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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Jan 19. 2023

마흔, 무엇을 시작할 수 있을까?

사회초년생 시절, 엄마 친구의 부탁으로 들어놓은 보험이 있었다.


10년 만기형으로 5년간 보험금을 납부한 후 5년 동안 예치해두는 것이 조건인 적금보험이었다. 예의상 들어주는 적금이었기에 많은 돈을 붓지는 않았지만 5년간 빠짐없이 넣긴했다.


그때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고, 안정적으로 월급이 나오니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완납 후 5년간 예치해두는 일이었다. 그 사이 나는 결혼을 했고, 이사를 했고, 아이를 낳았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때마다 목돈이 필요했다.


전세금을 올려주기 위해서, 가족이 함께 탈 차를 사야해서, 아이가 수술을 받아야해서 등등.


적금에 손을 대고 싶었던 적은 몇 번이나 있었지만 그때마다 고비를 잘 넘겼다. 그리고 작년, 20대부터 부었던 적금의 10년 만기가 끝이났다. 드디어.


10년 가까이 나의 수입없이 남편 월급으로만 살다보니 한 가정을 꾸리는 것만도 빠듯했다. 개인적인 비상금을 모아 둘 형편은 안되었다. 그런데 남편도 모르는 돈이 생겼다. 설레고 뿌듯했다. 작년 한 해 동안 일단은 예금통장에 이 돈을 넣어놓고 어디에 쓰면 좋을지 행복한 고민을 했다. 유독 우울하고 힘들 날이면 은행 앱에 접속해 잔액을 확인하고 혼자서 기분좋은 상상을 해보곤 했다.


돈은 있으면 있는대로 쓸 곳은 많다. 첫째는 남편의 10년 된 차를 바꾸는데 보탤 수 있다. 둘째는 대출을 갚을 수 있다. 셋째는 아이 교육비나 해외여행을 위해 아껴둘 수 있다. 넷째는 명품 가방이나 고급 코트를 살 수도 있다. 어느 것 하나 즐겁지 않은 일이 없었다. 하지만 어딘가 허전했다. 한 번의 여행, 한 번의 소비로 끝내버리면 그 후에 허무함이 클 것 같았다. 그럴수록 생각이 또렷해졌다.


'이건 결혼 전부터 내가 모아둔 돈이니까 온전히 나를 위해서만 쓰고 싶어!'


이기적이게도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건이 주는 기쁨은 길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좀 더 가치있는 일에 쓰고 싶었다.


그리고 오랜 고민 끝에 지난 달. 나는 그 돈으로 사이버대학에 입학원서를 제출했다.


공부를 한다면 목적이 있기 마련인데 학위를 따고 당장 대학원에 갈 형편은 안되고, 이쪽 분야로 취업할 계획도 아직은 명확하지 않다. 순수하게 호기심과 배우고 싶다는 열망만 있을 뿐이다. 아이가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할 때가 오면, 엄마도 같은 테이블에 앉아 공부를 하는 것이 내 오랜 꿈이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와 함께 나도 새출발을 하고 싶었다.


거침없는 포부와 달리 현실은 입학지원서를 제출해놓고도 갈팡질팡 고민중이다. 어른의 삶은 호기심과 열정만으로 덤비기에는 기회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많은 것을 포기하고 비싼 수업료를 내고, 공부하고, 과제를 제출하고, 시험을 치르고 이 모든 과정을 다 해낼 수 있을지 솔직히 말하면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한번 저질러 보기로 했다. 해봐야 미련이 남지 않을테니까!


그나마 위안이 되는건 나를 위해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고 생각하니 기분 좋은 얼굴로 남편과 아이를 마주할 수 있었다. 매일 똑같은 육아와 밥상차리기도 흥이 났다.


마흔언저리에서 무엇을 새로 시작할 수 있을까?


숨겨놓은 비상금이 있어서 천만다행이고, 배우고 싶은 열정이 아직 살아있어서 행복하다.


나는 아마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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