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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Mar 08. 2023

가방 들어주는 엄마는 되기 싫었어!

 아이가 일곱살이 되면서부터 뒤늦게 사춘기를 겪었다. 전업주부 8년차. 지금껏 육아에만 집중해 온 지난 시간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돌아보니 너무나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넉넉하지는 않았어도 외벌이로도 살만했음에 감사하다. 하지만 감사한 마음은 마음이고, 마음 한켠에 서늘한 바람이 드나드는건 어쩔 수 없었다. 


 그 바람의 정체를 언어로 표현하자면 허전함, 공허함, 텅 빈. 


 내 마음에 가득차 있던 충만함을 아이를 위해 아낌없이 나눴다. 후회없이 사랑했고, 온 마음을 다해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덕분에 아이는 잘 자라주었다. 입학실 날, 엄마와 손을 흔들고 가뿐히 학교 교문을 넘는 아이를 보며 깨달았다. 이제 내 마음을 채울 차례라는 것을. 




 얼마 전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 적지 않게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걔는 아직도 집에서 놀고 있어? 아휴. 등록금 아까워."


 그 사람의 논리대로라면 나는 넉넉치 않은 형편에도 4년제 대학의 등록금을 말없이 완납해주신 부모님께 엎드려 사죄라도 드려야할 판이다. 그 말을 한 사람을 만나 따지고 싶었다. 당신의 아이에게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는지 되묻고 싶었다.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몇 날 며칠을 두고 곰곰이 생각했다. 왜 그 말에 화가 났는지. 그리고 나도 그 말에 일정 부분 동의하고 있음을 알았다.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는데 4년제 대학에서 배운 학위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끄럽게도 나란 사람은 엄마로서의 '나'와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나'를 양립할 용기가 아직도 나지 않는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당장은 다시 출근하는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내 나이 마흔에 다시 시작하는 일이라면 좀 더 즐거운 마음으로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다. 


 스무살 대학전공을 정하던 시절이나, 스물다섯에 첫 직장을 구할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복잡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나의 적성 찾기에 몰두하고 있다. 기쁜 마음으로 지속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기회가 될 때마다 강의를 찾아 듣고,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얼마 전에는 사이버대학에도 등록해서 공부중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아찾기는 현재진행 중인 덕분에 내 신분은 여전히 그냥 전업주부다. 


 엄마들의 세계에서는 아이를 낳은 기혼 여성은 워킹맘아니면 전업맘으로 구분된다. 그 중간 어디쯤에서 어중간하게 자기계발에 몰두하고 있는 나는 여전히 그냥 전업맘에 속한다. 일을 하고 있지 않으므로. 




 요즘 나의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은 아이 하교를 돕는 일이다. 1학년 키 작은 아이의 등짝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책가방을 당장이라도 대신 들어주는 일이 큰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아이 가방을 대신 들쳐메고 싶은 마음을 고쳐 먹는다. 아이의 가방을 대신 들어주지 않는 것은 나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아이 뒤치닥거리하며 자식 성공이 곧 소원인 그런 사람은 아니라는 소리 없는 외침. 


 그렇게 책가방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나는 여전히 어쩔 수 없이 전업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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