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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또 Mar 22. 2023

엑셀? 브레이크? 내 아이의 속도

아이를 키우며 속도에 대해 생각한다. 임신 몇 주, 개월 수, 연령 등등 커가는 아이들의 속도는 저마다 다르다. 특히 아이의 속도는 빠른 듯 느리고, 느린 듯 빠르다.


매일 보고 보듬는 내 아이인데 문득 보면 너무 커 있어서 깜짝 놀란다. 고개 숙여 손 잡아줘야 했던 아이 키가 내 허리춤에 훌쩍 닿고, 내 손목이 아파도 불쑥불쑥 안고 업을 수 있던 아이가 이제 ‘헉’ 소리 날 만큼 무거워져 있다. “언제 이렇게 컸냐”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아이러니하게도 빠르다 생각하는 만큼 느리다는 생각도 함께 하게 된다. 특히 일상에서 그런 생각이 많이 드는데 어린이집 갈 준비에 바쁜데 이 안 닦겠다고 버티면 ‘대체 언제 혼자 하는 날이 오냐’ 싶고, 계단 오를 때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천천히 오르면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것에 감동을 느끼던 것을 잠시 잊고 ‘빨리 가야 하는데..’ 조바심이 먼저 든다.


스스로 하겠다는 아이가 기특하다가도, 내 마음에 조바심이 나면 아이의 느린 속도에 또 한 번 터진다. 엄마는 도와주지 말라고, 혼자 양말이나 신발을 신겠다고 낑낑대다 결국엔 짜증을 내는 아이를 볼 때 내 조바심은 결국 내 머리 뚜껑을 들썩거리게 만든다. 조급한 마음에 결국 스스로 하겠다는 아이의 속도를 기다려주지 못하고 내가 후딱 도와줘버린다. 


아이는 커가고, 스스로 하고 싶은 일 혹은 아직은 어려운 일들이 더 많아질 텐데 가끔 어른인 내가 그 속도에 브레이크나 액셀을 밟아 버리고 만다. 그럴 땐 미안한 마음이 쑥 밀려오며 일명 육아 현타가 오기도 한다. 


최근 제일 반성했던 일. 우리 딸 빵또(애칭)는 5살(만 3세)인 지금까지 개월 수에 비해 항상 키가 컸다. 말도 빨랐고, 행동도 빨랐다. 다들 한 살 위로 볼 정도. 그래서인지 나 역시 빵또의 개월수보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한 적이 많았다. 특히 한 살 위인 언니, 오빠들과 자주 어울린 탓에 키와 행동이 엇비슷한 언니, 오빠들에 맞춰 빵또를 판단하고, 그런 행동을 바랐다. 


예를 들면 협상이 되는 한 살 위 언니, 오빠들을 보고 나도 빵또와 뭔가 협상으로 타협하려 했다. 어릴 때 개월 수의 차이는 상당한 차이를 보여준다는 것을 잠시 잊었다. 결국 내 조급한 마음으로 아이를 더 성숙하게 판단하고, 그런 행동을 바랐다. ‘다른 애들과 다르게 얘는 왜 이럴까’ 비교하기도 하고, 한숨 쉬기도 했다. 왜 질투하고 떼를 쓰고 협상이 통하지 않을까. 그런 마음?


그런데 번뜩 정신이 차려졌다. ‘아직 아기다’라는 말을 부모들이 많이 하는데 우리 빵또는 진짜 아직 아기인 게 맞았다. 겨우 만 3세, 몸집과 생각의 성장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난 깨달았어야 했다. 생각과 마음이 자라는 속도는 또 다를 텐데 내 아이마저 겉으로 판단해 버린 것이다.


잠깐 수렁 밑으로 빠져들 뻔했지만 그럴 시간은 없다.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면 정신을 차려야 하고 빠르게 고쳐야 한다. 육아할 땐 내 수렁 속에 마냥 빠져 있을 수 없다. 완전히 털어버릴 순 없어도 현재 할 수 있는 것들에서 변화를 줘야 내 마음도 편하다는 걸 짧은 만 3년이라는 육아 기간 동안 조금은 깨달았다. 아이처럼 내 생각과 마음도 계속 자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본다. 아이에겐 자신만의 속도가 있다. 자신만의 속도에 맞게 자라고 있다. 빠른 게아니다. 느린 것도 아니다. 배워가는 중이고 익숙해지는 중일뿐.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느린 게 아니라면 그 속도를 따라가 주고 기다려줘야 한다. 느리다고 답답해할 것도, 빠르다고 아쉬워할 것도 없다. 그저 제 속도에 맞게 잘 가는 모습을 바라봐주면 되는 것 같다.


아이의 속도에 맞춰 내가 브레이크를 밟거나 엑셀을 발아 줄 것도 없다. 그저 몸과 생각과 마음이 자라고 있을 땐 그 아이의 속도를 받아들이고, 나 역시 성숙한 부모가 되기 위해 계속 함께 자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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