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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Feb 13. 2023

몽키스패너를 든 여자

 큼직한 두 손에는 빨간 목장갑을 끼고, 한 손에는 드라이버를 한 손에는 스패너를 들었다. 나사를 쪼이려 힘을 줄 때마다 불뚝불뚝 힘줄이 솟는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뺨을 타고 흐른다. 무심한 듯 옷소매로 땀을 쓱 한번 닦고는 다시 작업에 열중한다. 


 "아이씨 허리 아파."


 어째 그림이 좋다 했다. 군말 없이 잘하고 있다 싶더니 역시나 구시렁구시렁 토를 탈기 시작한다. 


 "갑자기 자전거를 왜 탄다는 거야! 이래놓고 안 타기만 해 봐!"


 엄밀히 말하면 갑자기는 아니다. 지난해 가을부터 이야기했다. 이제 두 발 자전거 연습도 해야 하니 보조바퀴를 좀 떼 달라고. 알겠다며 미루고 미루다 겨울이 왔고 다시 봄이 오고 있는 거다. 


 '그렇게 짜증 낼 거면 그만둬! 내가 하고 말지.' 


 이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이럴 때는 조용히 입을 다무는 것이 상책이다. 괜히 이러쿵저러쿵 맞장구를 쳐봐야 결국 싸움이 될 것이 뻔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으면 진작에 했다. 남편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일이니 잠자코 듣고 있을 수밖에. 아빠 곁에서 눈치를 보고 서 있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화가 났지만 참기로 했다. 자칫하면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다. 


 작정하고 남녀차별적인 발언을 좀 보태자면 나는 모든 남자는 설계도를 보는데 능숙하고, 공구를 잘 다루는 줄 알았다. 살다 보면 크고 작게 생기는 집수리. 예를 들면 문손잡이나 변기커버, 샤워기, 전등 교체 등은 당연히 남편이 가뿐히 해낼 줄 알았다. 그 환상이 처음 깨진 것은 신혼집의 샤워기를 교체할 때였다. 오래된 전셋집에 샤워기가 고장 나 교체를 해야 했다. 당연히 남편에게 부탁했다. 그런데 이 남자가 교체할 생각은 안 하고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거다. 한참을 그러더니 이번에는 화장실에 들어가 샤워기를 뚫어져라 쳐다보고만 서 있다. 


 "뭐 하는 거야? 도와줄까?"


 내 말도 들리지 않는지 심각한 표정으로 한참을 서서 요리조리 둘러보더니 결론은


 "나 못할 것 같아. 사람 부르자."


 결국 인건비까지 포함해서 7만 원을 주고 샤워기를 교체했다. 


 다음번에는 이케아에서 서랍장을 구입했을 때다. 집에 와서 직접 조립을 하는데 이 남자, 설계도가 찢어지도록 보고 또 보고만 있지 도무지 시작할 생각을 안 한다. 


 "이리 줘봐. 내가 한번 볼게." 


 답답한 마음에 결국 내가 조립을 시작했고 몇몇 힘을 쓰는 일만 남편이 도왔다. 이런 일을 몇 번 겪고 난 뒤로는 웬만한 일에는 남편을 부르지 않았다. 가구 조립 정도는 직접 했고, 변기, 샤워기, 전등 교체도 그냥 내가 했다. 그럼에도 몇몇 일은 여자인 내가 하기에는 힘든 일들이 있었고 남편의 도움을 받을 때마다 그 짜증을 견뎌야 했다. 


 솔직히 그런 남편을 보며 실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남자라면 자고로 군말 없이 척척 해낼 줄 알았던 일들을 헤매며 마무리도 못 짓고 짜증만 내고 있었으니까. 이해는 된다. 자기도 처음 해보는 일이니 미숙할 수 있지. 미숙한 자신이 화가 나 짜증도 나겠지. 잘 못 하는 일이니까 자꾸 미루고 싶을 테고. 그런데 크면서 이런 집안일 한 번도 안 해본 거야? 남자가?


 반대로 생각해 보면 나라고 별 반 다를 것이 없다. 집안 살림을 똑 부러지게 해내고, 요리를 척척 만들어내는 그런 아내가 아니니까. 나도 크면서 엄마를 도와 집안 살림을 해본 적이 거의 없었으니 남편이라고 크게 다를 리 없다. 남편이 이런 나에게 한 번도 실망한 내색을 한 적이 없는 걸 보면 어쩌면 내가 더 속이 좁은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너나 나나 곱게 자라 집안일 한번 안 해보고 자란 건 마찬가지인데 미숙하다고 한심한 눈빛으로 쳐다본 내가 잘못했다. 남편이 앞치마 차기를 바란다면, 나도 몽키스패너를 드는 것이 인지상정. 이제는 뒷짐 지고 평가하듯 서 있는 대신 함께 도와야지. 그동안 미안해 남편. 


 그리고 우리 아들한테는 꼭 가르치자. 문손잡이 가는 법, 전등 교체하는 법, 변기뚜껑 바꾸는 법 등등. 살아보니 근의 공식은 몰라도 사는데 지장 없지만 이런 건 모르면 영 불편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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