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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Apr 26. 2023

이력서를 썼다

 8년 만에 이력서를 썼다. 일주일 동안 제출하지 못한 이력서를 들고 고민만 하다가 막판에 부랴부랴 접수를 하고 돌아왔다. 이 이력서는 나의 가능성을 점쳐보는 기회였다. 아직 현역에서 일할 수 있을지, 줄곧 아이만 키워 온 아줌마를 회사는 채용할 의사가 있는지 알고 싶었다. 만약 운이 좋게 면접 볼 기회가 생긴다면 어떤 옷을 입고 갈지 미리 구상도 끝내 놓았다. 


 나흘 뒤, 서류심사에 통과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면접을 보러 오란다. 아직 가능성이 있구나, 완전히 끝난건 아니구나 싶어 살짝 설렜다. 그런데 면접은 가야할까? 말아야 할까? 사실 최종합격하면 당장 다음주부터 출근을 해야 한다. 주변에 도와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이는 아직까지도 하굣길에 내가 마중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런 아이를 당장 학원에 보내놓고 나는 출근할 수 있을까? 


 남편에게 먼저 사정을 이야기하니 본인이 육아휴직을 내겠다고 한다. 하지만 회사에서 선뜻 휴직을 받아줄지는 알 수 없단다. 무작정 우리 사정만 내세우며 당장 못 나온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정이 이러이러해서 한 달 정도만 아이를 봐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출근을 하고 싶은데 어떠냐는 말에 엄마는 대뜸 나를 말린다. 아이를 생각하라며 아이가 어릴 때는 엄마가 곁에 있어주는 것이 최고라고 다시 한번 나도 아는 말을 한다. 


 물론 도움를 쓰든 학원을 돌리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남편도 아이도 친정엄마도 누구 하나 나의 편이 없는 상황에서 내가 고집부려 출근을 한다한들 결과가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주저하게 된다. 마음이 울쩍하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여러 상황을 종합해볼 때, 지금 이 시점에서 갑자기 출근하는 것은 무리다. 


 내일은 지원했던 회사에 전화를 걸어 면접을 볼 수 없게되었다고 사정을 이야기 할 생각이다. 사실 생각만으로 마음이 울쩍해진다. 


 나는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무엇을 어떻게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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