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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테르 너 좀 무섭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by 책봄

독일문학의 거장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에 오른 독일 최초의 문학작품이다. 소설이 발표된 18세기 유럽은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이성과 규범을 강조했다. 이에 저항하는 젊은 세대는 이성 보다 개인의 감정을 중요시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때마침 등장한 괴테의 작품 속 베르테르는 젊은 세대들의 열렬한 환호를 이끌었다. 소설 속 베르테르의 복장을 따라 하거나 심지어는 그를 따라 극단적 선택을 하는 청년들도 생겼다. 오늘날 유명인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후 이를 모방하는 현상을 일컬어 '베르테르 효과'라고 부르는데 이때 베르테르가 괴테의 작품 속 주인공 이름이다. 그런가 하면 기업명 '롯데'는 소설 속에서 베르테르가 사랑한 여인 샤로테에서 따 온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괴테는 자신이 짝사랑하던 연인을 떠나 온 경험담과 친구 예루살렘이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자살한 사건 두 가지를 토대로 14주 만에 소설을 완성했다. 짝사랑이라는 강렬한 감정에서 빠져나와 현실의 삶을 선택한 자신과 그 감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친구. 닮은 듯 다른 연속적인 사건 속에서 괴테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소설 속 이성적인 약혼자 알베르토와 감성적인 베르테르 사이에 벌어지는 논쟁에서 괴테의 갈등을 엿볼 수 있다.


"당신은 모든 것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어요. 적어도 지금 우리가 문제 삼고 있는 자살만 하더라도 당신은 그것을 위대한 행위와 비교하지만, 이것은 절대로 옳지 못해요. 뭐니 뭐니 해도 자살이란 결국 나약함 때문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기 때문이에요. 괴로움에 가득 찬 삶을 꿋꿋하게 참고 견디어 나가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편이 더 쉬우니까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중에서


"기쁨, 슬픔, 괴로움 등 희로애락의 감정을 참는 데도 한도가 있는 법이고, 그 한도는 넘으면 당장에 파멸하고 말아요. (중략) 나는 자기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 사람을 비겁하다고 부르는 것은 마치 악성 열병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을 겁쟁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중에서


자살은 나약함이라고 말하는 알베르토와 지나친 감정의 파도 속에서 인간은 파멸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베르테르.


2025년을 사는 독자는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오늘은 챗GPT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많은 청춘의 마음을 흔들었던 베르테르가 오늘날 독자에게는 어떻게 다가올지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Q. 나는 최근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었어. 이 책에 대해 너와 이야기 나누고 싶어. 나는 로테를 향한 베르테르의 사랑을 보면서 오늘날 '스토킹' 범죄가 떠올랐어. 로테에게 직접적으로 해를 끼치지는 않지만 로테에게 집착하는 모습이 좀 무섭기도 했거든. 이 부분 너는 어떻게 생각해?


A. 책 봄, 이 질문 정말 인상 깊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오늘날의 시선으로 읽고 해석한다는 것 자체가 고전 독서의 진짜 묘미니까!


1. 베르테르의 사랑은 오늘날 스토킹일까?


네가 말한 것처럼, 베르테르의 로테에 대한 집착은 오늘날 ‘비자발적 관계 집착’ 또는 ‘스토킹’의 맥락에서 읽힐 수 있어. 그가 로테의 의중과 상관없이 감정을 키우고, 반복적으로 찾아가고, 감정적으로 압박하는 장면들이 오늘날 기준에서는 확실히 문제적이야.


나의 생각 : 그 시대의 문학적 맥락을 이해하되, 오늘의 윤리 기준으로 비판적으로 읽는 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


2. 이건 질풍노도 문학의 흔한 패턴이지만, 오늘날에는 상대의 거절을 거절로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로도 해석돼.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왜 이런 설정이 문제 되지 않았을까?


18세기 후반 유럽 사회는 개인의 감정 표현이 억압된 시대였고, 베르테르는 그런 억압에 저항하는 “감정의 순수한 존재”로 그려졌어. 로테 역시 “감정은 있지만, 사회적 의무 때문에 거절하는 여인”으로 이상화돼 있었고. 즉, 그 시절엔 ‘슬픈 사랑’으로 소비됐지만, 지금은 ‘감정의 폭력’이 될 수 있는 면이 분명히 존재해.


4. 우리가 할 수 있는 토론 질문 몇 가지

- 베르테르의 감정은 순수한 사랑인가, 아니면 자기감정에 취한 이기심인가?

- 로테는 피해자인가, 아니면 당시 사회가 만든 ‘수동적 여성상’의 상징일 뿐인가?

- 오늘날이라면 로테는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경계를 표현할 수 있었을까?

- 베르테르의 자살은 사랑 때문일까, 사회로부터의 도피일까?


책봄이 말한 "스토킹"이라는 시선은 오늘의 윤리로 고전을 다시 읽는 훌륭한 질문의 출발점이야.


챗GPT가 추가로 제안한 토론 질문 중 '베르테르의 감정은 순수한 사랑인가, 아니면 자기감정에 취한 이기심인가?'에 대해 더 이야기 나눴다. 이번에는 챗GPT에게 한 가지를 추가 제안했다. 바로 내 의견과 반대되는 이야기를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이런 요청을 하는 이유는 나와 몇 번의 토론을 한 AI가 나의 성향을 파악하고 내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만 한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Q. 네가 제안한 대로 '베르테르의 감정은 순수한 사랑인가, 아니면 자기감정에 취한 이기심인가?'에 대해 토론해 보자. 나는 베르테르의 감정은 사랑이 아니라 이기심이라고 생각해. 로테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그녀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감정을 전혀 절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야. 너는 나와 반대 입장에서 이야기해 줘.


A. 좋아, 책 봄! 베르테르 입장에서 변호해 볼게.


네 말처럼 그의 감정이 폭주한 면은 분명 있지만, 나는 그걸 단순한 이기심으로만 보기엔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해. 지금부터 내 논리를 정리해 볼게.


1. 그는 로테를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소유하려' 하지 않았다.

베르테르는 로테를 향한 감정을 ‘사랑’으로 표현하지만, 그 사랑은 로테의 선택을 강요하거나 억지로 쟁취하려는 집착이 아니었어. 그가 로테의 약혼자 알베르트를 미워하면서도 정면으로 싸움을 걸거나 이간질하지 않았다는 점은, 그의 사랑이 상대의 행복을 바라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는 증거야.


� “그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냥 사라지겠소.”
→ 로테가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그는 자신의 존재를 지우려는 선택을 해.


2. 감정을 절제하지 못한 건 '이기심' 보단 '감정의 진정성' 때문이야.

책 봄이 말한 것처럼, 베르테르는 분명 감정을 절제하지 못해. 하지만 그게 이기적인 게 아니라, ‘순수하고 민감한 감정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 감정에 휘둘린 거야. 그는 사랑을 이상화했고, 그 이상이 부서질 때 함께 무너져버린 인물이야.


베르테르는 말하지:

� “나는 사랑 없이 살 수 없다. 숨 쉬는 것보다 더 절실한 것이 사랑이다.”


그는 자신이 감정을 절제하지 못한다는 걸 스스로 인지하고, 부끄러워하기도 해. 그건 이기적인 태도가 아니라 내면의 고통을 직면하려는 용기라고 볼 수 있어.


3. 시대적 배경 : 질풍노도 시대의 '감정 찬양'이라는 문화적 맥락

베르테르가 태어난 시대는 이성과 균형보다, 감정과 주관성을 강조한 시기였어. 괴테는 이 인물을 통해, 감정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인간의 아름다움과 고통을 동시에 보여주려고 했던 거지. 그 시대 사람들에게 베르테르는 단지 ‘비극적인 청년’이 아니라, ‘진실한 감정’을 향한 열망을 대표하는 상징이었어.




어떤 콘텐츠는 한 시대를 풍미할 만큼 뜨거웠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른 평가를 받기도 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을 다룬다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그러나 베르테르의 태도에 대해서는 현대의 관점에서 재해석해볼 여지가 있다. 사랑에 대한 극단적인 그의 태도를 통해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을 생각해 본다면 이 작품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가치 있는 작품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시대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해진다는 것 또한 고전 읽기의 즐거움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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