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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큐레이터 Aug 05. 2016

고르, 도린과 실존하고 공존했던 당신에게

-<D에게 보낸 편지>를 읽고


         

편지에 관한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할 때, 당신이 아내 도린에게 썼다는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제목은 <D에게 보낸 편지>. 손을 맞잡은 두 명의 연인이 표지 속에서 춤을 추고 있었지요. 그때까지만 해도 난 당신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편지’가 좋아서 그저 ‘편지’에 관한 자료들을 찾고 공부하다 우연히 당신의 책을 보게 됐을 뿐이니까요.      





책날개에서 당신의 프로필을 읽었습니다. 독일군 징집, 사르트르, 실존주의, 노동, 신좌파, 생태주의... 보기만 해도 머리가 복잡해지는 낱말들이 나열되어 있었지요. 그러다 그 어려운 단어들 사이에서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하는 문장을 만났습니다. 당신이 “2007년 9월 22일 자택에서 아내와 동반자살 했다.”는 문장이었지요. 도대체 왜 당신은, 당신의 아내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지상의 날들을 접었던 걸까요?  나는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쓴 편지를 읽기 시작했지요.     


당신이 세상을 떠나기 1년 여 전쯤에 완성한 <D에게 보낸 편지>는 제가 가지고 있는 편지 관련 책 중에서 가장 얇은 책입니다. 그래서 두 어 시간 정도면 다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당신은 책장이 빨리 넘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자꾸 생각하게 했고, 자꾸 회상하게 했으며, 자꾸 질문하게 했어요. 내게 낯설게 느껴지던 단어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했고, 당신의 삶에 나의 삶을 비추어 보게 했으며, 죽음과 사랑과 실존과 공존에 대해서 자꾸 물어보게 했습니다.      


당신은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었다지요. 독일군 징집을 피해 스위스 로잔으로 떠났다고요. 대학 공부를 마치고 당신은 프랑스에서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 곳에서 사르트르를 만나고, 당신의 반려자인 도린을 만났다지요. 당신이 <에콜로지카>의 서문에서 밝힌, 당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만남이라고 꼽는 두 사람이요. 그런 면에서 보면 당신이 프랑스에 머문 시간들은 축복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하지만, 당신의 삶은 그렇게 녹록치 않았지요. 언제나 일자리를 찾아 전전긍긍해야 했고, 글쓰기에 집중하는 당신 때문에 아내 도린은 늘 생계를 위한 일을 해야 했지요. 그러나 도린은 글 쓰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작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가 글 쓴다는 사실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언제나 당신을 격려했다지요. “그러니 어서 써요!!”라고요.     



당신들은 경제적으로는 궁핍했어도, 당신과 도린은 글 쓰는 삶을 사랑했습니다. 도린은 알고 있었다지요. 글 쓰는 사람이 ‘비록 펜을 내려놓은 다음에라도 글 쓰는 작업은 계속되며 밥 먹다가도 이야기하다가도 생각이 떠오르면 갑작스레 그 작업에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을요. 이 문장 속에서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당신의 젊은 날을 나는 또렷하게 알 수 있었어요. 설거지를 하다가도 혼자 중얼거리고, 밥을 먹다가 무언가를 검색하고 적어놓는 지금의 나와 같았을 테니까요. 아, 그렇다고 제가 무슨 유명한 작가는 아니에요. 그냥 무언가를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일 뿐이죠. 당신이 말했죠. 글 쓰는 사람들의 첫 번째 목적은 ‘글을 쓴다는 행위 그 자체’라고요. 당신의 관점에서 본다면 저도 글 쓰는 사람일 거예요. 지금도 이렇게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으니까요. 당신은 볼 수 없을, 당신이 있는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지상에 남을 글을요.     


당신과 도린은 씨줄과 날줄 같은 사람이었지요. 서로가 엮여서 하나의 인생을 완성한 사람이요. 당신의 삶이 도린의 삶이었고, 도린의 삶이 당신의 삶이었어요. 하지만 <D에게 보낸 편지>를 읽으면서 당신들의 삶이 완벽한 삶은 아니었다는 것에 많은 위로를 받았어요. 두 사람이 만나 ‘처음부터 끝까지 행복했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아니어서요. 지상의 마지막 날을 함께 접은 당신들도, 한 때는 다투고, 외면했다는 사실이 나를 위로했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지만, 다투고, 외면하고 있는 저를요.     


아! 그리고 도린의 거미막염... 그 부분을 읽을 땐 가슴 한 끝이 아팠습니다. 도린의 허리 치료를 위해 주사했던 약물이 결국 뇌로 흘러가 자주 통증을 만들어냈다는 부분이요. 그때부터 당신과 도린은 양약의 힘을 믿지 않았습니다. 제가 스테로이드를 복용하고 어마어마한 부작용에 시달린 후 양약의 힘을 믿지 않게 된 것처럼 말이지요. 내 몸 안에서 일어나는 고통을 나는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고통을 줄이려고 복용한 약이 또 다른 고통들을 만들어 내는 악순환을 겪으면서 목 놓아 울기도 했지요. 나에게 왜 이런 일들이 벌어져야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꾸 누군가를 원망했고, 원망은 분노가 되어갔지요. 그런데 도린은 달랐습니다. 고통이 점령했을지라도 자신이 몸의 주체가 되기를 원했고, 고통을 지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고통을 대하는 도린의 자세를 읽으면서 그녀가 얼마나 강인한 사람인지 느낄 수 있었어요. 그러나 당신이 문제였지요. 당신은  도린의 몸속에서 일어나는 고통의 크기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고, 그래서 괴로워했습니다. 둘이서 무엇이든 함께 하자고 약속했지만, 도린의 통증은 함께 나누어 가질 수 없었지요.     


짐작컨대, 그래서 당신은 도린과 당신의 죽음을 함께 준비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도린의 고통은 나누어 가질 수 없지만, 지상의 끝 시간을 나누어 갖겠다고요. 그것이 당신이 생각한 실존과 공존이 아니었을까요?     

당신은 도린의 관 옆에 서 있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도린의 관이 불타는 것을 지켜보지 않겠다고 했고, 도린의 따뜻한 뼈가 담긴 납골함을 들지 않겠다고 했지요. 그리고 편지가 끝나가는 부분에  캐슬린 페리어의 노랫말을 적었지요.     


“세상은 텅 비었고, 나는 더 살지 않으려네”     


당신이 3개월에 걸쳐 쓴 편지를 다 읽고도, 나는 한참동안 책을 덮지 못했습니다. 여든이 넘은 당신이 늙은 도린을 끌어안고 있는 사진 한 장 때문이었지요.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젊은 날의 두 사람보다 더 아름답고 찬란한 모습이었어요. 저렇게 둘이 함께 잠들었겠구나... 생각하니 코 끝이 시큰거렸습니다. 

  




이제 어디서든 당신의 이름을 만나면 도린도 함께 떠올리겠지요. 그리고 책의 맨 마지막 장에 남은 사진 한 장을 기억해내겠지요. 늙은 당신과 늙은 도린, 그러나 정말 ‘아름답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그 사진 한 장을 말이에요.     


어쩌면 당신이 천상의 날들을 준비하며 썼을 지상에 남긴 마지막 편지, 감사했습니다. 언젠가 천상에서 당신을 만나 이 답장을 전할 날이 오겠지요.      


고르, 

사르트르가 ‘유럽의 가장 날카로운 지성’이라고 말했다던 당신, 

당신의 삶이 담긴 편지를 오랫동안 기억하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2016년 8월 5일 금요일,  무더운 서울에서 글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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