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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Feb 02. 2023

왜 읽어야 할까?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애독가는 아니다. 틈이 나면 스마트폰을 더 자주 켜고, 시간이 남으면 리모컨을 더 자주 드는 사람이다. 하루 중 독서하는 시간을 꼽자면 1시간이 채 되지 않을거다. 그러니 틈틈이 읽고, 수시로 책을 집어드는 애독가는 확실히 아니다. 


그럼에도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약속을 잡을 때는 꼭 대형서점 주변에서 약속을 잡고 시간 보다 일찍 도착해 서점 구경을 한다. 이사를 하거나 낯선 곳으로 거주지를 옮길 때면 가장 먼저 동네 도서관을 검색해 대출증부터 만들어 수시로 드나든다. 빌려온 책들을 모두 읽는가하면 그건 아니다. 어떤 책은 구매한 그대로 책장에 꽂아둔채 잊어버리기도 하고, 어떤 책은 한 글자도 읽지 않고 겨우 반납일을 맞추기도 한다. 그러니 책을 읽기 보다는 구경하러 간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책을 직접 읽는 행위 보다 책과 가까이에 있다는 느낌이다. 어릴 때 엄마는 할 일 없이 심심한 주말이면 서점에 자주 데려가셨는데 그때마다 책 한권씩을 꼭 사주셨고 돌아오는 길에는 서점 근처에 있는 백화점에 들려 맛있는 것도 사주셨다. 그 시절에도 역시 사놓고 읽지 않은 책이 훨씬 많았고, 특별히 감명받았던 책도 한 권 없다. 하지만 서점을 오가던 길에 느꼈던 감정만은 여전히 남아있다. 아마 새로운 곳에 자리를 잡을 때마다 열심히 도서관을 찾아다니는 것은 그때의 그 감정을 기억해 위로받으려는 행동같다. 


스무살 때, 일본에서 1년간 생활할 기회가 있었다. 낯선 땅에 도착해 외국인등록증을 발급받고 가장 먼저 한 일도 동네 도서관에서 대출증을 만드는 일이었다. 동네 작은 도서관이라 한글로 된 책이 거의 없었는데도 부지런히 가서 한두권씩 빌려왔다. 그 책들을 모조리 읽었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그냥 한글로 된 책을 만나는 것 자체가 반가웠다. 그때의 경험 덕분에 지금도 해외생활을 떠나는 친구가 있으면 꼭 한글 책을 선물한다. 외국에서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는 일이 생길 때면 가지고 간 한글 책에 메모를 남겨 두고 온다. 지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정리하자면 나는 독서를 좋아한다기 보다는 책을 소유하는 일, 구매하는 일, 가지고 다니는 일을 더 좋아한다. 그러니 애독가는 당연히 아닐 뿐더러 많이 읽지도 않는다. 아이가 미디어를 볼 때 옆에 앉아 30분 정도 읽다가 저녁밥상을 차리러 가는 정도다. 그러니 한 달에 많아야 2~3권을 넘기기가 어렵다. 책을 부지런히 읽는 사람들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하지만 성인 평균독서량이 연 4.5권에 불과하다는 통계에 비하면 그래도 읽는 사람이라고 명함내밀 정도는 되지 않을까.


<최재천의 공부>라는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독서는 일어어야만 합니다. 독서는 빡세게 하는겁니다. 독서를 취미로 하면 눈만 나빠집니다. (중략) 읽어도 되고 안 읽어도 되는 책을 그늘에 가서 편안하게 보는 건 시간 낭비이고 눈만 나빠져요. 


깜짝놀라 자세히 읽어보니 독서를 하지 말고 유튜브를 보라는 말이 아니라 기왕 눈 나빠지며 하는 독서라면 계획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읽고 더 어려운 책에도 도전하며 읽으라는 조언이었다.


그래. 어쩌면 수많은 미디어가 범람하고 재미있는 컨텐츠들이 넘치는 세상에서 책을 즐기며 읽으라는 것은 엄마의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즐기며 읽지 않아도 책과 가까이 있으면 편안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유일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일지도. 


나처럼 애독가는 아니어도 책을 소유하는 일에 기쁨을 느끼게 된다면 적어도 대한민국 평균 보다는 더 많은 책을 읽는 성인으로 성장하게 될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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