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읽기의 어려움에 대해서
나의 첫 고전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었다. 그 책을 선택한 이유는 첫 번째는 책 좀 읽는 사람들은 죄다 <데미안>을 읽는 것 같아서 두 번째는 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도 빠지지 않는 고전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책 값이 8천 원. 한 끼 점심값도 안 되는 가격에 교양을 쌓고 책 좀 읽는 지성인처럼 보이겠다 싶어 당장 구입했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 보려고 했다. 그러기가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데미안> 중에서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두 세계. 부모님의 따뜻한 보살핌이 있는 평화로운 세계와 전혀 다른 또 다른 세계를 소개하고 크로머를 만나 고통을 겪는 부분까지는 좋았다. 사춘기를 지난 성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이야기였으니까. 하지만 공감은 딱 거기까지. '카인과 아벨' 이야기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진도가 안 나갔다. 꾸역꾸역 글자를 읽고, 분량이 많지 않아 어찌어찌 완독은 했지만 남는 건 없었다.
그리고 드는 생각.
'이 책이 왜 좋다는 거지?'
유튜브에서 데미안을 검색했다.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읽으며 이 책이 왜 좋았는지 이유를 찾아다녔다. 어디서도 속 시원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두 번째 책은 조지 오웰의 <1984>였다. 역시 추천하는 사람이 많아서 후기가 좋아서 그리고 책 값이 저렴해서 선택했다. <데미안> 때와 똑같았다. 완독을 하긴 했는데 찜찜한 기분. 이 책을 읽었다고 하기에도 안 읽었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기분. 사람들이 조지 오웰은 천재라며 어떻게 미래를 이렇게 예견했을까 놀랍다는 후기를 마치 내 생각인 것처럼 떠들었지만 마음속에 물음표가 사라지지 않았다.
'이 책이 왜 좋은 거지?'
세 번째로 선택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마저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한 채 고전과 작별했다.
내가 다시 고전의 세계에 발을 담근 계기는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자벼움> 때문이었다. 소설이 재미있어서? 특별한 의미를 발견해서? 아니었다. 나는 미치도록 이 소설을 이해하고 싶었다. 독서모임에 나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앉아 있지 않고 한마디라도 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의 감상을 내 것처럼 훔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내 것으로 소화해서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 소설과 관련한 모든 영상을 찾아봤다. 책날개에 달린 작가의 생애부터 작품 해설, 표지에 있는 글자 하나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꼼꼼히 읽었다. 그리고 혹시 작가가 말하는 '키치'란 이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유레카! 를 외치며 책을 덮었다. 나는 여전히 밀란 쿤데라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 책을 썼는지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으나 적어도 나만의 방식으로 이 책을 이해하는 데는 성공했다 자부할 수 있었다. 그날 독서모임에서 나는 자신감에 넘쳐 날아다녔고 다시 고전 읽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쉬운 고전부터 시작했다. 분량이 짧은 고전, 내용이 너무 어렵지 않은 고전, 내가 관심 있는 내용. 그렇게 한 권, 한 권 고전목록을 채워갔다.
헤르만헤세는 <데미안>부터 읽을 것이 아니라 <수레바퀴 아래서>부터 읽고, 조지오웰은 <동물농장>부터 읽으면 훨씬 접근이 쉽다. 로맨스를 좋아한다면 서사가 복잡한 <오만과 편견> 대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부터 시작해 보면 좋겠다. 성장소설을 좋아한다면 이디스 워튼의 <여름>, 고자극의 막장 드라마를 원하면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는 어떨까.
나는 누군가가 나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고 고전에 대한 편견을 깨고 입문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주고 싶다. 그래서 1권, 2권 채워나가다 어느 날 <죄와 벌>도 도전해 볼까? <안나 카레니나>는 어떨까?라는 생각을 갖고 책을 펼친다면 그럴로 행복할 것 같다. 완독 하지 못하더라도. 그리고 나 역시 지금의 목표는 그렇다. 언젠가 <카르마조프 가의 형제들>이나 <모비딕> 같은 책을 시도해 볼 수 있기를 바라며 당장 오늘은 이디스 워튼의 <여름>을 편다. 포기하지 않고 끈만 잡고 있다면 언젠가 어려운 고전도 시도해 볼 수 있을 거라 믿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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