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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rywriter Case샘 Aug 13. 2022

실로암공원묘원
아브락사스의 정원이 있다면 여기?

삶과 죽음, 피어남과 스러짐이 역설적으로 교차하는 장소


실로암공원묘원으로 내비게이션 목적지를 설정한다.

조부님의 제삿날이 가까워졌다. 아버지를 모시고 조부모님께서 영면하고 계신 실로암공원묘원에 다녀왔다. 


지나간 한때, 3개의 별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것을 바라보며 시공간을 함께 공유했다. 하지만 가장 먼저 하늘 위로 떠오른 별은 순리대로 가장 먼저 손 닿을 수 없는 저 너머에 내려앉았고, 남은 2개의 별만이 고요한 하늘 위를 천천히 유영한다.


그러나 이 질서는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별이 내려앉은 빈자리는 새로운 어린 별로 채워진다. 그것이 순리다. 3개의 별들은 다시 짧은 순간,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다 새롭게 그 질서를 재편성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려 노력해 보지만, 오늘만큼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꽤 많이 보고 싶은 날이다.






차창 너머로 실로암공원묘원이 보인다. 부산 지하철 4호선 고촌역이 실로암공원묘원 바로 앞을 지나간다. 하지만 꽤 높은 고바위길을 꽤 길게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자차로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방문 전 구입한 국화

아버지께서는 시간이 지나면 지저분해지는 조화보다 생화를 구입하고 싶다고 하셨다. 실로암공원묘원 근처에 생화를 판매하는 농원들이 길가를 채우고 있었다. 조그마하지만 생기가 감도는 국화 화분 2개를 구입했다.





실로암공원묘원도착

실로암공원묘원의 화장실에 잠시 들렀다. 아버지께서는 구입한 국화가 조금이라도 더 길게 생을 유지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화분에 물을 좀 더 뿌려주셨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화장실 방문 본연의 업무를 수행했다. 마치 내려놓음과 채워 넣음의 교차점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굉장한 고바위길이다.


급경사 지역입니다.
기어를 1단으로 경하세요!

라는 메시지에 심장이 뛰었다. 경고판이 경고한 대로 굉장히 가파른 경사로에다가 길마저 매우 좁다. 마주 오는 차라도 온다면 꽤 식은땀이 날 것만 같다. 실없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굳이 여기에는 담을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실로암공원묘원
경사로 오르실 때
초보 운전자는
주의하시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도착했다.
괴이한 생각같았지만, 경치가 참 좋았다.


꽤 오래전 아버지께서 가져다 놓으신 2개의 국화 화분 중 하나는 여전히 그 생을 유지하고 있었다. 굉장히 척박한 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는 이전의 국화에게서 경이로움을 느끼며, 새로 준비한 국화 화분을 그 옆에 내려뒀다.



미리 뿌려놓은 물 덕분인지 더 생기롭게 보인다.




미리 준비한 돗자리를 펴고 

두 번의 절과 반절. 오랜만에 찾은 조부모님께 인사를 드렸다. 늦은 방문 속 조금의 죄송함을 담아. 기억에 아스라이 남아있는 그 미소로 나를 반겨주시는 듯한 조부모님과 잠시 대화를 나눴다.


아이고~ 
우리 손주 오랜만에 왔네~?

사는 건 좀 어떻고? 
힘든 건 없고?

이 질문에는 속으로만 답했다.



채 무르익지도 않은 생명력 넘치는 도토리 

짧지만 무거운 인사를 나누고, 다시 차로 돌아가는 길, 아버지께서 도토리 하나를 내 손에 쥐어주셨다. 내가 아는 짙은 갈색이 아닌 초록색의 도토리. 채 무르익지 않은 도토리. 자체 생명력이 물씬 느껴지는 도토리.


문득 주변을 둘러봤다. 이곳은 생명이 영면에 드는 곳. 어린 시절 꽤나 지겹도록 들었던 괴담의 소재지 중 하나인 공동묘지다.(물론 여기는 공원묘원이지만)


눈으로 보기에도 수를 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인간의 생명이 영면에 든 곳이지만, 그와 별개로 도토리나무, 이름 모를 나무, 잔디, 잡초, 꽃들이 자라나고 피어나는 모습이 이제서야 눈에 들어왔다. 


귀 기울여보니 작은 새들의 청아한 울음소리와 먹이를 찾는 힘찬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묘지는 생명이 단지 스러지는 곳이라 무의식적으로 여겼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곳을 터전 삼아 많은 생명들이 저마다의 생명력을 뽐내고 있었다.


생과 사, 태어남과 죽음, 피어남과 스러짐. 전혀 접합될 수 없을 것 같은 개념들이 조화롭게 구성된 한 바구니에 담긴 역설 같은 장소.


삶과 죽음은 
크고 넓은 강을 건너는 것만큼
멀리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한 바구니에 함께 담겨있을 만큼
가까울 수도 있는 것이다.


소설 데미안 속 싱클레어에게 보내는 데미안의 편지 에 등장한 양극의 신 아브락사스( Abraxas)가 가꾸는 정원이 있다면 이 곳 같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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