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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또 Mar 23. 2023

엄마의 음식

엄마의 음식이 좋다. 10대 때는 바깥 음식이 좋더니 20대 후반부턴 엄마 음식이 그렇게 좋더라. 엄마의 음식을 떠올려 본다. 엄마의 음식은 평범한가? 그렇지 않다. 엄마의 음식은 흔한가?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그렇다. 엄마 음식을 떠올려 보면 평범한 듯 하면서도 흔하지 않았다. 엄마들마다 특유의 스타일이 있지 않은가. 우리 엄마 음식도 그렇다.      


첫 번째는 단연 감자탕. 원체 감자탕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엄마가 집에서 해주는 감자탕은 내 힐링 음식 넘버원이다. 아빠가 살아 계실 때는 엄마가 감자탕을 해주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 가족은 뼈해장국집 단골 손님이었으니까. 여기서 감자탕과 뼈해장국은 엄연히 다르다. 뼈해장국에는 구황작물 감자가 들어가지 않고, 대체로 각각 한 뚝배기에 놓고 먹게 나온다. 우리 네가족은 단골 뼈해장국집에 가면 뼈해장국을 각각 네 개 시키면서도 뚝배기 대신 한 냄비에 담아 달라고 했다. 단골집이어서, 또 아빠가 연로한 주인 부부 대신 매번 시레기를 사다주는 수고를 해줘서 가능했던 주문이었다. 그런데 아빠가 돌아가신 뒤 엄마와 우리 자매는 뼈해장국집에 더 이상 가지 않았던 것 같다. 대신 엄마가 집에서 감자탕을 한 솥 끓여줬다. 그때부터 나는 엄마의 감자탕이 더 맛있었다. 시레기는 야들야들, 감자는 포슬포슬, 뼈다귀 살은 남김없이 발라 먹고 싶은 집요함을 길러줬다. 엄마의 감자탕은 내 배도, 내 마음도 채워줬다. 아빠의 빈자리도.     


엄마는 소풍 음식도 다른 집과 다른 도시락을 싸줬다. 흔한 소풍 음식 김밥을 우리 엄마는 해준 적이 없다. 그래서 난 집 김밥의 그리움이 없다. 대신 소풍 하면 떠오르는 쌈밥이 그립다. 소풍날이 되면 아침부터 고소한 쌈밥 냄새가 났다. 짭짤한 밥에 쌈장 톡 올려 삶은 양배추 혹은 치커리를 돌돌 말아 만든 쌈밥. 쌈밥을 하나하나 만들고 있는 엄마의 손이 바빴다. 엄마 일이 바쁠 때엔 가끔 분식집에서 치즈 김밥을 사서 갔지만 엄마가 조금 더 수고로운 선택을 한 날엔 어김없이 쌈밥이 도시락에 담겼다. 초등학교 때는 아기자기한 김밥에 용가리 치킨 싸주면 안되나 하며 쌈밥 도시락을 수줍게 열기도 했다. 하지만 제일 먼저 동나는 건 역시나 우리 엄마의 쌈밥 도시락. 친구들이 하나씩 집어 먹는 쌈밥은 언제나 인기 만점이었다. 그때마다 뭔지 모를 뿌듯함과 만족감이 있었다. 유일무이 도시락 메뉴, 남들과는 다른 메뉴를 싸온 내가 특별해진 것 같았다.   

  

내가 또 좋아하는 엄마의 음식은 닭볶음탕. 어릴 때부터 닭이 너무 좋았던 나는 고3 때 닭볶음탕에 푹 빠졌다. 무조건 엄마가 한 닭볶음탕. 공부를 잘 하고 열심히 하는 것과는 별개로 나는 우리 집에서 나름 고3 특별대우를 받았다. 엄마는 매주 토요일마다 뭐가 먹고 싶은지 물었고, 답은 항상 닭볶음탕이었다. 달짝지근 매콤한 닭볶음탕은 참 질리지도 않았다. 그 기억 때문인지 20대의 어느 날 엄마의 닭볶음탕이 너무 먹고 싶었다. 취업하고 바깥 음식을 많이 먹어서인지 무조건 엄마 닭볶음탕이 먹고 싶었고, 엄마는 주말에 해주마 약속했다. 드디어 주말, 엄마가 닭볶음탕을 해놓고 기다렸다. 그런데 엄마가 감자가 아닌 단호박을 넣은 게 아닌가. 난 평소 먹던, 감자가 든 엄마의 닭볶음탕이 먹고 싶었던 건데 왜 엄마는 쌩뚱 맞게 단호박을 넣은 거야. 철없는 난 불같이 화를 냈고, 엄마는 다그치는 내게 당황해 눈물까지 보였다. 돌아보면 엄마는 색다른 요리를 해주고 싶었던 건데 그땐 그게 왜 서운하고 아쉬웠는지 참, 철없었다. 엄마 미안.     


다음 음식은 떡국. 어딜 가도 엄마가 한 것보다 맛있는 걸 본적이 없는 음식 중 또 하나다. 자주 먹는 음식도 아닌데 나의 음식 랭킹에서 1위를 차지한 게 떡국이다. 새해가 되면 먹는 엄마의 떡국은 참 묘하다. 하루에 한 10살 더 먹게 하는 듯. 이맘 때 김치는 또 어쩜 이리 맛나게 익어 있는지 엄마 떡국이랑 먹으면 딱이다. 손 빠른 엄마는 맛있는 육수를 뚝딱 내고, 어느새 고명도 가지런히 놓여 있다. 고소한 소고기 올리고, 흰자 노른자 나눈 예쁜 지단 가지런히 썰고, 김가루까지 뿌려주면 비주얼부터 침 고인다. 뽀얀 국물 떠서 먹고, 고명 섞어 쫄깃한 떡 먹고 아삭 김치 먹으면 그날 하루 종일 떡국만 먹어도 또 떡국이 먹고 싶다.      


그런데 우리 엄마도 못하는 요리가 몇 개 있다. 그 중 하나 바계란 후라이. 엄마는 손도 빠르고 손맛도 좋은데 신기하게도 간단한 조리를 어려워한다. 라면 물은 항상 홍수였고 계란 후라이는 봉긋한 서니사이드업은커녕 주위가 항상 딱딱하게 탔다. 떡국 먹을 때 지단은 그리 예쁘게도 부치면서 이상하게도 계란 후라이는 항상 망가져 있더라. 우린 매일 엄마를 놀렸고, 머쓱하게 웃음 짓던 엄마는 환갑이 넘은 지금까지도 라면, 계란 후라이가 제일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계란 후라이, 계란말이 등의 반찬은 잘 하지 않는다. 엄마에게 맞는 요리가 따로 있나보다.     


언젠가부터 엄마에게 나도 다양한 음식을 해주고 싶어졌다. 멸치국수도 만들어 보고, 굴소스 넣어 야채 볶음도 만들어 봤다. 엄마 손맛 따라한 김치찌개며 된장찌개며, 엄마가 그랬듯 나도 엄마에게 음식을 내어줘 본다. 엄마는 매번 맛있다고 하는데 진짜일까 의심돼 계속 맛이 어떠냐고 물어봐 본다. 엄마가 맛있게 드시면 기분이 좋다. 따뜻할 때 드시면 좋겠고, 딱 맛있을 타이밍에 드시면 좋겠다. 직접 만들어보니 알겠다. 엄마의 음식이 흔하지 않은 것 같은 이유. 엄마의 사랑은 흔하고 단순한 감정이 아니기에 그렇다. 그 사랑이 음식에 담겼으니 내겐 특별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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