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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큐레이터 May 20. 2022

오메트르 신부의 편지

편지책으로 읽는 교회5

  

리엘! 네가 원하는 것과 부모님이 원하는 것이 달랐던 적이 있니? 너는 이걸 하고 싶은데, 부모님은 저걸 하기를 원했던 때 말이야. 뭐라고? 너는 게임을 하고 싶은데, 부모님은 공부를 하기를 원한 적이 있다고? 그런 경험은 아주 많은 친구들이 했을 것 같구나. 그래. 살다보면 부모님과 의견이 다를 때가 종종 있지. 그게 게임과 공부 같은 사소한(?) 문제라면 가볍게 넘어갈 수도 있을 테지만, 인생의 한 획을 가르는 중요한 일이라면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부모님과 관계도 틀어지게 되지. 오늘 소개할 오메트르 신부님은 목숨이 걸린 아주 중요한 문제를 놓고 부모님과 대립한 사연을 가진 분이야.      


피에르 오메트르 신부님은 1837년 프랑스의 앙굴렘 교구에 있는 에제끄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어. 신부님의 아버지는 농사를 짓고, 신발을 만드는 일을 하고, 오메트르 신부님은 1852년에 소신학교에 입학했어. 소신학교는 중등교육을 하는 신학교인데, 대신학교에 가기 전에 공부하는 신학교야. 소신학교를 졸업한 신부님은 1857년에 앙굴렘 대신학교에 입학했어. 그리고 이곳에서 아주 중요한 결심을 하게 되었지. 바로 선교사제가 되겠다는 결심이었어. 그런데 신부님은 이런 사실을 부모님께 말하지 않았어. 자신이 선교 사제가 되는 걸 부모님이 반대할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신부님은 지도 사제에게만 이 결심을 밝히고 주교님께 교구를 떠나 선교사제가 되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어. 그리고 파리외방전교회의 신학교로 출발하기 직전에 부모님께 선교사제가 되겠다는 소식을 전하지. 예상했던 것처럼 부모님은 격렬하게 반대를 했어. 아마 부모님께는 사랑하는 아들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미지의 세상으로 가서 사목을 한다는 게 너무 큰 충격이었을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부님은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해서 신학을 공부해. 그리고 1862년에 사제서품을 받으셨어. 그러는 동안에도 가족들은 슬픔에 차서 병이 나기도 했고, 신부님이 보낸 편지에 9개월이나 답장을 하지 않기도 했어. 신부님이 곧 떠난다는 사실에 가족들은 무척 고통스러워했어. 그래도 신부님은 선교사제가 될 것을 멈추지 않고 기도했단다. 그리고 ‘프란치스코’라는 세례명을 가진 친구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편지를 써.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말이야. 프란치스코 성인도 아버지를 떠나면서 아픔을 겪었던 분이니, 그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성인일거라고 생각한 거야. 그래서 ‘프란치스코’라는 세례명을 가진 친구가 수호성인으로 모시는 분께 기도해 주기를 부탁한 거란다.       


<성 오메트르 신부의 편지>,  윤민구 신부. 박희균 공역, 한국순교자연구회

1862년 8월 18일, 오메트르 신부님은 조선을 향해 출발을 했어. 그러나 조선으로 오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지. 출항이 계속 지연 되었고 새로운 난관들이 나타나 하나씩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었어. 그러나 신부님은 이 모든 어려움이 주님의 뜻이라고 생각해. 하느님께서 뭔가 뜻하신 바가 있어서 이런 시간들을 허락하신 거라고 말이야.      


1863년 6월 23일, 신부님은 10개월의 대장정 끝에 드디어 조선에 들어와 베르뇌 주교님을 만날 수 있었어. 신부님은 주교님과 함께 지내면서 조선어를 배우고 사목에 필요한 조언을 들었어. 그리고 얼마 후에 손골(지금의 용인)에 도착해서 사목을 시작했어. 교우촌을 돌며 교우들에게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를 베풀었던 거야. 그리고 시간을 쪼개 프랑스에 있는 친구 사제들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어. 편지에는 조선의 생활양식과 조선의 선교 사제로서 살고 있는 신부님의 삶이 기록되었단다.       


오메트르 신부님은 열의를 갖고 교우촌을 방문하며 사목했어. 그런데 곧 안타까운 일이 생기고 말았어. 1866년 2월 23일에 베르뇌 주교님이 체포 되셨거든. 후에 다블뤼 주교님까지 체포되면서 오메트르 신부님은 스스로 관아에 잡혀 가셨어. 그리고 1866년 3월 23일, 성금요일에 순교하셨지.     


이 글을 읽으면서 리엘 너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어. 오메트르 신부님이 부모님 말씀을 듣고 프랑스에 남았다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고 말이야. 하지만 오메트르 신부님은 자신의 선택을 단 한 순간도 후회하지 않았단다. 샘은 오메트르 신부님의 편지를 읽으면서 ‘선택’에 관한 묵상을 했어. 그리고 깨달았지.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 ‘자유의지’라는 걸 말이야. 옆에서 누가 뭐라 해도 나는 내 삶의 길을 선택할 자유가 있고, 그것을 허락하시는 분이 하느님이라는 걸 말이야. 그러니 리엘! 살면서 무엇을 선택하든 자유롭게 선택하렴. 네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허락하실 테니 말이야. 뭐라고?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게임을 좀 해야겠다고? 그래. 중간고사도 끝났으니 마음껏 누리렴. 하느님께서도 기꺼운 마음으로 허락해주실 거야. 그런데 너희 부모님도 기꺼이 허락해 주실지는 잘 모르겠다. 부모님을 설득하는 건 리엘 너의 몫이란 거 알지? 샘은 다음에 또 다른 편지로 찾아올게. 그럼 안녕!      


             - 2022년 5월 8일 부활 제4주일 <하늘마음>에 실린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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