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철학>을 들고 나눈 인사
정약용은 나에게 역사 속에 박제된 인물이었다. 200년 전에 수백 권의 책을 쓰고 엄청난 업적을 남긴 ‘훌륭한 위인’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내게 ‘사람’이 되어 왔다. 막내아들에게 보낸 편지 덕분이었다. 아들의 죽음에 목 놓아 울며 슬퍼하는 ‘아버지’ 정약용을 보는 순간, 그가 역사 속에 박제된 인물이 아니라 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부터 학자 정약용 말고 ‘사람 정약용’의 발자취를 찾아다녔다. 그가 살았던 능내에 찾아가 그가 걸었던 길을 걷고, 그가 바라봤던 강을 바라봤다. 그가 유배인의 몸으로 살았던 강진 초당에 올라 삶을 견디던 그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남긴 편지들을 찾아 읽었다. 아버지이며 아들이었고, 형이자 동생이었으며, 스승이며 친구였던 정약용이 세상을 향해 무장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지인들에게 쓴 편지를 읽으며 ‘사람 정약용’을 만났다.
<다산의 철학>은 그렇게 만났던 “사람 정약용”에 대해 쓴 책이다.
책이 세상에 나온 뒤, 세 번의 계절이 바뀌었다. 오랜만에 능내에 찾아가 그가 바라봤을 강을 보며 책 인사를 건넸다. 어딘가에서 그가 손을 흔들어 주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