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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큐레이터 Aug 28. 2018

카뮈의 ‘행성 길동무’ 르네 샤르에게

<알베르 카뮈와 르네 샤르의 편지>를 읽고

르네 샤르. 낯선 이름을 검색창에 입력해 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당신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유명한 시인이라는데, 한글로 된 당신의 시집 한 권조차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많이 아쉬웠습니다. 당신이 카뮈와 주고받은 편지를 제대로 읽으려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글을 썼는지 더 알아야하는데, 당신에 대해 알 길이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당신이 ‘프랑스에 사는 시인’이라는 사실 하나만 인지한 채 당신이 쓴 편지를 읽어야했습니다.      


당신과 카뮈가 주고받은 편지를 읽은 건, ‘목마름’때문이었습니다. 일 때문에 쉼 없이 자료를 읽다가  ‘아름다운 글’이 읽고 싶었어요. 밑줄을 긋고 떠다니는 생각들을 기록하지 않아도 되는, 그냥 물 흐르듯이 잔잔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출간하자마자 구입한 당신들의 편지, 『알베르 카뮈와 르네 샤르의 편지』를 꺼내들었습니다.     


<알베르 카뮈와 르네 샤르의 편지> 알베르 카뮈.르네샤르 지음 : 백선희 옮김, 마음의 숲

고백하자면, 저는 당신이 쓴 편지보다 카뮈가 쓴 편지들이 더 궁금했습니다. 카뮈가 왜 시인인 당신에게 편지를 썼는지, 어떤 편지를 썼는지 궁금했어요. ‘프랑스의 지성’이라는 카뮈, ‘엄마가 죽었다’는 유명한 문장을 남긴 카뮈. 그 사람이 당신에게 전한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당신과 카뮈는 작가와 작가로 만났습니다. 서로의 글을 읽고 감동하고, 서로가 발간하는 책의 발문을 써주는 사이가 되었지요.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기 위해서 카뮈는 당신이 사는 동네로 이사를 하기도 했다지요. 같은 집에 살던 때도 있었고요.      


당신과 카뮈가 주고받은 편지를 읽으면서, 카뮈가 왜 당신을 좋아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당신은 카뮈가 극찬할만한 심성을 가진 시인이더군요. 시를 머리로 쓰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밀고 나와 시를 받아 적었으니까요. 당신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쓰고 행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주석에 달린 글들을 통해서 당신의 시 몇 편을 읽을 수 있었어요. 삶을 관통하는 혁명에 대한 시였습니다. 저는 당신의 시를 읽으며 ‘삶이 녹아 있는 시’라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카뮈가 당신을 알아봤다고 생각했지요. 당신은 제가 아는 카뮈와 닮아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당신과 카뮈는 서로를 좋아하고 의지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사람의 편지를 읽는 내내 저는 당신들의 삶이 부러웠습니다. 글과 삶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알고 있으니까요. 자기의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 내가 쓴 글을 가장 먼저 보여 주고 싶은 친구가 있다는 것, 내가 머무는 곳에 기꺼운 마음으로 달려와 함께 머물기 바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세상을 다 가진 것보다 더 든든하고 위로가 되는 일일 테니까요.     

 

자신의 속내를 잘 보이지 않기로 유명한 카뮈가 당신에게만은 무장해제 되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걸 보고, 저는 카뮈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신을 향한 카뮈의 우정, 카뮈를 향한 당신의 우정이 서로를 지탱해주고 서로를 살게 했다고 믿게 될 정도였지요.     


카뮈가 아내의 정신병 등으로 시달리고 있을 때, 당신은 카뮈에게 이런 편지를 보냅니다.     


“지금 당신에게 보잘 것 없는 지지밖에 보내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슬픕니다. 차마 전화도 하지 못하겠습니다. 당신에게 무슨 말을 건네겠습니까? 바보처럼 무력할 뿐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당신의 친구이자 동반자이며, 언제라도 나를 부를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진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불행하다고 호의의 소통을 막아서는 안 됩니다.” 

                                                - 1954년 1월 28일 편지 중에서-      


당신은 카뮈와 ‘보이지 않는 끈’만으로 연결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했지요. 그래서 잠시라도 짬을 내서 차라도 한 잔하고, 식사라도 한 번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내가 당신 곁에 있다고, 언제든 당신을 향해 달려갈 수 있다고 말해주었고, 실제로 그렇게 해주었어요. 이런 당신의 마음을 카뮈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카뮈 또한 당신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했지요.     


“... 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 그 무엇도 나와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10년 전부터 내 안에 깃든 빈 자리가, 공허가 오직 당신의 글을 읽을 때 채워집니다. 가득 채워집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은 의미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무엇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글을 읽고 그걸 알게 되었지요. 겨울일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과실을 수확하면 됩니다. 문제는 그저 삶이 어떻게 될지, 혹은 적어도 삶이 가진 사랑스런 무엇이 어떻게 될지 아는 것입니다. 이것만으로도 고통을 안기기에는 충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불행할지라도 적어도 진실은 박탈당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건 나 혼자만이 아닐 겁니다. 그저 당신과 함께라는 건 압니다. 더 없이 다정한 마음 전하며 A.C "

                                                    - 1956년 5월 18일의 편지 중에서 -     



카뮈가 당신에게 쓴 이 편지, 122번이라는 번호가 붙은 편지를 읽다가 제 맘이 무너졌습니다. 신뢰하고 의지하는 당신들의 우정이 너무 아름다워서, 저는 혼자 조금 울었습니다. 그때부터 편지의 날짜가 1960년을 향해 가는 게 너무 가슴 아팠어요. 곧 카뮈가 떠날 것을 저는 아는데, 당신도 카뮈도 그걸 모르고 있었으니까요. 준비 없이 이별을 맞아야 하는 당신들을 생각하니 숨이 막힐 것 같았습니다. 르네, 당신은 카뮈와 한 동안 연락이 되지 않자 이런 편지를 보냈던 사람이니까요.     


“친애하는 알베르, 어디쯤 계십니까?

문득 당신을 잃어버렸다는 잔인한 느낌이 듭니다. 시간이 도끼의 모습을 띠는군요. 

언제쯤 오시나요?     당신의 르네 샤르"      - 1957년 9월 14일 편지 -    

     

카뮈의 잠깐의 부재에도 이런 마음이 들었던 당신이었으니, 카뮈의 죽음은 당신에게 얼마나 잔인한 것이었을까요? 그 고통의 깊이를 과연 누가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그 고통을 이해해줄 단 한 사람, 알베르 카뮈가 없는데.     

책장을 덮으며 당신과 카뮈의 우정에 대해 다시 생각했습니다. 책을 쓰고 글을 쓸 때마다 헌사를 써 줄 수 있는 사람, 글 한편을 마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 글을 쓰는 노동의 끝에 그 힘겨움과 감격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가졌던 당신과 카뮈의 깊고도 깊은 사랑과 우정에 대해서요. 책을 읽는 동안에도 내내 당신들이 부러웠는데, 책장을 덮고 나서도 그 마음이 떠나지 않습니다.     

 

어쩌면 제게도 당신 같은 친구가 생기는 날이 올까요? 어쩌면 저도 누군가에게 카뮈 같은 친구가 될 수 있는 날이 올까요? 어쩌면 생의 마지막 날까지도 그런 친구를 가질 수 없을지 모르지만, 그런 친구가 될 수 없을지 모르지만 간절하게 소망해봅니다. 내 남은 생 속에 누군가 나의 르네가 되어주길, 내가 누군가의 카뮈가 되어주길 말입니다.     


언젠가... 제게도 그런 친구가 생기면, 제가 누군가에게 그런 친구가 되는 날이 오면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 땐 지금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드릴 수 있겠지요. 그때까지 ‘행성 길동무’인 카뮈와 당신, 지상에서 다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며, 부디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2018년 8월 28일 화요일, 

누군가의 카뮈, 누군가의 르네가 되길 기다리며  글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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