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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큐레이터 Apr 28. 2022

김대건 신부의 편지

편지책으로 읽는 교회4



리엘! 걸어서 어딘가를 가 본 적이 있니? 가까운 동네 말고 조금 먼 곳 말이야. 몇 시간, 혹은 며칠을 걸어서 목적지에 도착했던 적이 있느냐고. 샘은 도보성지순례를 한 적이 있었어. 주일학교 다닐 때였는데, 2박 3일 캠프 중에서 둘째 날 일정이 하루 종일 걸어서 성지를 순례하는 거였어.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걸었는데 얼마나 고되던지. 종아리가 터지는 줄 알았다니까. 샘은 하루를 걷는 것도 무척 힘들었는데, 열 세 살의 어떤 소년은 다른 나라로 유학을 가면서 걷고 또 걸었대. 6개월 동안이나 걸어서 목적지에 도착했다는구나. 그게 누구냐고? 우리나라 첫 번째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야.     


모방 신부님에 의해 신학생으로 선발된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는 함께 마카오로 유학을 떠났어. 1836년 12월 3일에 서울을 출발했는데, 1837년 6월 7일에 마카오에 도착했지. 당시에는 마땅한 교통편도 없었고, 비밀리에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게 걸어서 갈 수밖에 없었대. 세 명의 신학생은 마카오에 설립된 임시 신학교에서 공부를 했어. 그러던 1838년 11월, 최방제가 건강 악화로 세상을 떠나는 안타까운 일이 생겼단다. 함께 수학하던 김대건과 최양업에게는 충격적인 일이었지만, 두 사람은 자신들의 사명에 충실할 것을 새롭게 다짐했어.     


세월이 흘러 1845년 8월 17일, 김대건은 사제서품을 받고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가 되었단다. 이 땅에 교회 공동체가 생긴지 60여 년 만의 일이었지. 사제가 된 김대건은 ‘라파엘호’라는 작은 배에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주교를 모시고 함께 조선으로 들어왔어. 그 후 꿈에 그리던 조선에서의 사목을 시작하지. 그러나 김대건 신부의 사목 시간은 길지 않았단다. 조선에 입국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아서 체포되었기 때문이야. 김대건 신부님이 체포되는 과정은 그가 1846년 8월 26일 감옥에서 쓴 편지에 남아 있단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서한>, 한국교회사연구소

김대건 신부님은 새로운 선교사들이 입국할 수 있는 바닷길을 알아보기 위해 고기잡이배에 올랐어. 배 위에서 선원들과 함께 머물며 항구를 살폈지. 중국으로 편지를 보낼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 서양의 선교사들이 들어올 때 어떤 곳을 이용하면 좋을지를 살펴본 거야. 백령도 근처를 연락거점으로 점찍은 김대건 신부님은 일행들과 순위 항구라는 곳으로 왔어. 그런데 이곳에서 관원들에게 잡히게 돼. 배를 빌려달라는 관원들의 청을 거절했기 때문이야. 화가 난 관원들은 선원들을 잡아가 취조를 하다가 김대건 신부에게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결국 그가 천주교 신자라는 것도 알아내지. 관원들은 신부님의 머리털을 한 움큼 뽑고, 몸을 줄고 묶고,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면서 관아로 끌고 갔어. 그리고 신부님에게 배교를 하라고 강요하지.  하지만 신부님은 배교할 생각이 없다며 관원들에게 천주님이 어떤 분인가를 전해. 자신이 존경하는 하느님은 천지를 만드신 분이고, 상선벌악을 하시는 분이라고 말이야. 그리고 천주님의 사랑을 위해 나에게 고문을 해달라고 청하면서, 나를 고문하는 당신들을 하느님께서 더 높은 벼슬에 오르게 해주시기를 기원하겠다고 해. 신부님은 하느님을 위해서 고통 받고 죽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에게 영광을 선사한 관원들이 더 높은 벼슬에 오르도록 기도하겠다고 하신 거야.       


김대건 신부님은 몇 번의 이감을 통해 서울로 압송돼.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이 오래전 해외로 유학을 떠났던 세 소년 중에 한 명인 김대건 안드레아라는 것을 밝히시지. 감옥에 갇힌 김대건 신부님은 세 통의 편지를 쓰셔. 6월 8일에 쓴 첫 번째 편지는 스승 신부님들께 하직 인사를 하는 편지였는데, 그 편지에 최양업 토마스에게 전하는 메시지도 있었어. 사제가 되기 위해 함께 공부한 친구에게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전하면서 자신의 어머니를 돌보아 달라고 부탁하셨단다. 그리고 두 달 여후에는 페레올 주교님께 자신이 체포되는 과정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하는 편지를 남기셨어. 마지막으로 순교하시기 며칠 전에는 조선의 신자들에게 편지를 쓰셨어. ‘마지막 회유문’이라고 불리는 이 편지에는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주님을 믿고 기다리라’는 당부와 ‘하느님께서 나보다 더 착한 목자를 보내주실 것이니 서러워 말고 주님을 섬기다 천국에서 만나자’는 약속이 담겨있단다.      


1846년 9월 16일, 김대건 신부님은 새남터에서 순교하셨고, 신자들은 신부님의 시신을 몰래 수습해 미리내에 안장했어. 지금도 미리내 성지에 가면 김대건 신부님의 무덤이 남아 있단다. 김대건 신부님이 쓴 편지를 읽고 싶다면 한국교회사 연구소에서 발행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서한》을 읽어봐. 편지에 대한 설명도 많고, 번역된 문장도 쉬워서 신부님의 삶을 자세히 알 수 있을 거야. 그럼 리엘, 오늘은 이만 줄일게. 다음에 또 만나자. 안녕.


                            - <하늘마음> 2022년 4월 10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실린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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