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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큐레이터 Sep 04. 2018

빈센트 반 고흐,
남 몰래 반짝이던 당신에게

<고흐의 편지>들을 읽고


생전 900 여통의 편지를 쓴 화가, 고흐. 당신이 남긴 편지를 읽으려고 편지책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편지의 내용을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내가 알고 당신이란, 해바라기를 그린 화가, 자신의 귀를 자른 미치광이, 동생에게 600 여 통의 편지를 남긴 형이 전부였으니까요. 그런 상식만으로는 당신의 편지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편지 책을 덮고 당신에 관한 다른 기록들을 읽기 시작했어요.     


제일 먼저 당신에 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었던 책은 『태양의 화가 빈센트』였습니다. 지식총서 시리즈로 나온 작고 얇은 책이었지요. 그러나 그 안에서 만난 당신은 거대한 사람이었습니다. 평생 동안 몸을 움직여 삶을 살아낸, ‘거대한’ 사람이었지요. 당신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당신의 역사를 읽으면서 당신의 삶에 녹아 있는 역경과 기쁨과 슬픔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제 머릿속에 있던 조각난 정보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엮였고, 당신의 삶은 한 장의 그림이 되었어요.     


이제, 당신의 편지들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집에 있던 한 권의 책을 펼쳤어요. 『고흐의 재발견』이었습니다. 당신의 편지와 그림이 함께 실렸다는 홍보문구가 눈에 들어오던 책이었지요. 절판된 책이라서 헌책을 겨우 구했는데, 살펴보니 이 책은 ‘아몬드꽃’과 ‘자작나무’ 그림이 표지로 나왔던 책의 다른 버전이네요. 2007년 나무생각 출판사에서 나왔을 때 미처 구입하지 못해 아쉬웠는데, 이렇게 다른 판본으로나마 볼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여기에 실린 당신의 편지와 그림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했던 H.안나수가 엮었다지요.      


『고흐의 재발견』에 있는 편지들 중에서 제 눈과 가슴에 새겨진 편지는 역시 테오에게 보낸 편지였습니다. 바람 부는 바닷가에서 그림을 그렸다는 편지였지요. 당신은 미스트랄에 이젤이 흔들려도 이젤의 다리를 땅 속에 파묻고 그림을 그렸다고 했어요. 바람 부는 바닷가 풍경을 화폭에 담으려고요. 바람에 날린 거친 모래가 당신의 그림을 뒤덮자, 근처 카페에 들어가 모래를 털어내고 다시 그림을 그렸습니다. 강한 바람과 맞서 싸우며 그림을 그리는 당신이 내 눈앞에 있었어요. 비바람에도 포기하지 않고 생생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당신이 보이는군요. 바람에 날리려는 모자를 한 손으로 누르고, 다시 화폭에 그림을 담는 당신의 모습도 떠오릅니다. 끝내 당신의 모자가 매서운 바람에 날아가 버려도, 당신은 아랑곳 하지 않습니다. 바람에게 모자를 바치더라도 그림 한 점을 받아올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하는 사람, 그게 당신이니까요.      


『고흐의 재발견』은 당신이 남긴 그림들이 편지와 함께 실려 있어서 당신이 쓴 편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편지가 한 편의 에세이라면, 당신의 그림들은 마치 삽화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편지 내용을 한 눈에 보여주는 그림, 그림을 설명해주는 글. 저는 당신의 편지와 그림을 보면서 당신을 마음에 품게 되리라 예감했어요. 그림을 향한 당신의 열정이 무명작가인 나에게 말을 걸어왔기 때문입니다.



이제 더 많은 당신의 편지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 서점에 접속해 ‘빈센트’라는 단어를 넣고 책을 검색했어요. 마음에 드는 책들을 장바구니에 넣고 책이 도착하기를 기다렸지요. 모두 네 권의 책이 책상 앞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네 권의 책을 한꺼번에 펼쳤어요. 당신의 이야기를 더 다양한 시선으로 해석하고 싶어서, 당신의 편지를 더 많이 읽고 싶어서 서로 다른 출판사에서 펴낸 당신의 편지책을 한꺼번에 펼쳤지요. 아트북스에서 발간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 예담 출판사에서 출간한 『내 영혼의 편지』, 레드박스에서 펴낸 『반 고흐를 읽다』, 펭귄출판사에서 나온 『반 고흐 편지』까지 모두 네 권을 펼쳐 놓고 읽었어요. 처음엔 과연 이 책들을 다 읽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됐어요.  네 권의 페이지를 모두 합치면 1,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었으니까요. 그래도 읽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내가 알지 못하는 당신의 사소한 나날들이 너무 궁금했거든요.      


날짜별로 순서를 찾아가며 읽은 편지, 그 속에서 만난 당신은 낯설지 않았습니다. 오래전 아주 먼 나라에서 살던 사람이 아니라, 마치 지금도 내 옆에 있는 친한 친구 같았어요. 특히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던 당신이 너무 좋았습니다. 당신은 가난한 이들을 버려두지 못하고, 생명을 지닌 그 어떤 것도 함부로 훼손하는 것을 싫어했지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나비 한 마리를 죽여야 했을 때 당신은 무척 애통해 했어요. 그리고 당신은 나무의 뿌리를 그리면서도 그 안에 생명이 넘치고 있는 것을 표현하고 싶어 했습니다. 마치 사람처럼, 사람이 숨을 쉬고 살아가는 것처럼 나무에게도 그런 삶이 있다고, 숨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했지요.    

  


당신은 정말 열심히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루에 두 세 작품을 그린 날도 있었지요. 그러나 당신의 그림은 팔리지 않았어요. 당신은 좌절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그리고 그렸어요.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그리는 것뿐이라고요. 끝이 보이는 길 같지만, 가까이 가보니 모퉁이로 돌아가는 길이 또 있었다고, 그 모통이를 돌아서 또 걷다보면 언젠가는 내가 가고자 하는 곳에 도착한다고, 당신은 테오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테오에게 보낸 그 편지를 읽으면서 저는 조금 울었어요. 당신이 나에게 해주는 말 같았거든요. 저도 오랫동안 어떤 길을 걷고 있는 중입니다. 사실 저는 제가 도착해야 할 곳이 어딘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걷는 것을 포기하면 안 된다고, 계속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면 내가 가려고 하는 곳이 나올 거라고요.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이렇게 걷는다고 안착할 수 있는 곳이 나올까 싶어서 자주 멈추어 섰으니까요. 길가에 서서 앞으로 나가길 주저하고 있는 내게 당신은 말했어요. ‘포기하지 말고 가라’고요. ‘모퉁이를 돌면 가고자 하는 곳이 나온다’고요. 당신이 테오에게 쓴 편지들이 나에게 하는 말 같아서, 당신의 편지를 읽는 동안 자주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제 당신이 남긴 그림은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비싼 그림이 되었어요. 관련 기사들을 보면서 당신을 생각합니다. ‘내가 죽으면 그림 값이 두 배 이상은 뛸 거라’고 말했던 당신을 말이에요. 당신이 죽은 다음에 그림이 팔리고, 당신이 유명해지고, 값이 천정부지로 뛰어 오르는 일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당신이 살아 있을 때,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노동의 대가를 받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요? 당신의 육신이 오베르쉬즈아르의 공동묘지에 묻힌 뒤, 당신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고, 당신의 그림이 비싸게 팔리게 됐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의 미래도 그렇게 되는 게 아닐까, 사실은 좀 두려웠습니다. 나는 살아 있을 때 인정받고 싶으니까요. 내 글을 읽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살아 숨 쉬는 동안 보고 싶으니까요.     


                                        Starry Night Over the Rhone / 출처 :위키피디아


죽은 뒤에 빛난 고흐. 사람들은 당신을 ‘태양의 화가’라고 말하지만, 나는 당신을 ‘빛의 화가’라고 생각합니다. 태양처럼 밝은 빛이 아니라, 별처럼 반짝이는 그런 빛을 품은 화가 말이에요. 그래서 나는 당신이 별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당신 자체만으로도 빛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아니, 빛을 감춘 사람이었죠. 그래서 당신의 빛을 사람들이 몰라 봤을 지도 몰라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았던 당신의 빛이, 당신의 죽음으로 밝혀진 게 아닐까요?      


죽은 형의 이름으로 세상에 와서, 온 지구에 그 이름을 새겨 넣은 빈센트 반 고흐. 당신은 ‘화가’라는 테두리 안에만 넣기에 굉장히 많은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이 쓴 문장들은 작가의 것이었고, 당신의 생각은 철학자의 것이었고, 당신의 그림은 화가의 것이었으니까요. 신은 당신에게 정말 많은 것을 주었는데, 당신은 그것을 알고 있었을까요?      


하늘 어디에선가 여전히 빛나고 있을 당신,

나도 당신처럼, 이 땅에서 빛나고 싶습니다.         


      

2018. 9. 4.  화요일, 당신의 빛을 간직하게 된 글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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