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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큐레이터 Aug 25. 2016

앙투안,
B612에 머물고 있을 당신에게

- <생텍쥐페리, 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

중학교 3학년 때로 기억합니다. 과학시간이었죠. 선생님에게서 당신 이름을 처음 들었습니다. 우주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였을 거예요. 태양계에 대해서 한창 이야기를 하다가 선생님은 문득 B612라는 별을 아느냐고 물으셨지요. 우리 중에 그 별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가난한 동네, 도서관도 별로 없는 곳에서 자란 우리였으니까요. 선생님은 꼭 한 번 <어린왕자>를 읽어보라고 하셨습니다. 비행사였던 ‘생텍쥐 페리’가 쓴 책인데, 그렇게 감동 있는 책을 만나기도 어렵다고요.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혹시나 하고 계몽사 전집을 훑어보았습니다. 엄마가 할부로 끊어서 구입했다던 빨간색 책들, 그림은 하나도 없고 글씨만 다닥다닥 붙어있던, 그래서 내가 잘 펼쳐보지 않았던 그 책들 말이에요. 혹시 그 속에 선생님이 말한 책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혹시나 했는데, 기대했던 대로 그 속에 당신이 쓴 <어린왕자>가 있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사는 이 지구 말고, 다른 행성이 있다는 게, 아니 다른 행성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게 나는 너무 신기했습니다. 한 사람만 살 수 있는 작은 별이란 도대체 얼마나 작은 걸까요? 생경했던 ‘길들인다’는 표현이 너무 아름다워서 밑줄을 긋고 일기장에 옮겼습니다. 나도 누군가를 길들이고 싶다고, 누군가에게 길들임을 받고 싶다고 말입니다. 그 날 이후, <어린왕자>는 내 인생 최고의 책이 되었습니다.       


다시 당신을 만난 건 프랑스에서였습니다. 프랑스가 유로를 사용하지 않고 ‘프랑’을 가지고 있던 때였죠. 프랑스인들이 사용한다는 돈에서 당신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거북선, 세종대왕, 율곡... 그것과는 다른, 문학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돈에 나온다는 것이 제게는 충격이었습니다. 돈도 이렇게 낭만적일수 있구나... 그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또 시간이 흘러, 어느 별로 떠난 당신을 다시 만난 건 편지 덕분이었습니다. 편지 자료들을 찾다가 당신이 어머니에게 보냈다던 편지 모음집을 발견했거든요. <생텍쥐페리, 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책이었지요. 알고 있었나요? 당신의 어머니가 당신의 편지를 엮어서 책으로 냈다는 사실을요. 당신이 세상을 떠나고 10년 쯤 후에 당신의 편지가 세상에 공개되었습니다. 그 책은 다시 1969년에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났고요.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은 2011년 ‘시공사’라는 출판사에서 발행한 책입니다. 편집부가 덧붙인 설명을 보니 이 책은 1969년에 발행했던 책을 보완했다고 하는군요. 몇 편의 편지도 추가되었고요. 앞서 이 책을 읽은 이들보다 당신의 편지를 몇 통 더 볼 수 있다니, 기뻤습니다. ‘어린왕자’를 창조한 당신은 엄마에게 어떤 아들이었을까요? 나는 어린왕자 복장을 하고 있는 당신을 떠올리며 편지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책은 당신 어머니가 쓴 글로 시작합니다. 당신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당신에게 받은 편지들을 부분적으로 보여줍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당신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이었는지, 왜 당신의 편지들을 세상에 내놓기로 했는지를 알려주지요. 당신 어머니는 당신이 많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기억되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수많은 편지 중에서 서문으로 소개되는 편지는 당신의 삶을 한 눈에 그릴 수 있도록 보여주었습니다. 그 편지들만으로도 당신이 당신의 삶을 얼마나 열심히 살아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편지가 끝나면 당신이 썼다는 편지들이 나옵니다. 열 살인 당신이 엄마에게 ‘만년필이 생겼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지요. 새로 생긴 만년필로 엄마에게 편지를 쓴다고요. 그런데 편지를 읽어보니 편지의 주제가 ‘만년필’이 아니었네요. 당신이 엄마에게 편지를 쓴 날은 6월 11일.  ‘내일이 축일’이라고, 외삼촌에게 앙투안의 축일이 돌아온다고 꼭 전해달라는 게 편지의 목적이었지요. 삼촌이 시계를 사준다고 했으니 축일 선물로 그걸 꼭 받겠다고요. 편지 말미에 ‘내 축일, 내일이에요’라고 다시 한 번 덧붙인 당신의 글을 읽으면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생일이 다가오면 계속해서 생일을 공지하는 우리 집 어린왕자가 떠올랐거든요.     


엄마에게 용돈을 더 보내달라고 투정부리는 꼬마, 친구들과 외출을 할 수 있게 외출증을 보내달라는 소년, 동생에겐 더없이 다정했던 오빠, 삶에 대해 고뇌하는 청춘... 편지 속 당신은 이 세상에 속한 우리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어요. 한 가지, 다른 모습이 있었다면, 당신은 언제나 끝없이 엄마를 사랑한다고 속삭였다는 것이지요. 행여나 엄마가 당신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실까봐 엄마에게 고백하고 또 고백했습니다.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 보고 싶다고. 당신이 편지에 끊임없이 반복한 ‘사랑한다’는 말들이 저에게는 애잔하게 느껴졌습니다.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어린아이 같았거든요. 그래요, 어쩌면 당신 안에는 자라지 않는 어린 아이가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은 애잔하게, 그러나 아름다운 문장들을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읽었지요. 그러다 결국은 덜컥, 마음이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당신이 쓴 마지막 편지, 당신이 비행기와 함께 사라진 뒤 1년이 지나서야 엄마에게 도착한 그 편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랑스러운 엄마,

엄마가 저에 대해 마음을 놓으시고, 부디 제 편지를 받게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전 아주 잘 지냅니다. 대단히. 하지만 엄마를 본 지가 너무 오래 되어 마음이 그렇게 서글플 수가 없습니다. 전 엄마 생각을 하면 눈앞이 캄캄합니다...... (중략)

엄마, 제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엄마를 안아드리는 것처럼 저를 안아주세요. 앙투안        - p396 -



어쩌면 당신은, 당신이 사라져버릴 것을 미리 알았을까요? 그래서 엄마에게 ‘저에 대해 마음을 놓으시고, 부디 제 편지를 받게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고 한 게 아닐까요? 나는 당신의 마지막 편지가 머나먼 행성,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우주 어딘가에 있을 B612에서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구에 있는 엄마에게 도착하기까지 1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거라고요. 그 편지를 쓴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당신의 작품을 몇 편 읽어보지 않아서, 당신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합니다. 당신이 엄마에게 보낸 편지를 엮은 책을 구입하고, 얼마 뒤에 이제는 절판되어 버린 <전설적인 사랑>을 구했어요. 당신이 당신의 아내와 주고받은 편지가 실린 책 말이에요. 2005년인가에 프랑스에서 나왔던 책을 우리나라에서 2006년에 발행했으니  어쩌면 당신은 그 책의 존재를 알지 못할지도 모르겠네요.     


아주 천천히, 당신에 대해 더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당신의 작품 보다 당신을 더 먼저 알고 싶어서 <장미의 기억>을 주문했어요. 당신의 아내가 당신에 대해 쓴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네요. 안타깝게도 이 책도 이미 절판이어서 중고서점을 통해 주문했습니다. 며칠 후면 당신의 이야기가 제 책상 위에 펼쳐지겠지요. 오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당신과 주변 사람들이 남긴 흔적들을 따라가면서 당신의 삶을 내 안에 쌓을 생각입니다. 그러면 언젠가 당신의 편지들을 제대로 읽어 내려 갈 수 있겠지요.      


밤이 되었습니다. 서울의 하늘엔 더 이상 별이 빛나지 않지만, 그래도 저 하늘 어딘가 당신이 살고 있는 별이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따뜻해집니다. 어린왕자와 마주 앉아 장미에게 물을 주고, 노을이 지는 방향으로 의자를 고쳐 앉으며 어머니를 그리워할 당신. 당신이 없는 이 지구는 아주 조금 쓸쓸하다는 걸, 당신은 알고 있을까요?     


                                    2016년 8월 25일 목요일, 비행하는 당신을 그리며 글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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