는 생각에 보이는 대로 이력서를 넣었고, 오라는 데로 취업을 했다.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해야 하는 일을 했다. 늦은 만큼 서둘러서 '평균적인 삶'의 궤도에 오르고 싶었지만, 그렇게 아등바등 거리는 모습을 남들에게 들키기는 싫었다.

더 나은 조건, 연봉, 좀 더 그럴듯한 직책, 직함을 쫓아다녔고 직장생활 5년 차에 벌써 3번째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이것저것을 따지며 이직을 고민하던 내게 동생이 물었다. “이직을 하면 그 회사에선 오래 일할 수 있을까? 언니가 진짜로 하고 싶은 거, 이젠 그걸 생각해봐야 할 때 아냐?”

아무리 생각을 해도 아무것도 없었다. 하고 싶은 게 없었다.  

그때 동생이 다시 말했다. "왜 하고 싶은 거 있었잖아, 여행 가고 싶다며."  

그건 돈이 안되잖아. 그리고 이미 오래전에 잊어버렸어. 지금 나에겐 너무 늦어버린, 불가능한 꿈이야.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로 그 생각 때문에 10년 전에도, 4년 전에도, 1년 반 전, 4개월 전에도 망설이고 있었다. 그냥 늘 쫓기면서 살고 있었다. 이건 내가 아니라고 하면서도. 왜인지도 모른 채, 만족하지도 않으면서, 모두가 한다는 대로만 움직였다. 하지만 망설일수록 더 늦어질 뿐이었다. 1년 뒤에도 나는 오늘을 돌아보며 차라리 그때 떠날 걸, 후회하고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지금이야말로 내 삶에서 가장 빠른 시기라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곳에 도착하고 말았다.  

꿈꿔왔던 마추픽추의 도시 쿠스코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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