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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Mar 12. 2024

내가 찾는 책은 어디로 갔을까?

 새로 방문한 도서관에서는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는다. 도서관마다 조금씩 분위기가 다른데 이곳은 유독 오래 된 도서관이었다. 다행히 책상이나 걸상은 세월에 비해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어떤 책을 읽겠다는 생각 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 주변을 쭉 둘러보다가 눈에 들어오는 책을 집어 들었다. 일단 책상에 자리를 잡고 앉았지만 여전히 낯선 도서관 주변을 살피느라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았다.


 이 도서관에는 유독 나이드신 분들이 많았다. 젊은 나도 엄두도 만한 벽돌책을 빌려가는 어르신을 보며 '노안이 오셨나? 저걸 어떻게 읽으시려고 그러지?' 생각하던 참에 데스크에서 들려오는 대화에 귀가 쫑긋해졌다.


"이 책을 찾고 있는데 없네요."

"아. 이 책은 보존서고에 보관되어 있네요. 필요하시면 가져다 드릴까요?"

"보존서고요......"


 둘의 대화는 이렇게 끝나는가 싶었는데 무슨 일인지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서로를 여전히 바라보고 있다. 사서는 책이 필요하면 가져다주겠다고 친절히 말하는 하지만 말투나 표정으로 짐작하건데 '굳이 필요하다면' 이란 말이 생략되어 있는 하다. 상대도 숨어있는 의미를 읽었는지 괜찮다고 거절했지만 사실은 책이 읽고 싶은 눈치다. 흥미로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궁금해 눈은 책에 고정한 채 귀로는 둘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침묵을 사서쪽이었다.


"꼭 필요하시면 갖다 드릴게요. 멀지 않아요."


 그녀의 직업정신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왜냐하면 오래된 도서관 자료실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사서 한 명 뿐이고 방금 전 어르신 한 분이 책을 잔뜩 반납하고 떠난지라 정리할 책이 많아 보였기 때문이다. 책을 찾던 사람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갑자기 말을 돌린다.


"그런데 보존서고가 뭐죠? 어디에 있나요?"


 이건 생각못한 전개인데. 그런데 궁금하다. 도서관에서 자료검색을 하다보면 보존서고 보관중이라는 말을 종종 보긴했지만 이 책은 왜 보존서고에 가 있는지 그곳은 어디인지는 정확히 몰랐다.


"자료실 책장이 한정적이라 책을 전부 꽂아둘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최근 5년간 대출한 이력이 없는 책들은 별도의 서고에서 보관하고 있어요."


 지금 사서 앞에 서 있는 그 남자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가 애타게 찾는 책이 5년간 아무도 찾은 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 사람. '5년 동안이나 아무도 찾지 않은 책이라면 안 봐도 되는 책이 아닐까?' 라고 생각할까 반대로 '5년 동안 아무도 찾지 않은 책을 발견해내다니. 꼭 읽고 싶어!' 라고 생각할까?


 이 남자는 후자인 듯 했다. 그 말을 듣고서도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다. 사서는 다시 한번 직업정신을 발휘해 "제가 가져올게요. 잠시만 계세요." 했지만 남자는 끝내 아니라며 거절했고 결국 사서도 한 발 물러나 "꼭 필요하면 다시 말씀해주세요." 하고는 상황이 마무리 되었다.


 그 사람이 찾던 책은 뭐였을까? 왜 좀 더 적극적으로 가져다달라고 하지 않았을까? 꼬리를 물고 상상하다보니 보존서고에서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5년 동안이나 아무도 찾은 적 없는' 그 책이 가여워졌다. 오늘 그 남자가 좀 더 적극적으로 그 책을 원했다면 5년 만에 누군가의 손길이 닿았을 그 책이 말이다.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일단 도서관 홈페이지부터 찾아본다. 문제는 내가 찾는 책은 대부분 대출중일 때가 많다는거다. 신간이나 베스트셀러 유명한 도서는 좀처럼 구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예약을 걸어두는데 예약조차 순서를 기다려야 할 때도 있고, 어렵사리 예약하더라도 그 책의 존재를 잊을 때쯤에나 간신히 받아볼 수 있다. 찾는 책이 없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책장을 둘러볼 때도 있는데 어떤 책들은 항상 같은 자리에 있다. 늘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는 그 책을 우연히 집어들었다가 보석을 발견한 적도 몇 번 있다. 가장 최근에는 김혼비 작가의 <다정소감>이 그랬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


 5년 동안 자리를 지키던 책은 신간이나 베스트셀러에 밀려 결국 자리를 내어줄 때가 온다. 한 번 보존서고로 자리를 옮긴 도서는 점점 더 누군가의 손길이 닿기 어려워진다. 가끔 나조차 보존서고에 있다는 이유로 대출을 포기할 때가 있다. 목적없이 도서관을 찾았다가 우연히 발견될 '보석'이 될 기회도 사라진다. 누군가에게 읽힐 때 책으로서의 가치를 갖는다고 한다면 보존서고에서 아무도 찾지 않는 책이 되어버린 그 책의 운명을 어떻게 되는 것일까? 보존서고에서 폐기가 되기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폐기되기 전 누군가가 한 번이라도 그 책을 대출한다면 그 책은 폐기되지 않고 다시 부활할 수 있는 걸까?  


 그동안 보존서고에 보관 중이라는 말에 대출을 포기했던 책들이 떠올랐다. 더 빨리 발견해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번에는 5년 동안 한번도 책으로서 일하지 못한 그 아이에게 한번 더 읽힐 기회를 주고 싶다.


 나이가 들었나보다. 잊혀져가는 것들이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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