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햇살> 2024년 6월호 #우리북동네잘있니
몇 해 전,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재밌게 봤다. 서울에 사는 재벌 상속녀가 패러글라이딩을 하다 돌풍에 휩싸여 북한에 불시착하고, 어쩌다 그곳에 살던 특급 장교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드라마를 통해 서로 다른 문화 속에 살고 있는 청춘남녀의 풋풋한 모습을 보는 게 좋았지만, 사실은 내가 알지 못했던 북한의 모습을 보는 게 더 좋았다. 그곳에도 나와 같은 사람이 있고, 삶이 있다는 게 반가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후에 깨달았다. 나에게 ‘낯선 반가움’이었던 그곳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그리움’이라는 것을. 북한이탈청소년들이 쓴 편지 책을 읽은 덕분이다.
『우리 북동네 잘 있니?』는 ‘한겨레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북한이탈청소년들이 쓴 편지를 묶은 책이다. 북한은 특정 도시를 제외하고 전기 사정이 좋지 않다. 그래서 어두운 밤길을 걷다 길을 잃기도 하고, 한 밤중에 책을 읽는 것도 어렵다.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북한이탈청소년들은 북한에 있는 가족과 지인들에게 밝은 빛을 선물하기로 했다. 태양광 랜턴을 만들어 편지와 함께 보내기로 한 것이다.
학교에서 북한에 선물을 보낸다고 했을 때 아이들이 물었단다. ‘선생님! 국무위원장님께 편지 써도 돼요?’, ‘딱친구가 있었는데 그 애에게 써도 되요?’, ‘할머니에게 쓸 거예요!’, ‘그곳에 혼자 계시며 울고 있을 엄마에게 쓸 거예요.’, ‘선생님! 이 편지 꼭 가는 거 맞죠? 내가 주소도 잊지 않고 있으니 봉투에 써넣을게요. 그러니 꼭 여기로 보내줘야 해요’라고. 그리고 자신의 안부와 두고 온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을 글로 적었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점점 흐려지는 기억에 대한 아픔과 평화통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종이 위에 적혔다.
나는 이 책에 실린 편지들을 읽으며 북한이탈청소년들이 어떤 어려움을 딛고 이 땅에 닿았는지 알게 됐다. 영화나 소설에서 본 험한 장면보다 더 생생한 시간이 아이들의 필체 속에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이탈청소년들이 한국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떠남’에서부터 ‘도착’까지, 그리고 도착해서 적응하기까지 아이들의 삶에 저마다의 서사가 깃 들었다. 가족과 함께 온 친구는 함께 온대로, 혼자서 떠나온 친구는 혼자 온대로 서로가 감당해야 했던 시간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 겪은 시간들은 때때로 그리움이 되었다.
진심을 담은 아이들의 편지를 읽으면서, 무엇보다 이들이 가진 가족을 향한 그리움이 나의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와 가까운 곳에 고향을 떠나 여기에 정착한 친구들이 있다는 것과, 두고 온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북한이탈청소년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청소년들은 당연히 가족과 함께 이곳에 정착하는 줄 알았던 나의 무지도 깨졌다. 내게 아이들의 편지는 그들을 바라보게 하는 ‘관심의 안경’이 되었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바라고 또 바랐다. 아이들이 만든 태양광 랜턴과 손으로 눌러쓴 편지, 그리고 새로운 평화의 싹을 피우라고 보낸 꽃과 채소의 씨앗들이 그곳에 잘 전달되었길, 그리하여 누군가 밤길을 잃지 않고, 밝은 불빛 아래서 마음껏 책을 읽고, 싹을 틔운 채소와 꽃에서 희망을 발견했길 말이다. 오늘은 글을 마치며 또 하나의 바람을 가져본다. 언젠가 이 편지를 쓴 친구들이 수신인과 재회하는 날이 오기를, 서로 마주앉아 ‘그땐 그랬지’라고 추억을 나누는 날이 오기를 말이다.
※ 참고도서 : 『우리 북동네 잘 있니?』 (한겨레 중·고등학교 학생 일동, 책틈 편집부 엮음, 책틈,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