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떠났다. 남편도 아이도. 회사로 유치원으로. 짹 각 짹 각. 9시. 모두가 떠나고 적막하기까지 한 집. 혼자 남았다. 변신할 시간이다. 엄마가 아닌 나로.
분홍 타이즈를 신는다. 등이 훤히 뚫리고 가는 끈만 겨우 달린 손바닥만 한 옷을 꺼내 입는다. '레이스로 할까? 망사로 할까? 그래. 결심했어! Simple is the best!' 크롭티셔츠로 멋을 낸다. 분홍 타이즈 위에 롱치마를 하나 걸쳐 입는다. 걸을 때마다 슬쩍슬쩍 보이는 타이즈를 보며 마치 발레리라라도 된 듯 포즈를 취해보곤 집을 나선다. 나는 신데렐라, 아니 취발러다. '취발러'는 취미로 발레는 하는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다. 어렸을 때 못 다 이룬 공주의 꿈을 이루려는 것은 아니다. 예쁘고 우아한 것에 대한 동경도 아니다. 엄마에게 발레는 '생존'이다.
2년 전, 아이를 첫 기관에 보내고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헬스장부터 찾았다. 왜 헬스였냐고? 싸니까. 입주민을 위한 시설이라 한 달 이용료가 2만 원도 되지 않았다. 다른 선택이 없었다. 전업맘에게 가성비는 절대적이다. 필라테스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이틀 뒤 전화가 왔다. 코로나로 인원 미달이라 수업이 폐강된단다.
"이제 하다하다 운동도 내 마음대로 못하는구나. 내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네."
우울한 마음으로 아이를 데리러 갔다. 그날 따라 유치원 앞에 발레학원 현수막이 새롭게 걸려있었다. 유아발레모집이란 말 뒤에 자그마하게 '성인취미발레' 가 눈에 띄었다. 카톡문의를 남겼다. 학원비는 월 13만 원. 나로서는 엄청난 지출이다. 하지만 고민하고 싶지 않다. 내맘대로 하나라도 하고 싶으니까. 욱하는 마음에 등록해버렸다. 세련되고 우아한 선생님과 학원 인테리어에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시작은 엉망진창이었다. 처음 클래스를 듣던 날, 다리에 힘이 풀렸다. 운전대를 잡고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집에 돌아왔다. 그대로 쓰러졌다. 아이가 돌아올 때까지 일어나지 못했다. 두 번째 클래스 때는 전신 거울 앞에 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몸에 타이트하게 밀착되는 옷을 입은 채로 전신 거울 앞에 서보기는 오랜만이었다. 아이를 낳고는 처음이었다. 체중계 숫자가 아니라 거울을 통해 보는 내 몸은 처참했다. 배, 허벅지, 엉덩이, 팔 등 곳곳에 살이 붙어있었다. 부스스한 머리를 보니 미용실 갈 때가 지났고, 피부도 많이 상했다. 아이와 함께 있을 때는 당연한 모습이라 생각했다. 아이는 예쁜 옷을 입혀도 나는 편한 고무줄 바지에 티셔츠 입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으니까. 아이 없이 혼자 있는 내 모습은 초라했다. 나 자신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이제는 나를 가꾸는 시간도 가져야겠다.
먼저 미용실부터 갔다. 머리를 짧게 잘랐다. 안경점에 가서 렌즈도 새로 샀다. 마땅히 멋을 낼 일도 없어 몇 해를 같은 안경으로 버텼는데 발레를 하려니 불편해서였다. 땀이 흐르면서 눈이 따갑길래 성분 좋은 보송한 타입의 화장품도 새로 샀다. 보송한 타입이 건조할까 싶어 기초 화장품 라인도 꼼꼼히 골라 바꿨다.
발레라는 취미를 시작했을 뿐인데 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집안일, 아이, 남편에게만 모든 관심이 쏠려있었는데 이제는 그 관심이 나에게 이동했다. 한 달이 지났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과김히 3개월치 학원비를 긁었다. 아이를 태권도 학원에 보내려 모아둔 교육비였다. 아이 학원비와 맞바꾼 내 취미활동비. 허투루 할 수 없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도록 매 클래스에 열심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남아서 질문도 하고 유튜브를 보며 궁금한 동작들을 익혔다. 수업이 없는 날에는 홈트를 하며 더 우아한 동작을 하기 위한 연습에 매진했다. 배달음식이나 자극적인 음식에 손이 가다가도 샐러드나 저칼로리 음식을 골라 먹었다. 탄력 있는 허벅지와 엉덩이, 가녀린 팔과 쇄골, 길고 가느다란 목을 상상하며. 나를 위해 시간을 내서 발레를 배우고 좋은 음식을 골라먹는다는 것만으로도 삶에 활력이 넘치고 자신감이 생겼다.
전업주부는 남을 위한 희생을 전제로 하는 일이다. 외벌이 남편을 생각하면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하기도 주저하게 된다. 경제적 이유, 시간적 여유, 체력 등 걸림돌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나를 돌보지 않으면 누가 나를 돌봐주랴. 나를 돌보지 못한 채 가족에게 희생하면 할수록 그 대가를 바라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나는 너희를 위해 이만큼 양보하는데 너희는 이 정도도 못해주냐?'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스스로를 가꾸고 행복해졌을 때, 그 때 남은 에너지로 가족을 위해 희생할 수 있다. 무언가를 바라지 않고 진심으로.
나에게 발레는 '생존'이다.
'체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물리적 생존 + 가족에게 퍼주고 텅 비어버린 그릇을 채우는 정신적 생존'
일주일에 두 번. 가족들이 모두 떠난 시간. 엄마라는 이름을 벗고 '나'라는 옷을 입는다. 분홍타이즈에 화려한 레오타드, 발레슈즈를 신고. 가족이라는 무대에서 내려와 '나'라는 무대에 오른다. 관객은 없다. 화려한 조명도 우아한 음악도 없다. 응원하며 박수쳐주는 이도 없다. 그럴수록 나는 상상한다. 무대 위 우아한 발레라의 모습을. 현실은 뚱뚱하고 늙은 (아)줌마리나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