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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Nov 07. 2022

전업주부 엄마의 점심식사

 엄마에게 아침식사는 책임감이다. 하루를 시작하는 가족을 위해 책임감으로 차린다. 이불속 따뜻함을 좀 더 느끼고 싶은 마음을 뒤로하고, 몸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등교하는 아이를 위한 사랑이자 엄마의 책임이다. 설령 전날 먹다 남은 국으로 대충 데워먹는다 해도, 냉동실에 거 막 꺼낸 레토르트 식품이라 해도 그것은 일터로 학교로 가는 가족을 위해 에너지를 한껏 채워주겠다는 마음을 담아 준비한다.   


 엄마에게 저녁식사는 죄책감이다. 온 가족이 함께 모여 먹는 소중한 한 끼인 만큼 정성을 다해 준비하고 싶다. 하지만 매번 뜻대로 맛있게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마음만큼 만족스럽지 못한 저녁식사도 자주 있다. 어쩌다 온 가족이 마음에 쏙 드는 음식을 준비해 맛있게 식사를 먹어치운 날에도 엄마에게 저녁식사는 죄책감이다. 이렇게 다 먹어 치운 거 다 살로 가겠지라는 생각이 든다. 이래저래 엄마에게 저녁식사는 죄책감이다. 


 점심식사는 어떨까. 일터에 나간 아빠에게 점심시간은 휴식일 거다. 오전 일과를 마치고 잠시 쉬어가는 꿀맛 같은 시간. 동료들과 상사 험담을 안주삼아 식사를 마치고 커피도 한잔 하겠지. 날씨가 좋은 날에는 회사 근처를 산책하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낼지도 모르겠다. 아이에게는 어떨까. 오전 내내 책상에 앉아 있기 좀이 쑤셨던 아이. 점심시간은 밥을 먹는 시간 이상의 의미다. 숟가락을 내려놓기 무섭게 어떤 아이들은 운동장으로 뛰어나가고 다른 아이들은 교실 책상에 도란도란 모여 앉아 사교의 장이 펼쳐지겠지. 이래저래 오후의 따뜻한 햇살만큼이나 한가로운 시간이다.  


 그렇다면 전업주부 엄마에게 점심식사는 어떤 의미일까. 그건 외로움 혹은 허기짐이다. 오전 내내 정신없이 움직이며 집안일을 대충 정리해놓고, 커피 한잔 마시며 한숨 돌리다 보면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부지런히 아침 운동을 다녀온 날도 뒤돌아서면 점심이다. 남편은 동료들과 아이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점심을 먹겠지만 엄마의 상황은 좀 다르다. 엄마에게 점심을 함께 먹을 친구는 있는 날 보다 없는 날이 더 많다. 가볍게 커피를 마실 사람은 있어도 밥은 같이 먹는 사람은 좀처럼 찾기 어렵다. 오며 가며 인사를 나누고 가벼운 안부를 물으며 지내는 동네 사람들과 커피에 빵은 먹어도 뜨끈한 탕을 놓고 마주 앉기는 좀 어색하다. "커피 한잔 해요."는 쉬운데 "밥 한번 먹어요"는 왠지 어렵다. 그래서 엄마는 많은 날을 혼자 앉아 점심 밥상과 마주한다. 그런 이유로 엄마의 점심식사는 어쩌다 보니 그냥 지나가거나 대충 때우는 식으로 끝나는 날이 더 많다. 




 하지만 엄마라면 주부라면 하루 중 가장 공들여 먹는 식사가 점심이면 좋겠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으로 있는 힘껏 실력을 발휘해서 차려먹었으면 좋겠다. 직접 만들기가 어렵다면 배달이나 포장도 좋다. 어차피 혼자 먹는 거라 가족이 다 같이 외식했을 때 보다 비용도 훨씬 적게 든다. 설령 전 날 남은 반찬으로 대충 때우거나 라면을 끓여먹는 날이라도 제대로 된 접시에 예쁘게 덜어 먹으면 좋겠다. 먹다 남은 반찬도 집에서 제일 예쁜 찬기에 단정하게 담고, 라면을 끓이더라도 파 송송, 계란 탁 깨어 넣었으면 한다. 가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나를 위해서 무언가를 차리고,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니까. 점심식사에 진심이면 좋겠다. 


 20년도 더 지난 옛날 일본 드라마 <런치의 여왕>. 드라마에서는 점심식사에 목숨을 거는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카페에서 서빙 일을 하는 주인공은 진상 손님에게 한바탕 욕을 먹고, 점장에게 2차로 훈계를 들을 참이다. 그때 점심시간을 알리는 경쾌한 알람이 울린다. 그녀는 자신을 꾸짖으려는 점장에게 당당히 말한다. 


 "점심시간이니까 잔소리는 밥 먹고 와서 마저 들을게요. 별 다르게 좋은 일도 없는데 점심 식사만은 꼭 맛있는 걸 먹고 싶거든요!"  


 특별한 하루를 만들자고 매일 파티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나를 위한 소비라며 밥먹듯이 쇼핑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매일 찾아오는 점심시간, 그 시간을 나를 위한 시간으로 바꾸면 어떨까. 대충 때워야 하는 귀찮은 일이 아니라 나를 아끼고 위하는 시간으로 바꿔본다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정성스레 만들고, 먹고 싶었던 비싼 음식도 가족 몰래 먹어보고, 남은 반찬이라도 가장 좋아하는 반찬 그릇에 가지런히 담아 한 상 차려 먹고. 그렇게 점심식사에 진심이면 좋겠다.  


 누구도 나를 귀하게 여겨주지 않는다고 시무룩해지지 말고, 아무도 나를 챙기지 않는다고 서운해하지도 말고, 그렇게 내가 나를 아끼고 챙겨보자. 오늘은 스스로에게 근사한 점심식사를 대접하는 하루가 되기를. 내일도 모레도 늘 그런 하루하루를 보내며 나를 사랑해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지난 한 주 내가 차리고 내가 먹은 점심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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