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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Apr 04. 2023

아이가 기침을 하면 추억이 떠오른다

 콜록 콜록.


 나는 아이의 기침소리가 듣기 싫다. 감기에 걸린 아이는 잘못이 없고, 아픈 아이를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한 모성애일텐데 이상하게도 나는 아이가 기침을 하면 화가 난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의 기침은 정당하고, 내가 화를 낼 이유는 없는데도 감정이 소용돌이 친다. 


 따지고보면 아이가 감기에 걸리는데 일조한 건 나다. 무심한 엄마는 미세먼지가 심한지도 모르고 아이를 데리고 마스크도 씌우지 않은 채 그것도 야외에서 장장 세시간을 놀았다. 공원에 아무도 없을 때 눈치를 챘어야 하는건데 그때의 나는 한심하게도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다들 놀지 않고 어디갔을까?' 라고 생각했다. 


 호흡기가 약한 아이는 어김없이 감기에 걸렸다. 그날 저녁부터 기침소리가 예사롭지 않더니 밤새 기침을 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동안의 경험상 우리 아이는 기침이 나면 반드시 열이 나고, 급속도로 상태가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토요일이라 소아과 대기가 어마어마했지만 귀찮아하는 남편을 채근하여 9시부터 줄을 서서 접수를 하고,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두시간이라는 대기시간에 비해 원장님과의 상담은 짧았지만 약을 받아오니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병원에 다녀오니 벌써 점심시간이었다. 후다닥 점심을 차려 밥을 먹고, 아이 약을 먹였다. 기침이뚝 하고 떨어지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환절기 감기가 어디 그렇게 만만할까. 아이는 연신 기침을 하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급기야 점심으로 먹은 밥을 쏟아냈다. 그런 아이의 기침 소리를 들으며 불쾌한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데 불현듯 귓가에 한마디가 맴돌았다. 


"어이구 진짜. 기침 좀 참아! 듣기 싫어 죽겠네!" 


 그 말을 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맞다. 우리 엄마였다. 엄마에게는 건강염려증이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아버지, 어머니, 친오빠 등을 차례로 하늘나라로 보내면서 가까운 사람 특히 가족이 아픈 것에 대해 안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엄마에게 어릴 적 나의 기침소리는 안좋은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가 되어 괴롭혔다. 


 콜록. 그 소리에 본인이 학교를 그만두고 병수발을 들어야만 했던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떠오르고, 콜록 소리에 먼저 세상을 떠난 오빠를 대신해 빚쟁이들에게 시달려야했던 기억이 떠올랐을거다. 그렇게 따지면 엄마의 화는 정당했지만 어린 내가 이해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아이의 기침 소리가 유독 거슬리고 화가 났던 이유는 나의 어릴 적 기억 때문이었다. 감기에 걸려 서러운데 기침을 할 때마다 엄마가 화를 내며 기침을 하지 말라고 소리치니 당황스럽고 서글펐을테지. 그 때의 나쁜 기억이 아이가 기침을 할 때마다 소환되는 것이다. 


"엄마, 나 어릴 때 기침하면 엄마가 화냈던 거 기억나?"

".... 기억나지. 미안하다 미안해. 그땐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어른이 된 나는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고, 그때 화를 내던 엄마에게 솔직히 털어놓았다. 다행히 우리 엄마는  30년이 다 되어가는 쾌쾌묵은 추억에 대한 딸의 투정에도 사과할 줄 아는 멋진 사람이었다. 


 엄마에게 사과를 받았다고 해서 아이가 기침을 할 때 마음이 편해지지는 않는다. 여전히 듣기 싫고 화가날 때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화가 나는 그대로 화를 내지는 않는다. 대신 이렇게 돌려말한다. 


"00아, 엄마가 어렸을 때는 말이다. 기침을 하면 할머니가 기침 좀 그만하라고 엄청 화를 내셨다! 하지만 엄마는 참아볼게."


 만약 아이의 어떤 행동에 이유없이 화가 나고, 불쾌한 감정이 생긴다면 혹시 나의 어릴 적 경험과 연관이 있지 않은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어쩌면 지금 화가 나 있는 것은 엄마인 내가 아니라 어릴 적 아이였던 '나'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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