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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큐레이터 Jul 12. 2021

괴테 선생님께

-  슈베르트의  <마왕>을 듣고 써 본 내 맘대로 편지


온 세상에 생명이 움트는 3월입니다. 죽음 같았던 긴 시간을 지나 부활을 꿈꾸는 이때에 선생님을 만나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31년 동안 이루지 못한 꿈을 이제야 비로소 이루게 되었네요.     


저는 오랜 시간동안 선생님을 만나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언제나 저를 외면하셨지요. 선생님의 작품이 나올 때마다 가장 먼저 펼쳐보는 첫 번째 독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제 존재를 의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저에게 선생님은 거대한 존재였고, 그저 거기에 선생님이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힘이 났으니까요.      


제가 선생님의 시 ‘마왕’을 읽고 곡을 만든 것은 1815년, 열여덟 살 때였습니다. 아픈 아이를 안고 달리는 아버지의 애절함과 마왕을 바라보는 아이의 두려움, 아이의 영혼을 가져가려고 하는 마왕의 간사함이 뒤섞인 작품이었지요. 선생님의 시를 읽자마자 머릿속에서 선율이 떠 다녔습니다. 저는 그걸 오선지에 옮길 수밖에 없었지요. 말이 달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도록 셋잇단음표를 이어 붙이고, 아버지와 아이, 마왕이 등장하는 부분의 선율을 달리했습니다. 한 사람이 노래를 해도 각자의 특징이 드러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악보가 완성된 후, 친구들은 제 악보를 선생님께 보냈습니다. 저는 이제나 저제나 선생님께 연락이 올까 기다렸지요. 그러나 선생님은 끝내 제게 연락을 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많이 실망했지만, 용기를 냈습니다. 제가 더 좋은 곡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면, 언젠가 선생님이 인정해주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제가 지상에 머무는 동안 제게 단 한 번의 눈길도 주지 않으셨습니다. 선생님께 음악가는 멘델스존 한 명 뿐이었지요.

     

그러나 선생님, 선생님이 시작하게 된 긴 여행의 동반자는 멘델스존이 아니라 제가 되었습니다. 멘델스존은 좀 더 지상에 머물러야 하니까요. 마왕은 저에게 당신의 영혼을 거둬올 것을 허락했습니다. 한 평생을 꿈꾸던 당신과 이렇게 만나게 되어 유감입니다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선생님은 80년이 넘도록 그곳에 계셨으니까요. 선생님이 작품 속에서 죽인 수많은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사셨으니 안타까워하지도 마시고, 이제 이곳의 순리를 따르시면 됩니다. 만약에, 그때 – 제가 선생님께 악보와 편지를 보냈던 그 날들 중 단 하루만이라도, 제게 연락을 주셨다면 저는 마왕의 편에 서지 않았을 것입니다. 선생님을 조금 더 그곳에 머물게 해달라고 신께 빌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제가 서른 한 해를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제게 연락하지 않으셨고, 죽음의 문턱에 다가서서야 제 음악을 듣고 감탄하셨지요. 저의 무엇이 그토록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요? 저는 그것이 늘 궁금했습니다.     


아, 시간이 다 되었군요. 이 편지가 끝나면 선생님의 숨이 끊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저를 만나 어둠의 숲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그 숲에서 저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왜 저에게 그렇게 매정하셨는지, 저는 왜 선생님의 음악가가 될 수 없었는지... 대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83년의 지상 여행을 마치고 이제 어둠의 여행을 시작하게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당신과 함께 걸을 어둠의 숲 속에 ‘마왕’이 울려퍼지도록 음악을 틀어야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천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1832. 3. 22. 당신을 존경하는 슈베르트 드림



사진출처 :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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