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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Aug 24. 2022

엄마는 어디에 묻히고 싶어?

그날은 엄마의 생일이었던가, 명절이었던가 아무튼 기분 좋은 날이었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고, 담소를 나누는 그런 날. 쌓인 설거지를 끝낸 뒤, 차를 가운데 두고 오랜만에 엄마와 단둘이 마주 앉았다. 따뜻한 차를 한모금 삼키려는데 엄마는 갑자기 엉뚱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오셨다는 이야기였다. 차를 삼키지 못하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어디 아파?”

 “아니, 아프긴 어디가 아파. 멀쩡해.”

 “아프지도 않은 사람이 뜬금없이 그런 건 왜 쓰고 온 거야? 당장 죽을 사람처럼.”     

  

 당황한 나는 엄마에게 따져 물었고 이어지는 엄마의 말에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딸아, 엄마가 겪어보니까 이런 이야기일수록 건강할 때 미리 해야 해. 아픈 후에 이야기하면 늦어. 남은 가족들이 너무 힘들거든. 그러니까 미리 말해 두는 거야. 꼭 내 뜻대로 해줘. 연명치료는 거부할 거고 장기는 모두 기증할 거야. 명심해.”     


 재수 없게 왜 그런 이야기를 꺼내느냐며 화를 낼 수도 있고, 듣기 싫다고 외면할 수도 있었지만, 엄마의 사연을 알고 있는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친정엄마는 막내딸이었지만 어려서부터 유독 죽음을 자주 접했다. 외할머니는 엄마가 아주 어렸을 때 떠나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했고, 외할아버지는 중학교 때 오랜 병을 앓다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몇 해 지나지 않아 막내 오빠와 큰오빠까지 모두 차례로 앞서 보냈다. 그렇게 가장 가까운 직계가족을 넷이나 먼저 떠나보냈다. 늘 남겨진 가족의 입장이었던 거다. 그런 엄마가 환갑을 넘긴 해에 자발적으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서명하고, 장기기증을 신청하고, 장례 방식을 미리 정해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본인이 감당하기 힘들었던 그 일들을 내 자식이 겪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러셨겠지. 한마디로 엄마가 사전연명치료의향서에 서명하는 일은 자식에 대한 배려였다. 자식의 슬픔이 너무 크지 않길 바라며 후회가 남지 않길 바라며 본인이 미리 결정할 수 있는 일들을 최대한 결정해 놓고 떠나시겠다는 거다. 남겨진 가족들 특히 자식들에게 어떤 부담이나 책임도 주고 싶지 않다는 배려.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엄마에게 고마웠다.     

 여느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부모님이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시거나 뜻을 직접 물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를 상상해보면 어떤 결정을 내린다고 해도 자식으로서는 두고두고 후회가 남을 것 같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내친김에 그동안 드라마를 보다 궁금했던 다른 이야기도 꺼내 보았다.     


 “엄마, 화장하면 인공관절이 타지 않고 남는가 봐. 그걸 유족들에게 가져갈지 현장에서 처리할지를 묻는다는데 엄마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이생에서 쓰고 남은 건 이생에 두고 가야지. 그냥 버려.”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냉장고에 만들어 둔 반찬이 남아있어. 난 그건 끝까지 못 먹을 것 같아. 냉동실에 얼려두고 평생 보고만 있고 싶어.”

 “미련하게 왜 그런 짓을 해. 맛있게 먹어야 내가 행복할 거야. 그러니까 맛있을 때 얼른 다 먹어.”     

 사람이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은 당연한 진리다. 단 한 사람도 예외가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탄생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이야기하지만, 죽음에 대해서는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외면해도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직접 마주하고 이야기하는 편이 건강한 방법이다. 자식 뜻이 그렇다해도 부모님 쪽에서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면 자식이 먼저 입을 떼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듣는 부모님 입장에서는 서운하실테니까. 그런 면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서명하고 온 일은 자연스럽게 엄마의 마지막 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물꼬를 터주었다. 그 후 우리는 장례는 어떻게 치르길 바라는지, 유골은 어떻게 처리해주길 원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누게 되었고 엄마의 뜻을 알고 나니 슬픔이 밀려오는 대신 묘한 안정감이 느껴졌다. 


 나도 내 자식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미리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정사진을 찍어두면 장수한다는 이야기처럼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두면 무병장수한다는 소문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인생의 마지막에 대해 사전에 가족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상의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유족들이 어떤 식으로든 후회가 남을 선택에 부담을 줄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일은 내 삶의 마지막을 결정할 수 있는 나의 고유한 권리이자 유족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사진출처 : pixabay


*위 글은 2022년 연명의료결정제도 체험수기 공모전에 출품작으로 우수상을 수상하였으며 재단측과 상의를 통해 개인 SNS에 올려도 좋다는 동의를 얻어 업로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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