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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Aug 17. 2022

완벽주의 함정에서 해방되고 싶다.

최선을 다 한다는 게 뭘까. 밤을 새우고 내 몸이 부서져라 무리하면 최선을 다 했다는 느낌이 들까. 그럼 그 결과는 내 마음에 들까. 완벽주의자에게 최선이란 왜 언제나 변명처럼 느껴지는 걸까. 


작성하기로 한 원고를 다 썼다. 제출을 못하고 있다. 몇 날 며칠은 어디를 어떻게 손대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이게 최선인지 아닌지 자기 검열에 빠져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오래전 드라마 <시크릿가든>에서 현빈이 유행어처럼 날리던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이 말을 나에게 계속 되묻고 있는 거다. 


또 다른 완벽주의자 친구에게 이야기하니 자기에게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내려놓는다는 걸 의미한다고 했다. 


내려놓는다. 

내려놓는다. 


맞다. 이럴 때는 그냥 던져야 된다. 상대에게 패를 넘기고 나는 최선을 다했으니 그다음부터는 당신 몫이라고 어떤 충고나 조언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안된다. 차라리 촉박한 마감시간이 있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열심히는 했는데 마감에 맞추느라 이러면서 변명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 아니 최소한 마감기한은 맞췄다는 한 가지 완벽한 요소가 있으니까. 완성도 높은 원고가 중요하니 시간을 충분히 주겠다는 그 말이 더 부담스럽다. 


나는 왜 완벽주의 함정에 빠졌을까. 


추측해보건대 타인의 평가에 민감해서다. 나를 보고 짓는 실망스러운 표정, 곤란하다는 말투를 보고 있는 것이 너무 힘들다. 최대한 정중하고 젠틀하게 거절하고 충고를 한다 해도 그 사람의 비언어적 표현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잠들려다가도 떠오르고 밥을 먹다가도 생각나고. 그러니 애초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그러려면 완벽해야 한다. 누가 보아도 흠잡을 곳 없이. 


이런 마음으로 무엇을 시작할 수 있겠나. 아무 일에도 도전할 수가 없지. 완벽은 애사당초 불가능해. 내려놓자 내려놓자 쿨하게 받아들이자. 처음부터 잘하는 게 어디 있겠냐 다 그러면서 배우는 거지. 아무리 마음속으로 다짐해도 결국 또 도로아미타불. 


실패 경험이 부족해서 회복탄력성이 떨어지는 건가. 

자존감이 낮아서 그런가. 

아니면 쓸데없이 기억력이 좋아서인가. 


다 모르겠고 그냥 내려놓고 싶다. 이제 그만 내려놓고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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