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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Nov 21. 2022

내 자신이 초라해질 때, 나는 글을 쓴다.


나 자신이 초라하고 볼품없게 느껴질 때가 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타인과의 비교에서 시작되는 일이 대부분이다.


스스로를 초라하다고 느끼면 느낄수록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완벽해 보인다.


남편은 자상하고,

아내는 예쁘고,

아이는 똑똑하고,

차는 근사하다.


그들의 속내까지 알 수는 없지만 외적으로 보이는 모습은 확실히 나보다 나아 보인다. 그럴수록 스스로는 더욱더 작아진다. 그럴 때, 불편하고 우울한 감정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쇼핑이다.


자상한 남편을 연출하기 위해 무리하게 가족여행을 잡고, 아가씨처럼 예쁜 엄마를 따라 옷을 사고, 머리를 새로 하고, 똑똑한 아이를 따라 학원에 보내고. 돈으로 해결하면 당장은 기분이 좀 나아진다. 울리지 않던 휴대폰에서 쇼핑몰에서 보낸 알람이 수시로 울리고, 구매해주셔서 감사하다며 고객님이라고 나를 높여줄 때면 잠시 우쭐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카드 명세서가 돌아올 때쯤에는 오히려 더 깊은 우울감에 빠진다.


어제는 마음껏 돈을 쓰고 싶은 날이었다. 이웃으로 이사 온 남편 지인과 인사를 나누는 자리였다. 남편의 동료가 다정하게 아이와 놀아주는 모습을 보고, 집에서 핸드폰만 만지고 있던 남편이 생각나 화가 났다. 일을 하는 동료 아내의 세련된 모습에 내 옷차림이 초라해 보이고, 얼굴도 푸석해 짜증이 났다. 나는 그들의 자세한 내막도 모른 채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나 자신을 비교하며 한없이 나와 죄 없는 남편을 깎아내렸다. 집으로 돌아와 달그락달그락 요란하게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애꿎은 도마에 화를 풀었다. 기껏 차린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 수저만 든 채 생각에 빠졌다. 냉랭한 분위기를 느낀 남편이 왜 그러냐고 물었지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휴대폰을 열고 당장 세련된 옷을 사고, 미용실을 예약하고, 단란한 가정을 연출하기 위해 가족여행을 예약하고 싶었지만 다시 후회로 돌아올 것을 알기에 돈을 쓰는 대신 글을 쓰기로 했다.


저녁식사를 마친 식탁을 행주로 훔치고, 조용히 펜과 종이를 들고 지금의 마음을 메모로 남겼다. 그리고는 책을 꺼내 거실 구석 흔들의자로 갔다. 한 장 한 장 읽다 보니 어느 순간 책이 나에게 위로를 건넸다.


요즘도 가끔 우울한 날이면 뭐라도 사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일상은 굴욕적이지만 쇼핑의 세계에서는 소비자로서 배려와 존중을 넘치게 받을 수 있으니까. 그럴 때는 그저 그 상태임을 알아차리기만 해도 도움이 된다. 카드를 꺼내기 전에 먼저 나를 다독여주는 것이다. '너 요즘 많이 힘들구나' 하고.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 정문정 작가


마음이 시끄러울 때, 자존감이 무너질 때 물건을 사는 대신 책을 읽고 하소연하듯, 상담을 받듯 글을 쓰기 참 잘했다. 겉모습은 그대로일지라도 마음 깊숙한 곳이 채워진다. 생각이 달라지고, 태도가 바뀐다. 게다가 글을 읽고, 쓰는 일은 돈이 들지 않으니 금상첨화다.


돈을 쓰지 않고도 어제의 우울한 기분을 가뿐하게 물리쳤다. 그리고 오늘의 나는 어제 남겨둔 메모를 보며 책에서 읽은 구절을 참고하며 한 편의 글을 완성한다. 멋있다. 나란 사람. 잠시 스스로에게 취해본다.


지금 힘든 사람,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작게 느껴지는 사람,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진 사람이라면 지갑을 여는 대신 책을 열고 노트를 열면 좋겠다. 그 안에 더 진실한 게다가 공짜인 위로가 있다.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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