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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큐레이터 Jun 17. 2022

차쿠에서 온 편지

편지책으로 읽는 교회6

리엘! ‘차쿠’라는 지명을 들어 본 적 있니? 샘은 <차쿠에서 온 편지>라는 책에서 처음 봤어.  차쿠는 ‘눈의 성모 성당’이라고 불리는 ‘성모설지전’성당이 있는 곳인데, 중국 요녕성 장하시에 있단다. 이곳은 1868년부터 1882년까지 조선대목구 교구청이 있었던 자리였고, 우리나라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님이 사제서품을 받고 처음으로 사목을 한 곳이기도 했어. 무엇보다 ‘차쿠’가 의미 있는 것은 가톨릭신앙이 우리에게 이어져 내려오는데 큰 역할을 한 곳이라는 거야. 차쿠는 조선으로 향하던 프랑스 선교사들이 머물면서 조선 선교에 대한 열망을 키운 곳이었고, 조선에서 선교를 하던 선교사들이 박해를 피해서 잠시 머무르며 다시 조선으로 돌아갈 것을 기다리던 곳이기도 했거든. 자, 그럼 <차쿠에서 온 편지>는 어떤 책인지 얘기 해줄게.       


<차쿠에서 온 편지>는 1855년부터 1881년까지 차쿠 성당에 머물렀던 선교사들이 쓴 편지를 묶은 책이야. 우리나라 역대 주교님인 베르뇌, 리델. 블랑, 뮈텔 주교님을 비롯해서 병인박해 때 순교한 볼리외, 브르트니애르, 위앵 신부님 등이 쓴 편지가 있어. 이 책에 실린 첫 번째 편지는 우리나라 4대 주교님이었던 베르뇌 주교님의 편지인데, 주교님이 조선대목구의 주교로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알게 됐다는 내용이야. 원래 베르뇌 주교님은 1854년 3월 11일에 만주교구의 부주교로 임명되었는데, 7월 15일에 다시 조선대목구의 주교로 임명되었어. 이 사실을 알게 된 베르뇌 주교님은 굉장히 혼란스러워하셨어. 11년 동안 만주에서 사목을 하며 쌓아 온 모든 것을 두고,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조선으로 가야했기 때문이야. 하지만 주교님은 기꺼이 조선으로 떠나겠다며 동료 사제인 리브와 신부님에게 편지를 쓰셨단다.     


<차쿠에서 온 편지>, 청주교구 베티성지 양업교회사연구소

볼리외, 위앵, 브르트니에르 신부님도 차쿠에서 조선입국을 기다리며 동료 사제들에게 편지를 썼어. 이들은 1864년에 조선 선교사로 파견되었고, 이듬해 조선에 입국할 때까지 차쿠에 머물렀어. 세 명의 신부님은 1865년 5월 27일에 조선에 도착해서 조선어를 배웠어. 그 후, 1866년 2월에 신자들에게 고해성사를 집전 할 수 있었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 달도 채 되지 않아서 관아에 체포되었고, 곧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어. 이 분들이 순교하신 때에 일어난 박해를 ‘병인박해’라고 해. 1866년이 ‘병인년’이었기 때문이야.      


병인박해 때 박해를 피해서 중국으로 피신한 신부님들도 있었어. 리델 신부님과 칼레 신부님은 조선을 떠나 차쿠에 머물면서 다시 조선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렸어. 그러는 동안 선교사들에게 적용할 규칙을 재정비하고, 소시노드를 열고 조선교회의 사목방침을 결정하기도 했어. 그러나 조선으로 돌아가는 것은 쉽지 않았어. 조선의 박해는 사그라지지 않았고, 재입국 시기를 기다리는 동안 칼레 신부님은 건강에 이상이 생겨서 프랑스로 되돌아 가야했지. 리델 신부님만이 10년을 기다린 후에야 다시 조선으로 돌아갈 수 있었어. 조선대목구의 제6대 주교가 된 리델 주교님은 1877년 9월 초에 조선 재입국에 성공했어. 그러나 이듬해 1월에 체포되었고, 옥고를 치룬 후 그해 6월에 중국으로 추방되었단다. 리델 주교님은 차쿠에 머물면서 다시 조선으로 되돌아 갈 날을 기다리셨어.      


리델 주교님이 추방된 이후에도 동료 사제들은 조선에서 사목을 이어갔어. 조선의 신자들도  차쿠로 밀사를 보내 조선의 상황을 알리고, 선교사들이 재입국 할 수 있는 길을 마련했어. 덕분에 1880년 11월에 뮈텔 신부와 리우빌 신부가 조선에 입국할 수 있었어. 이 사제들은 조선교회의 신자들이 신앙을 이어갈 수 있도록 성심을 다해 사목을 했단다. 그럼 리델 주교님도 다시 조선에서 사목을 하셨냐고? 아니. 그러지 못했어. 주교님은 차쿠에서 조선 입국을 기다리며 여러 활동을 하셨는데, 1881년에 뇌출혈로 쓰러져서 프랑스로 되돌아가셨거든. 그 후 1884년에 프랑스에서 선종하셨어. 그래도 계속해서 선교 사제들이 조선에 파견되었고, 덕분에 우리 선조들은 신앙을 이어갈 수 있었단다.     


샘은 <차쿠에서 온 편지>를 읽으면서 ‘차쿠’라는 곳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 곳인지를 깨달았어. 차쿠는 선교사들이 조선에 대한 희망을 품은 곳이자, 입국을 기다리며 실망하고 좌절한 곳이기도 했어. 그러나 끝내 포기하지 않고 다시 희망을 품은 곳이었지. 그래서 샘에게는 ‘차쿠’라는 말이 ‘희망’의 다른 말처럼 느껴졌어. 포기하지 않고 꿈꾸게 하는 희망 말이야. 리엘! 무언가 자꾸 포기하고 싶어질 때 <차쿠에서 온 편지>를 읽어보렴. 단 한 순간도 조선을 포기 하지 않았던 선교사제들의 편지가 너에게도 큰 힘을 줄 거야. 그럼 우리는 다음에 또 만나자. 안녕!     


          - 2022년 6월 12일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대축일 <하늘마음>에 실린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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