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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Feb 16. 2023

걷다 보면 누가 말해줄 것 같아

요즘 나는 걷고 있다. 걷기 시작한 이유는 다이어트 때문이었다. 복용 중인 약의 부작용으로 갑자기 8kg이나 체중이 불었다. 몸이 무거워지고 바지가 작아지자 위기감을 느끼며 걷기 시작했다. 


아무리 위기감을 느꼈다한들, 나란 사람은 혼자서 걸을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동료가 필요했다. 마침 온라인에서 걷기 멤버를 모집한다는 글을 발견했고, 한 달 동안 동료들과 함께 걷고 있다. 


목표 걸음수를 정할 때, 일부러 높지 않게 잡았다. 하루 오천보. 높은 숫자를 적어놓고 매일 실패하느니 작은 숫자를 적어놓고 매일 성공하고 싶었다. 그 덕분인지 2월 1일부터 주말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걷기에 참여했고 매일 오천보 이상을 걸었다.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동네 하천을 따라 걷기고 하고, 온라인으로 장 볼 것도 일부러 삥 돌아 멀리 있는 마트까지 가보기도 하고, 도서관에도 자주 들락거렸다. 도서관, 마트를 들러 집까지 걸어오면 오천보가 조금 넘는다. 


걸었더니 살이 빠졌느냐고 묻는다면 정답은 아니오. 조금도 빠지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성과도 없는데 여전히 걷고 있는 이유는 차가운 공기를 맞으며 몸을 움직이는 것 만으로 기분이 조금 설렌다고 해야 할까? 가벼워진다고 해야 할까? 하여간 묘한 쾌감이 있다. 


사실 요즘 모든 것에 흥미를 잃고 있었다. 발레도 글쓰기도 책 읽기도 살림도 육아도 어느 것 하나 똑 부러지게 해결되지 못한 채 어영부영 흘러가는 날들이 많았다. 발레는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빠지기 시작했고, 글쓰기는 한참 동안 손을 놓고 있었다. 책은 손에 잡았지만 내용이 들어오지 않았다. 살림이나 육아도 마찬가지. 매일 루틴처럼 돌리던 세탁기와 로봇청소기를 빼먹는 날이 많았고, 요리도 더는 하지 않았다. 최소한 먹고는 살아야 하니 배달과 반찬가게만 들락거렸고 아이에게 맨밥에 김을 싸주는 날도 종종 있었다. 


왜 의욕을 잃었을까? 


살이 찌니 발레복이 안 예뻤고 동작도 둔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싫어졌다. 글은 쓰나 안 쓰나 내 삶은 달라지지 않고 위로가 되던 글쓰기가 숙제처럼 느껴졌다. 마음이 심란하니 글이 눈에 들어올 리가. 책은 그야말로 글자만 겨우 읽어 내려갔다. 재밌게 하던 일이 이 지경인데 의무감으로 하던 살림이나 육아는 더 했다.  


마음이 힘들 때는 몸을 움직이라는 말이 있듯이 몸을 움직이기로 했다. 아직은 차가운 겨울바람에 손이 얼 때도 있지만 가끔 비추는 햇살이 점점 따뜻해지고 있는 걸 느끼며. 걷다 보면 누가 말해줄 것 같아서 계속 걷고 있다. 말해주긴 누가 말해주겠어. 하늘에서 지령처럼 내려올 리 만무하고, 누가 인생의 정답을 알려줄 리도 없고. 결국 듣고 싶은 건 내 마음의 소리겠지. 내 마음이 하는 말을 들으려 걷고 있는 거겠지. 들려줘, 어서.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왜 이러고 있는지 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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