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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Sep 16. 2022

주말부부 8년의 종지부

결혼 8년 차, 독립 6개월 차. 

 서로 떨어져 살기를 8년. 신혼여행을 다녀온 직후부터 갓난아이를 7살 어린이로 키울 때까지 우리는 함께 살지 않았다. 3대가 덕을 쌓아야 할 수 있다는 주말부부로 무려 8년을 살았다. 그랬던 우리가 함께 살게 된 이유는 첫째, 아이의 초등 입학을 염두에 두고 이제는 정착할 곳을 정해야 한다는 이유. 둘째, 7살이 된 아들에게는 아빠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이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치솟은 수도권 집값을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결혼 10주년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함께 산건 이제 막 6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말하자면 나는 결혼 8년 차 그러나 진정한 살림 독립은 6개월 차의 새댁이다. 주말부부로 지낸 지난 8년 동안 친정엄마는 농담처럼 말씀하셨다. 

     

“야! 내가 지금 너를 시집을 보낸 건지, 그냥 같이 사는 건지 모르겠다.”     


 그만큼 나는 친정 집의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온종일 아이를 혼자 돌보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아이 핑계를 대고 친정 집에 슬쩍 가 있으면 빨래도 식사도 육아도 엄마가 함께 도와주셨다. 그러다 은근슬쩍 하룻밤, 이틀 밤 지내다 보면 주말이었다. 인정많은 엄마가 빈 손으로 나를 보낼리 없다. 양손 한가득 반찬을 싸주셨다. 그럼 슬그머니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면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엄마~ 뭐해?" 


 내가 생각해도 참 얄미운 딸내미였다. 변명을 하자면 그때의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해를 바라지는 않는다. 내 자신 스스로도 부끄럽지만 달리 다른 방법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이 이야기를 풀자면 끝도 없으니 여기서는 이렇게 정리하기로 하자.) 아이가 기관에 간 이후, 수시로 친정을 드나들 수는 없었지만 집안일이 딱히 힘들 건 없었다. 둘만 사는 집에 빨랫감은 많지 않았고, 식사도 아이와 둘이 먹다 보면 대충 먹을 때가 많았으니까. 그러다 이도 저도 다 하기 싫어지면 친정에 가서 저녁을 얻어먹곤 했다. 집안일 부담이 적었던 만큼 육아에만 집중할 수 있었기에 아이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반대로 지금은 전처럼 육아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확 줄었다. 집안일이 늘었기 때문이다. 하루만 빨래를 안 해도 바구니가 한가득이고, 6인용 식기세척기를 가득 채워 넣고도 따로 손 설거지를 해야 하고, 이틀이 멀다 하고 장을 봐도 늘 먹을 것이 부족하다. 아침, 저녁으로 밥솥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만큼 내 일도 늘었다. 다행히 남편은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아들과 떨어져 지낸 지난 시간 동안 잘해주지 못한 것을 채워주려는 마음 때문인지 더 열심히다. 매일 저녁 목욕을 시켜준다거나 퇴근 후 잠시 놀아주는 것만으로도 큰 짐을 덜었다. 


 집안일의 부담이 늘어난 만큼 육아의 부담은 줄었으니 논리적으로는 도찐개찐인 건데 내 몸은 좀 다르게 반응하고 있다. 함께 산 이후로 편두통이 심해졌다. 횟수가 잦아지고, 강도도 세졌다. 그 이유를 단순히 나이나 체력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어딘가 마음에 걸린다. 뚜렷한 원인이 없을 때 만병의 근원은 딱 하나. 그래 맞다. 스트레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며 가족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라 여기고 사는 지금의 내 삶이 나를 흔들고 있다. 이렇게만 살 수는 없다고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반기를 들고 있어 난 것이 틀림없다. 매일 뭘 해 먹어야 할지가 지상 최대의 과제가 되어버린 내 삶이 나를 지치게 하고 있다. (김치만 있어도 밥을 잘 먹는다던 결혼 전 남편의 말은 다 거짓이었다.) 깨끗이 비어있는 날이 별로 없는 개수대, 한겨울 출퇴근 길에도 땀을 흘리는 남편 덕에 하루에도 두세 번씩 돌아가는 세탁기, 건조대에 널린 수건이 다 마르기도 전에 지금 막 빨래가 끝난 수건들이 줄지어 나오는 상황, 머리카락과의 전쟁 대신 냄새와의 전쟁이 되어버린 화장실 청소. 이 모든 것들이 나를 조금씩 서서히 지치게 하고 있다.


 모든 문제 해결의 시작은 인정이다. 나는 인정한다. 결혼 8년 차 아줌마라지만 따지고 보면 진짜 독립을 시작한 건 6개월 차에 접어든 새댁이다. 살림이 너무 싫고, 귀찮고, 미룰 수 있다면 최대한 미루고 싶지만 또 나의 책임을 외면한 채로는 살 수 없는 책임감 강한 사람이다. 그리고 지금 나, 전업주부의 책임은 한 가정의 살림이 유지될 수 있도록 돌봐야 하는 것이 맞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살림이 귀찮은 전업주부의 본격 살림 에세이. 나를 괴롭고 힘들게 하는 살림의 본질과 나만의 생각, 그리고 하기 싫음에도 불구하고 해야만 하는 일을 해내기 위해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하는 모든 것을 적어볼 생각이다.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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