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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Dec 01. 2023

대장암 말기, 잘 한 선택이었을까?

 이른 눈이 내리던 11월. 사촌동생 시아버님의 부고 소식이 들려왔다. 요즘 누가 시댁 식구 부고까지 챙기느냐며 눈도 오는데 굳이 문상을 가야 하느냐, 부의금은 어떻게 내 야하냐 하는 논쟁이 잠시 오갔다. 불과 3일 전 동생과 안부전화를 나눴고, 시아버님 병세가 악화되어 오래 사시지 못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논쟁과는 별개로 마음을 전했다. 


 100세도 거뜬히 산다는 요즘 세상에 동생의 시아버님은 칠순이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대장암 선고를 받고 돌아가셨다. 평생을 시골에서 사과 농사를 짓고 사시던 아버님은 병이나 암 따위는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기셨는지 그 흔한 건강검진 한 번을 하지 않으셨고, 보험도 없으셨다고 한다. 갑자기 변비가 생겨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에 가셨다가 대장암 말기이며 이미 간까지 전이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은 것이 1년 전이었다. 효자로 소문난 아들은 당장 아버님 거취를 서울로 옮기고 유명한 대학병원에 예약을 걸었고 수술을 위한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아버님은 항암치료를 1회 받고는 다시 댁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수술도 원하지 않으셔서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도 수술은 하셔야 하는 거 아니야? 가망이 없어서 안 하시는 거야?"

 "아니. 나도 어떤 마음이신지 모르겠어. 치료가 너무 힘들다고 그 말만 하셨어."


 혼란스러웠다. 아무리 대장암 말기에 간까지 전이가 진행되었다고 해도 병원에서 수술을 권한 거라면 살 수 있는 희망이 있다는 것인데 당연히 시키는 대로 치료도 하고, 수술을 받고, 나으실 거라는 희망을 품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살 수 있는 희망이 1%라도 있다면 당연히 수술을 받으셔야 하는 거 아니야? 그렇게 생각했다. 효자라는 아들이 어째서 아버지를 설득하여 수술을 받게 하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1년 후, 짧은 투병생활을 마치고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시아버님을 보며 사실은 이게 자연스러운 죽음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인간이 죽음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생존에 대한 집착 때문이라고 했다. 생존에 대한 집착,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의료기술을 꾸준히 성장시켰고 보다 나은 약물을 개발했고 실제로 더 오래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오래 사는 것에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 100세 시대를 살기 위해서는 경제적 여유가 필요하고, 건강한 신체가 보장되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 두 가지를 모두 갖고 100세를 맞이하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노후대비도 없이 갑자기 100세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고, 옛날처럼 자식들이 부모를 봉양하는 사회도 아닌 상황에 노인들의 우울증이 증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출처 : 픽사베이


 인간 생명에 대한 존중과 사람을 살리겠다는 외과의사의 사명감도 모두 동의한다. 하지만 사실은 나이가 들어 병을 갖게 되고, 그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었을까? 만약 동생의 시아버님이 1년 전 항암을 견디고 수술도 성공해 다시 건강을 되찾으셨다면 남은 여생은 본인이 원하는 맛있는 음식을 마음대로 먹을 수 없고, 수술로 인한 후유증이나 자주 병원을 드나들어야 하는 번거로움 같은 것들을 차치하고도 오로지 살아있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사셨을까? 잘 모르겠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오랫동안 투병하는 부모님을 경제적으로 돕고 마음을 쓰다가 나중에는 '저 노인은 언제 돌아가시나'라는 생각을 했다는 어른들을 종종 보았다. 100세가 넘어 치매까지 온 할머니와 함께 사는 친구는 할머니 때문에 우리 엄마가 너무 고생한다며 은근히 돌아가시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였다. 


 오래 사는 것은 축복일까? 재앙일까?  


 친정엄마는 85세가 되는 해 봄날, 몇 달만 투병을 하다 죽고 싶다고 하시며 아예 표어처럼 적어 거실 벽에 떡하니 붙여놓으셨다. 생각해 보니 엄마의 말대로 이루어지려면 동생의 시아버님처럼 엄마는 84세 즈음에 병에 걸려야 하고 어떤 외과적 치료를 받지 않은 채로 돌아가셔야 한다. 우리 엄마는 막상 그 나이가 되어 병이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수술을 받지 않겠다고 결심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우리 엄마가 100세까지 살기를 바라며 어떻게 해서든 수술을 받게 설득할까 아니면 엄마의 뜻을 존중할 수 있을까? 엄마의 뜻을 존중했다면 자식으로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힘들어할까? 아니면 엄마의 뜻대로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었음에 감사해할까? 


 지금으로서는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다. 아버님을 떠나보낸 효자 아들 제부는 지금 어떤 마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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