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이 May 10. 2023

올 여름 민소매를 입고 싶습니다.

 작년부터 서서히 살이 찌기 시작하더니 10kg이 늘었습니다. 처음 시작은 편두통을 치료하려고 먹기 시작했던 약이었습니다. 약을 먹으면서부터 급격하게 식욕이 늘고, 소화력이 좋아지는 것이 그저 건강해지는 신호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순식간에 8kg이 불어나더니 약을 끊고 식사량을 조절하는데도 불구하고 빠지기는 커녕 10kg까지 불어나고서야 체중계의 숫자가 멈췄습니다. 


 평생 살이 쪘던 순간을 생각해보면 고3 때 앉아서 공부만 했을 때, 일본유학시절 매일 편의점 음식으로 식사를 떼우며 살았을 때, 임신해서 체중이 불었을 때. 이렇게 딱 세번뿐이었습니다. 그때마다 별다른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원래 체중으로 돌아왔습니다. 남들은 다이어트가 평생의 숙제라고 하던데 타고나기를 소화력이 약해서 많이 먹지 못하니 식욕도 많지 않고 먹는게 없으니 살도 많이 찌지 않는 축복받은 체형이었습니다. 이번에도 그렇게 되려니 생각하고 지냈는데 느낌이 싸 합니다. 


 건강검진을 앞두고 한달을 식사량도 조절하고 매일 운동을 하고 아침마다 체중계에 올라섰습니다. 그런데 살이 하나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이런게 나잇살이라는 걸까요? 팔뚝, 뱃살, 엉덩이, 허벅지에 군살이 골고루 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굶으면 체력이 달리고, 힘든 운동은 몸이 아파서 못 하겠고 다이어트 한약이라도 지어먹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평생을 이렇게 살이 쪄서 고민해보기는 처음입니다. 


 처음 체중이 불어난 것을 느낀 건 잘 맞던 바지가 꽉 끼고 나서부터였습니다. 허벅지까지 힘겹게 올라오던 바지가 엉덩이에서 끼더니 아예 잠기지를 않더군요. '요즘 조금 과식했나? 금방 빠지겠지'했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빠지기는 커녕 아제는 아예 허벅지부터 올라가지를 않더군요. 그런데도 무슨 생각이었는지 금방 빠질거라고 생각하며 버텼습니다. 차마 L사이즈 바지를 사고 싶지 않았어요. 살 빠지면 입지도 못할건데 돈이 아깝다며 버티고 버티다 지난주에 L사이즈 바지를 두 벌이나 새로 샀습니다. 이제야 이 몸무게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나봅니다.  


 일상복이야 사이즈 늘려입고, 적당히 가려입으면 해결된다해도 문제는 발레복입니다. 레오타드는 도망칠 방법이 없습니다. 타이즈에 눌려 볼록해진 뱃살이 정확히 두 겹으로 나누어지는 것을 보며 부랴부랴 티셔츠로 가려보고 스커트로 숨겨보았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팔을 들고 다리를 들 때마다 존재감을 들어내는 뱃살 덕분에 자신감이 없어졌습니다. 재미있던 발레마저 흥미를 잃게 될 지경입니다. 그나마 이것도 안하면 몸매가 더 망가질거라는 생각에 꾸역꾸역 버티고 있습니다. 살이 쪄도 발레를 할 수 있다는 말을 취소합니다. 살이 찌니 그 몸을 마주하며 춤을 추는 일이 괴롭습니다. 렌즈를 빼고 흐릿한 눈으로 운동을 했습니다. 차라리 안 보는 편이 나아서요. 


 레오타드는 비교적 탄성이 좋은데도 불구하고 비대해진 엉덩이의 벽을 넘지 못하고 우드득 소리를 내며 찢어지려고 하길래 곱게 접어 다시 서랍에 넣어두었습니다. 언젠가 살이 빠지면 다시 입을 수 있겠지요. 할 수 없이 XL사이즈의 레오타드를 새로 한 벌 샀습니다. 모델이 입은 느낌과 한껏 다른 핏에 실망했지만 일단 이거라도 입어야지 방법이 없었습니다. 수업시간내내 선생님이 자꾸 아랫배를 집어 넣어라며 소리치는데 나한테 하는 말 같아서 아팠습니다. 


 날이 더워지고 있습니다. 지난 겨울, 내년 여름에는 민소매를 입겠다며 레이저제모까지 마쳤는데 민소매는 커녕 반바지를 입을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한번 찐 살이 도무지 빠질 기미가 안 보입니다. 얼마남지 않은 여름, 어떻게 하면 민소매에 반바지를 입을 수 있을까요? 살이 빠지기는 빠질까요? 간절히 궁금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력서를 썼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