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이 Aug 12. 2022

넘어져도 괜찮아

 걸음마를 떼던 아이 모습. 넘어질 듯 위태위태하게 한 발을 디뎌 첫걸음을 딛던 때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6년 만에 그때 그 감정을 다시 느꼈다. 아이는 다시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했다. 인라인스케이트. 바퀴 위에 서서 넘어질세라 온몸에 힘을 주고 조심스럽게 한 발을 딛고 있다. 

      

 엄마는 늘 아들의 체력이 걱정이다. 밖에서 뛰어놀기보다는 집에서 사부작거리며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들 때문이다. 태권도나 축구, 줄넘기를 배워보면 어떻겠냐는 말에 요지부동이던 아들이 뜬금없이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싶단다.     


“갑자기 왜 인라인이야?”

“........”     


 아이는 대답이 없다. 원래도 미주알 고주알 말하는 성격이 아니다. 뭐가 중요하겠는가. 운동을 하고 싶다는 아이를 말릴 이유가 없다. 그런데 한가지 걱정이 된다. 엄마 기준에서 인라인스케이트는 꽤 위험한 운동이기 때문이다. 엄마 스스로도 겁이 많아서 스케이트를 못 탈 뿐 아니라 운동신경도 좋지 않아 생활스포츠와는 거리가 멀다. 바퀴 위에 몸을 맡기고 서 있는 것도 무서운데 바퀴를 굴려 앞으로 나가야한다고 생각하니 상상만으로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그런데 갑자기 아들이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싶다고 하니 내심 ‘위험할텐데’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때문에 아들에게 몇 번이나 되물었지만 아이는 단호했다. 꼭 타보고 싶다고 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별 다르게 반대할 명분을 찾지 못해 인라인 학원을 찾아갔다.      


 처음 스케이트를 탄 아이는 엄마 예상대로 무척 당황했다. 무턱대고 덤벼보는 아이가 아니다 보니 자기 의지대로 서 있기도 힘든 이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겁 없는 아이들이 넘어지든지 말든지 일단 발을 떼서 움직이는데도 아이는 제자리에 주저앉아 멍하니 친구들만 바라보고 있다. 그런 아이를 보며 속이 타는 건 엄마 몫이다. 속상한 마음에 괜히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거봐. 인라인스케이트는 너랑 안 어울릴 것 같다고 했잖아.’     

 

 하지만 속상한 마음은 내 것일 뿐 아이의 감정이 아니다. 그러니 내 감정은 스스로 처리하기로 하고 아이에게 잔소리를 보태지 않기로 한다. 아이도 속상할테니까. 대신 속에서는 천불이 나도 겉으로는 웃으며 아이를 믿고 응원하기로 했다. 잠시 후 선생님의 지도와 함께 드디어 아이가 한 발을 떼고 제자리에 서기를 시도한다. 두 다리가 흔들리고 엉덩이가 뒤로 쑥 빠진 채 위태위태하게 섰다. 서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한발을 더 가려다 아내 넘어진다. 쾅! 보호대를 차고 있다지만 소리가 꽤 큰 것으로 봐서는 많이 아팠을거다. 잠시 물을 마시러 나온 아이의 눈가가 촉촉하다.    

  

“다리가 부러질 것 같아. 못 하겠어. 집에 가고 싶어.”     


아이는 당장이라도 흐를 듯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마음이 흔들린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그냥 집에 갈까 망설이다가 쉽게 포기하는 것이 버릇이 될까 조심스럽게 입을 뗀다.      


“일단 수업 끝날 때까지는 들어가 앉아있어. 인라인은 타지 않아도 좋아. 앉아서 구경만이라도 해. 수업시간은 선생님과의 약속이야. 마음대로 그만둘 수 없어.”     


 다행히 우리를 지켜보던 선생님이 앉아있기만이라도 하라며 아이를 다독여 들어갔다. 아이는 의자에 앉아 선생님과 친구들을 지켜본다. 솔직히 머릿속에서는 본전 생각이 난다. 일일체험비에 스케이트 대여비까지 5만원이 들었다. 그 돈이면 오늘 저녁 족발을 시켜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돈인데. 엄마 속을 알 리 없는 아이는 엉덩이가 무겁다.      


 잠시 후 선생님 주도하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게임이 시작됐다. 선생님의 공을 뺏어 골대에 넣어야 한다.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아이의 표정이 말하고 있다. 하고 싶다고. 하지만 스케이트를 신은 채로는 걷기는커녕 일어날 수도 없다. 한참 망설이던 아이는 일순간 다짐이라도 한 듯 손을 땅에 짚고 기기 시작한다. 기어서라도 공을 잡고야 말겠다는 듯 이를 악물고 네 발로 있는 힘껏 기어간다. 돌쟁이 시절, 쉼 없이 온 집안을 기어서 헤집고 다니던 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기어가는 아이 뒷모습이 이렇게 감동적일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그 날 사자처럼 기어가 끝내 선생님의 공을 뺏은 아이는 게임에서 승리했다. 우승 기념 스티커도 받았다. 눈물을 닦던 아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웃음을 띄우며 말한다. 


“엄마 나 봤지? 나 스케이트 계속 탈 거야. 잘할 때까지 타고 싶어.”     


 엄마는 속으로 기쁨의 환호성을 지른다. 두 말할 것도 없이 당장 인라인스케이트를 주문하고 학원비를 결제했다.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시작을 함께 했다.    

 

 아들아, 넘어져도 괜찮아. 처음은 원래 다 그래. 잠시 추스르고 일어나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면 된단다. 엄마는 언제나 한걸음 뒤 같은 자리에서 변함없이 너를 응원하고 있을거야. 네가 첫 걸음마를 배울 때 언제든 달려가 안아줄 수 있는 곳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었듯이 그렇게. 언제까지나. 



*사진출처 :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 없는 집은 불안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