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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Aug 02. 2022

엄마 없는 집은 불안해

 아침부터 미역국 한 솥 끓여놓고 라면, 냉동식품, 밑반찬으로 냉장고도 가득 채워놓고 욕실에 수건이 떨어질까 세탁해서 잘 말려 접어 넣어놓고 당분간 청소도 안 할 테니 구석구석 물걸레 청소까지 싹 해두고 내친김에 화장실 청소까지. 아침부터 야단법석 요란을 떠는 이유는 엄마가 집을 비우기 때문이다. 그냥 홀연히 몸만 떠나고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는데 외박을 하는 주부는 괜히 혼자 걱정이다. 아침에도 꼭 밥만 먹는 남편이 나 없다고 굶고 다닐까 걱정. 샤워하고 나와 수건이 없어서 곤란할까 걱정. 집안 꼴이 엉망진창 먼지투성이 될까 걱정. 한 달쯤 비우는 것도 아니고 고작 2박 3일 비우는 건데도 왜 내가 없는 이 집은 안심이 되지 않는 건지.  


 어릴 때 엄마는 하루만 집을 비워도 요란을 떨며 부산스럽게 움직이셨다. 아침에 먹을 국을 끓여놓고 저녁에 볶아 먹을 고기를 양념해두고 전날 밤 신신당부의 편지까지 남기고서야 잠이 드셨다. 그러고도 뭐가 그렇게 안심이 안되셨는지 수시로 전화해서 먹다 남은 국은 냉장고에 넣었는지 고기는 제때 구워 먹었는지 확인하곤 하셨다. 그럼 나는 엄마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엄마!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자꾸 전화하지 마!”하고는 끊어버렸다. 엄마의 신신당부에도 불구하고 알아서 하겠다는 반항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먹다 남은 국은 냉장고에 넣지 않아 쉬어 버렸고 구우라는 고기 대신 라면을 끓여 먹어 엄마 속을 뒤집어 놓곤 했었다.     


 잔소리가 듣기 싫다던 그 딸이 한 집안의 살림을 도맡은 후부터는 엄마의 잔소리 그대로 살고 있다. 국을 끓여놓고, 비상식량을 잔뜩 사다 놓으며 남편에게 신신당부를 하고 집을 비운다. 그럼 그 시절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남편은 청개구리처럼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먹다 만 음식을 냉장고에 넣지 않아 상하게 만든다.   

   

 그나마 남편 혼자 있을 때는 상황이 나은 편이다. 아이와 남편만 두고 외출을 하는 날이면 짧은 시간이더라도 불안함은 더 크다. 아이가 다섯 살 때,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하러 잠시 외출한 적이 있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8시를 조금 넘기자 남편에게서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언제 올 거냐는 전화다. 수화기 너머로 소리를 듣고 있자니 내가 집을 나설 때부터 켜 둔 만화영화를 아직도 아이에게 보여주고 있다. 하루쯤은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마음을 내려놓는다. 부글부글 끓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저녁은 먹었어?”라고 묻자 역시나 아이는 짜파게티, 본인은 라면을 먹었다고 한다. “엄마 빨리 와”아이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엄마 마음은 바빠진다. 서둘러 만남을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아이가 엄마의 목덜미를 꼭 껴안고 놓지 않는다.      

 “무슨 일 있었어?”

 “그게... 집에 라면이 없더라고. 잠깐 나갔다 온 사이에 텔레비전이 꺼졌나 봐. 애가 놀랐는지 좀 울었어.”

 “뭐라고? 비도 오고 밖이 이렇게 깜깜한데 아이를 혼자 두고 슈퍼에 다녀왔다고?”   

  

 놀랄 노자다. 나였다면 라면 하나 안 먹고 말지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가 쏟아지는 한밤중에 아이만 두고 나갔을 리 없다. 남편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놀랐을 아이를 꼭 안아주고 재우고 나니 뒤늦게 이런 생각이 든다.      

 ‘다섯 살이면 잠깐은 혼자 있을 수도 있지 뭐. 나라면 걱정돼서 아예 시도조차 못해 봤을 텐데 남편이니까 할 수 있는 일이야. 다음에는 나도 쓰레기 버리러 다녀올 동안 아이 혼자 두고 나가봐야겠다. 어쩌면 다섯 살이 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르잖아.’     


 엄마 없는 집에서는 언제가 크고 작은 소동이 일어난다. 평소에는 금지되는 라면이나 배달음식이 들락날락거리고, 기껏 해 놓은 음식은 상하고, 엄마라면 상상도 못 할 일들이 아이와 남편에게는 자연스럽게 벌어진다. 그 소동이 엄마 입장에서는 반가울 리 없다. 내가 없는 집이 불안한 엄마는 점점 집순이가 되어 간다. 집순이가 되어 갈수록 내 살림, 내 집은 더 소중해진다.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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