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르주 상드의 편지>를 읽고
당신의 편지를 읽었습니다. 지상에 남아있다는 당신의 편지, 1만 8천통 중에 고작 50여 통을요. 그런데도 그 편지를 읽기위해 저는 많은 자료들을 찾아봐야 했습니다. 당신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으니까요. 당신이 쓴 편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당신의 삶을 읽어야했습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누구와 만났는지, 어떤 생활을 했는지를 알아야 왜 그런 편지를 썼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누군가의 편지를 읽는다는 건, 그 사람의 삶을 읽는 거란 걸 배우고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신문기사에서 처음 봤습니다. ‘쇼팽의 마지막 연인’이라는 문장이 제 눈을 사로잡았어요. 기사를 읽다보니 당신은 뮈세와도 연인 사이였더군요. 그리고 수없이 많은 남자들과 염문을 뿌렸던 여자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기사는 당신을 사랑에 미쳤던 사람으로 그려놓았고, 저는 당신이 궁금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랑을 사랑할 수 있을까... 아주 오래 전, 사랑의 심장이 멈춰버린 나는 당신이, 당신의 사랑과 열정이 궁금했습니다.
제가 읽은 책은 ‘지식을 만드는 지식’에서 나온 <조르주 상드의 편지>입니다. 당신의 편지가 번역된 편지1부터 6권까지를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맛보기 버전으로 출판한 책이지요. 제가 ‘맛보기’라는 표현을 했지만, 이 한권만으로도 당신의 사랑과 삶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어요.
당신의 편지들 중에서 제 눈길을 사로잡은 건, 뮈세에게 보낸 편지였어요. 뮈세를 치료하던 의사와 사랑에 빠진 당신은 베네치아를 떠나있던 뮈세에게 편지를 보냈지요. 여러 가지 이야기가 담겨있었지만, 무엇보다 당신이 뮈세에게 ‘사랑하세요. 그리고 쓰세요!’라고 한 말은 잊히지 않아요. 당신과 헤어지고 우울한 생활을 하고 있던 뮈세에게 ‘사랑을 하고 쓰는 것이 당신의 사명!’이라고 다그치듯 이야기 했던 것, 기억하시나요? 당신은 뮈세에게 이렇게 말했지요.
사랑하세요, 그리고 쓰세요. 그것이 당신의 사명이에요.
당신의 천재성의 빛줄기를 타고 신에게로 올라가세요.
그리고 당신의 시의 여신을 지상으로 내려 보내,
인간들에게 사랑과 믿음의 신비에 대해 얘기하게 하세요.
두려워하지 말아요. 당신의 자존심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세요. -p54-
문장 하나하나가 시처럼 느껴져 감탄했지만, 정말 감탄한 이유는 헤어진 연인에게 이렇게 따뜻한 충고를 할 수 있다는 거였죠. 헤어지면 그 뿐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당신은 헤어진 연인에게 격려를 하고 있네요. 이 편지를 읽고 당신은 사랑이 차고 넘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어요. 모든 사람들에게 ‘연민의 정’을 갖고 있는 사람 말이에요. 뮈세뿐만 아니라 쇼팽에게도 당신은 그런 사람이었지요. 9년 동안 그의 연인이자 어머니였던 당신은 쇼팽과 헤어지고 나서도 늘 그의 안부를 궁금해 했어요. 쇼팽의 누나에게 편지를 보내 그의 안부를 묻기도 했고, 늘 그를 걱정했죠. 그리고 당신은 연인이 아닌 친구들에게도 많은 마음을 썼어요. 시련의 상처에 삶을 놓을까하던 친구에게 ‘당신의 목숨은 당신의 것만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면서 ‘절대 당신을 혼자두지 않겠다’고 위로했지요. 그리고 감옥에 갇힌 친구들을 위해서 왕과 왕비에게 탄원편지를 보내고, 먼 길을 오게 될 친구를 위해 더 빠르고 편안하게 오는 방법을 자세하게 적어 편지를 보냈어요.
당신의 편지를 읽으면서, 나는 세상이 당신을 ‘연애에 눈 먼 여인’으로 기록하고 있는 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당신을 그렇게 치부하고 있는 사람들은 당신의 편지를 읽지 않았을 거예요. 그래서 당신을 제대로 알 수가 없었겠지요.
당신의 편지 속에는 작가로서 고뇌하고 노력하는 당신의 모습도 녹아있었어요. 샤를구노에게 하루도 쉬지 않고 기계처럼 글을 쓰고 있다고, 이러다가는 정작 나 자신을 위한 글쓰기는 단 하루도 해보지 못한 채 죽을 거라고 했었죠. 평생 당신이 쓴 편지만도 4만-5만 통이라는데, 당신이 남긴 소설과 희곡은 또 얼마나 많은지요. 그러니 평생을 관절염에 시달렸겠지요. 당신은 쓰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천상 작가였다는 걸, 당신의 편지를 읽으면서 실감했어요. 그러나 당신은 언제나 경제적인 어려움에 힘들어 했지요. 버는 만큼 써야 할 곳이 늘 있었으니까요. 아이들을 보살펴야 했고, 어려움에 처한 친구들을 도와야했죠. 당신은 당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을 뿌리치지 못했어요. 그래서 늘 출판 관계자들과 싸워야했지요. 당신의 원고료에 매달린 수많은 사람들을 지켜내기 위해서 말이에요.
사람들은 당신이 거만했다고 말하곤 하지만, 편지 속 당신은 겸손하고 결연했어요. 당신이 마르크스에게 보낸 편지가 그걸 말해주었어요. 마르크스가 발행한 신문에 당신에 대한 기사가 사실과 다르게 기록됐으니 정정해달라고 한 편지 말이에요.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겸손하고 분명하게 썼더군요. 제가 만약 마르크스였다면 그 편지를 당신의 요청대로 신문에 실어주었을 거예요. 그런데 마르크스는 정말 그 편지를 신문에 실어주었나요?
당신 덕분에 1800년대를 공부하게 됐어요. 당신이 살았던 시대를 더 알고 싶어서, 당신의 편지를 읽으면 읽을수록 당신이 궁금해서 관련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한 권으로 읽고 말아야지 했던 당신의 편지도 더 구입했어요. 프랑스에 있는 스물 여섯권 모두를 구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 말로 번역된 여섯 권의 책을 서재에 꽂았어요. 당신의 편지를 번역해준 이재희 선생의 인터뷰 글 덕분에 당신의 편지가 어떻게 책으로 엮었는지 알 수 있었고, 당신의 편지를 모으고 엮는데 평생을 바친 조르주 뤼뱅의 이야기도 알 수 있었지요. 편지 책들을 읽으면서 이재희 선생과 조르주 뤼뱅에게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그들이 아니었다면 이 세상에 당신이 다녀갔다는 것을 나는 모르고 살았을 테니까요.
당신의 편지와 함께 관련 자료를 읽으면서 저는 당신이 살았던 시대의 매력에 푹 빠졌어요. 살롱에 모여 문학을 논하고, 음악을 듣고, 연극을 펼치던 사람들의 매력에 빠진 거예요. 제가 사는 세상은 당신이 살았던 때보다 무엇이든 쉽고 빠르게 가질 수 있지만 영혼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만나는 게 쉽지 않거든요. 만약 제가 당신과 같은 시대에 살았다면, 당신과 나는 친구가 되었을까요? 그래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을 주고받는 편지를 쓰며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주는 따뜻한 에너지가 되었을까요?
당신의 편지들을 읽으면서 당신은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그토록 많은 사람을 사랑했고, 다양한 사람들과 우정을 맺었으며, 세상을 향해 정의를 외친 거라고요. 72년, 당신이 이 지상에 머물렀던 시간 동안 당신의 심장은 얼마나 뜨겁게 뛰었을까요? 그 심장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뜨거운 불길을 놓았을까요? 식어가는 내 심장을 당신이 살았던 19세기로 보내고 싶어요...
당신 같은 친구가 필요한 가을밤입니다.
2016년 10월 22일 토요일, 뜨겁게 살아 숨 쉬는 심장이 그리운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