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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May 24. 2023

남편은 아프고, 아들은 울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게 실수였다. 

언제부터인가 건강검진을 할 때마다 잔잔하게 날아오던 경고를 무시했다. 


- 과체중. 

- 혈압이 높다. 

- 성인병 위험이 있다. 

- 스트레스 관리가 필요하다. 


현대인들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흔한 질병아니냐고, 아픈 곳은 없으니 방심하며 살았다. 


그렇게 몇 년을 버티고 버티며 마흔이 되었다. 

남편은 결국, 조직검사를 받아보라는 이야기를 듣고 말았다.


의심되는 질병에 관해 한참동안 인터넷을 뒤지고, 유튜브를 쳐다보던 남편은 어두워진 얼굴로 '이게 다 회사 때문이야!'라며 성질을 부렸다. 그 말에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남편 혼자 가장의 무게를 견디며 힘겹게 버텨온 결과가 이렇게 몸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하니 짠한 마음에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었다. 


병원에서는 2박 3일간 입원을 준비하라고 했다. 검사 당일에는 12시간 동안 움직일 수 없으니 보호자가 필요했다. 10년 가까이 함께 살면서 한번도 남편의 보호자가 '나'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렇다. 이 남자의 보호자는 이제 나다. 


중요한건 이제 나는 남편의 보호자일 뿐만 아니라 아들의 보호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이었다. 

병원에 가 있는 동안 아들 학교를 보내고, 때마다 식사를 챙겨 줄 또 다른 보호자가 필요했다. 나이가 마흔이 넘어도 여전히 보호자라고 믿을건 친정엄마 뿐이다. 엄마는 두 말도 하지 않고 흔쾌히 먼 길을 오셨다. 


입원 첫 날은 우선 남편이 혼자 병실에 남기로 했다. 아이와 함께 남편을 병원에 데려다주고 나오는데 아이가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엄마, 조금 슬프다. 아빠는 어디가 아픈거야?"

"걱정하지마. 큰 병은 아니야. 간단한 검사만 받고 집으로 올거야. 알겠지?"


환자복을 입고, 주삿바늘을 꼽은 채 누워있는 아빠의 사진을 보고 시무룩해진 아이를 위로했다. 아이를 위로했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아이가 있음에 내가 위로받았다. 


다음 날, 친정엄마가 집에 오시고 나는 남편이 있는 병실로 향했다. 체구가 크고 건강해보이는 남편이 침대에 실려 검사실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검사를 마치고 온 남편은 허리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꼼짝없이 누워있어야 했다. 소변도 누워서 봐야 하니 보호자가 병에 잘 받아두었다가 교수님이 회진하실 때 보여주어야 한단다. 병든 남편의 대소변을 받아주며 병수발을 들었다는 이야기는 늙은 노부부에게나 있을 법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 나이에 내가 그 주인공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남편의 상태를 보니 집에 돌아갈 수가 없었다. 아이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가 내일 학교 끝나고 데리러 갈테니 오늘은 할머니와 하루 자라고 일렀다. 아이는 애써 울음을 참으며 이불 속에서 흐느끼고 있었다. 친정엄마는 혹여나 딸의 마음이 약해질까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남편은 아프고, 아들은 울고. 내 몸이 둘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딱딱한 보조 침대에 누워 이불도 없이 초라하게 밤을 지새웠다. 새벽부터 병실을 들락날락하는 간호사들 덕분에 일찍 잠에서 깼다. 다행히 혼자서도 거동이 가능해진 남편을 보니 아들 생각부터 났다. 


"나, 집에 좀 다녀올게. 후 좀 보고 와야겠어."


그렇게 이른 새벽 서둘러 차에 시동을 걸고 집으로 향했다. 아이는 나를 꼭 안고 한참을 가만히 서 있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잠시 잠이 들었을 때, 나의 또 다른 보호자 친정엄마는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널고, 청소를 하고 있었다. 병원비에 보태라며 두둑히 용돈을 건네주셨다.  


아이의 울먹이는 모습이 마음에 걸려 새벽부터 달려온 나란 엄마. 

사위가 아프다는 소식에 딸을 도우려 먼 길을 달려온 우리 엄마. 


아마 같은 마음이었겠지. 


힘든 시기를 함께 걸어 온 사람은 평생 잊지 못하는 법이다. 우리 가족은 이번 일을 계기로 더욱 결속력이 단단해진 기분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보호자가 되어주면서 말이다. 


40대의 평범한 부부는 이렇게 영글어간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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