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삶을 그린 빈센트의 편지

by 편지큐레이터


해마다 여름이면 떠오르는 장면 하나가 있습니다. 해를 향해 고개를 든 수천 개의 해바라기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모습입니다. 20여 년 전, 프랑스에서 본 이 풍경은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이 해바라기라니! 지평선 끝에 산이 아닌 해바라기가 펼쳐져 있는 모습에 탄성을 지르고 말았지요. 그런데 이 해바라기에게 마음을 빼앗긴 사람이 100여 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바로‘해바라기의 화가’라고 불리는 빈센트 반 고흐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는 네덜란드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태어나기 1년 전에 갓 태어났던 형이 사망하면서 그는 형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고, 맏이로 자랍니다. 빈센트에게는 다섯 명의 동생이 있었는데, 셋째였던 테오 반 고흐와 평생 동안 깊은 우정을 나눕니다. 헤이그 구필화랑에서 근무하던 빈센트가 그를 찾아온 테오에게 편지를 쓰면서 둘의 관계는 특별해집니다. 형과 동생의 관계를 넘어‘영혼의 동반자’가 되는 것이지요. 1872년부터 시작된 빈센트의 편지는 그가 세상을 떠나던 1890년까지 18년 동안 이어집니다.


빈센트가 테오에게 남긴 600여 통의 편지를 읽다보면, 그의 삶이 오롯이 보입니다. 그림을 파는 화상이었던 빈센트와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 노력했던 선교사 빈센트, 그리고 세상의 모든 사물에 생명을 부여하고 싶었던 화가 빈센트의 모습을 볼 수 있지요. 1874년 1월, 화상이었던 빈센트는 테오에게 밀레의 그림에 대한 편지를 씁니다. <저녁기도>라는 그림의 장엄함에 대해 ‘한마디로 시 그 자체인 작품’이라고 칭송합니다. 그리고 화가란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서 평범한 사람들이 자연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가르쳐준다고 말합니다. 빈센트는 화랑에서 일할 때부터 그림을 보고 감탄하는 시간을 가졌고, 화가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정의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화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목사가 되어 사람들 속에서 살기를 원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목사가 되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선교사로 잠깐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지냈지만, 빈센트는 그것도 자신의 길이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빈센트를 화가의 길로 안내한 것은 테오였습니다. 형이 보낸 편지에서 그림에 대한 열정을 읽어낸 테오는 빈센트에게 직접 그림을 그려 볼 것을 제안하고, 아무 조건 없이 빈센트에게 그림도구와 생활비를 보냅니다. 빈센트는 동생이 보내는 돈으로 물감을 사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지요. 그리고 자신이 화가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도와주는 동생에게 끊임없이 편지를 보냅니다. 때로는 물감이 필요하다며 돈을 보내달라고 부탁하고, 때로는 테오에게 자신이 읽은 책을 소개하며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리스도에 대한 묵상을 적어 편지에 보내기도 하지요.


어느 날의 편지에는 화가들도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편지를 받고 테오는 고흐와 함께 생활 할 화가를 섭외합니다. 그러나 독특한 성격을 가진 빈센트와 함께 생활하려는 화가는 많지 않았습니다. 화상이었던 테오의 지위를 활용하고 싶었던 고갱만이 아를로 내려갈 채비를 하지요. 빈센트의 편지에 해바라기가 등장하는 것은 이 무렵입니다. 프랑스 남부지방인 아를에 터를 잡은 빈센트가 고갱을 기다리며 집을 꾸미던 때였습니다. 그는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고갱과 함께 사용할 공동작업실에 열두 점의 해바라기 작품을 걸기로 했다고 전합니다. 오직 커다란 해바라기로만 작업실을 장식해서 파란색과 노란색의 심포니를 이루고 싶다고요. 그러기 위해서 이른 아침부터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꽃이 빨리 시들어 버려 단번에 전체를 그려야했기 때문이지요. 빈센트는 꽃의 찬란한 한 때를 그리며 고갱과 함께 지낼 멋진 날들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성격도 생활방식도 정 반대였던 고갱과 관계가 틀어지면서, 그는 다시 혼자만의 삶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800px-Vincent_Willem_van_Gogh_128.jpg 고흐, <해바라기> 출처:위키백과

외톨이 빈센트, 그는 언제나 모자를 눌러쓰고 양 손에 이젤과 물감을 들고 혼자서 길을 나섰지만, 그의 눈에 세상은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길가에 핀 꽃 한 송이, 정신병원 정원을 날아다니는 나비 한 마리, 하늘 향해 솟구쳐 오르고 있는 플라타너스 나무 한 그루, 모두가 어둡다고 까맣게 칠해버리는 밤하늘에서도 그는 생명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테오에게 편지를 씁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고.


빈센트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바닷가에서 그림을 그렸다고 전한 편지입니다. 미스트랄이 너무 세게 불어서 자꾸 이젤이 쓰러지자 이젤의 다리를 땅 속에 파묻고, 도화지에 달라붙는 모래가루를 떼어내며 그림을 그렸다는 편지입니다. 강한 바람과 맞서 싸우며 비바람을 화폭에 담으려고 했던 빈센트를 떠올리면, 그의 삶이 그처럼 고단했을 것 같아 안쓰러운 마음이 듭니다. 빈센트에게 그림은 언제나 일이었고, 작업이었고, 노동이었습니다. 그는 몸을 움직여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리고, 자신 또한 그렇게 살고 싶어 했지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수천 번의 붓질을 했던 빈센트는 녹초가 된 몸으로 테오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림이 한 점도 팔리지 않아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그리는 일 뿐이라고. 끝이 보이는 길 같지만, 가까이 가보니 모퉁이로 돌아가는 길이 또 있었다고, 그 모통이를 돌아서 또 걷다보면 언젠가는 내가 가고자 하는 곳에 도착할거며 삶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고단한 삶을 살았지만, 모든 이의 삶이 찬란하다는 것을 알았던 빈센트. 그는 알고 있을까요? 해바라기를 볼 때마다 누군가 자신을 떠올린다는 걸, 고단했던 삶이 녹아 있는 그의 그림이 전 세계인의 가슴 속에서 빛나고 있다는 걸 말입니다. 태양이 작열하는 이 여름, 빈센트의 편지를 읽으며 내 삶도 뜨겁게 빛나고 있다고 믿어봅니다.


성베네딕도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9년 여름호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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