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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Feb 09. 2023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삐 소리 후......

띠리링.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열 통이 넘게 전화를 거는 중이다. 이 정도면 아무리 시끄러운 술자리여도 한두 명은 진동소리를 눈치채고 알려줄 만도 한데 어떻게 한 번을 안 받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평소 같았으면 나도 포기하고 그냥 잤을 거다. 때가 되면 들어오겠지 마음 편히 생각했을 텐데 오늘은 그게 안된다. 낮에 마신 스타벅스 커피 탓이다. 입이 고급스럽지 못한 탓에 나는 유독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면 불면증에 시달린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희한하게 불안한 생각들이 떠오른다. 어릴 때 아직 귀가하지 않은 엄마, 아빠를 기다리며 상상하던 것처럼 소중한 사람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무서운 상상을 하게 된다. 잊으려 하면 할수록 저절로 생각이 난다. 


불안한 마음을 감추기 위해 전화기를 붙잡고 통화버튼을 수십 번 눌렀다. 여전히 들리는 소리는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왜? 도대체 왜 전화를 받을 수 없는 건데!


그렇게 끈질기게 연결을 시도한 끝에 저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지금 가고 있어. 엘리베이터 앞이야."

"왜 전화를 안 받아?"

"미안해. 전화 오는지......"


뚝. 


소심한 복수랍시고 나는 남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래도 속이 풀리지 않아 혹여나 술에 취한 남편이 취해 넘어질까 켜두었던 수면등도 과감히 꺼버렸다. 


'쳇. 넘어져 다치거나 말거나!'


남편은 잠시 후 집에 들어와 화장실에 몇 번 들락거리더니 침대에 누워이내 코를 골며 잠이 든다. 나는 여태 낮에 마신 커피 한잔 덕에 잠이 안 와서 뒤척이고 있는데 들어오자마자 꿀잠에 빠져든 남편을 보니 또 한 번 울화통이 터진다. 잠든 얼굴에 대고 한바탕 욕이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잠을 청했다. 


어김없는 알람소리와 함께 잠에서 깬 남편은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욕실에 들어가 출근 준비를 시작한다. 샤워기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 소리, 머리를 말리는 헤어드라이기 소리 더 이상 소음을 견디지 못하고 나도 일어난다. 어젯밤 마음 같아서는 아침밥은 무슨 차갑게 인사도 없이 보내고 싶은데 희한하게도 출근길 남편의 아침밥은 걱정이 된다. 해장국을 끓이지는 못해도 미리 만들어 둔 국을 데워 아침을 먹이고 또 한 번 소심한 복수랍시고 출근하는 남편을 모른 척 보냈다. 그리고는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식탁에 앉아있자니 짠한 마음이 든다. 


부부란 이런 것일까. 한순간 미운 감정에 사로잡혀 다시는 못 살 것 같은 기분이 들다가도 쓸쓸한 뒷모습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안아주고 마는 그런 관계. 


오늘 저녁 식사는 남편을 위해 고기를 볶아야겠다. 얼큰한 국물에 제육볶음으로 화해를 청해야겠다. 아니, 그런데 잘못은 남편이 했는데 왜 내가 먼저 화해를 청한다는 거야! 그런 건 난 모르겠고, 기죽은 남편의 뒷모습에 되려 마음이 짠해져 잘못도 없이 사과를 해버리고 마는 나는 미련한 곰 같은 아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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