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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Aug 21. 2023

A+ 성적표를 받고도 왜 칭찬받지 못하는가

일단 자랑부터 해야겠다. 나는 지금 자존감 충전이 필요한 상태니까. 


총 18학점을 수강하는동안 현재 나의 성적은 평균평점 4.5 만점, 전체 A+ 라는 성적을 받았다. 매우 우수한 성적이다. 만약 학창시절 내가 이런 성적표를 받았다면 부모님은 기뻐서 소리를 지르셨을지도 모른다. 아낌없이 칭찬을 해주고 가까운 지인들에게 안부전화인 척 전화를 걸어 은근슬쩍 자랑을 늘어놓았을거다. 그럼 그걸 들으면서 어깨에 힘이 좀 들어갔겠지. 


그런데 마흔에는 공부하겠다는 주부를 칭찬해주는 이가 없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관심 있는 사람이 없다. 내가 어떤 수업을 들었고, 최고의 학점을 받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했는지 누구도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같이 사는 가족들에게 민폐 끼치지 않으려고 조용히 수업듣고 남몰래 시험 준비를 해서 그런지 내가 시험을 봤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아이의 백점짜리 받아쓰기 앞에서는 박수를 치고, 과한 칭찬을 퍼붓고, 성대한 과자파티를 열어주는 엄마인 나도 정작 나의 만점 성적표 앞에서는 환호도 박수도 나오지 않는다. 그저 당연히 그래야만 했다는 듯이.

남편에게 넌지시 말을 꺼내봤다. 


"나 공부하는거 있잖아. 성적 나왔는데 만점 받았어."

"그래? 장학금 받는거지?"

"어. 장학금 받겠지 뭐."


감히 남편이 벌어다주는 월급으로 생활하는 전업주부가 오로지 나를 위해 공부를 하겠다는 결심을 했을 때는 이 정도 각오는 되어 있어야 한다. 아무도 나의 공부를 응원해주거나 반가워하지 않을 거라는 것. 


만점을 받았으니 당연히 장학생으로 뽑혀 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거라고 믿는 남편의 생각과 달리 애초에 나는 장학금 대상자가 아니다. 이수학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장학금 대상자가 되려면 최소 15학점 이상을 수강했어야 한다. 수강신청을 할 때, 아이를 돌보거나 살림을 하는데 소홀해질까봐 최소 학점만 신청하는데 급급했지 장학금까지는 고려하지 못했다. 한 과목만 더 들었어도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거였는데 사실 가장 아쉬운건 나다. 하지만 내색을 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잘 알아봤어야지!"하고 괜한 핀잔만 듣게 될게 뻔하다. 혼자 속앓이를 하며 2학기 등록금은 얼마일지 부지런히 계산을 한다. 


무슨일인지 남편은 나의 등록금 출처를 묻지 않는다. 수업료가 얼마인지, 수업을 받으면 취직을 할 수 있는건지 등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마치 궁금해하는 순간 자기에게 등록금을 내달라고 할까봐 겁이 나는 사람처럼 내가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이상하리만큼 관심이 없다. 그런 사람에게 만점짜리 성적표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니 나도 잠자코 만점짜리 성적표 앞에서 아이처럼 들뜨지도 인정을 바라지도 않고 그저 조용히 미소짓고 지나갈뿐이다. 


결혼한 어른의 자기계발은 결코 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 같다. 돈이 없어서 또는 돈도 되지 않는 일이라는 이유로 학생 때라면 기꺼이 응원받고 인정받아야 할 일도 조용히 넘어가야 할 때가 있다. 결국 이 공부의 성패는 만점짜리 성적표가 아니라 돈을 벌어올 수 있느냐 없느냐로 평가받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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