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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큐레이터 Aug 16. 2022

영화 <헌트>와 편지를 읽다

영화 <헌트>를 보고 함께 읽으면 좋을 편지책

이정재 감독이 만든 영화 <헌트>를 봤다. 무슨 내용인지 1도 모른 채 극장에 앉았다가, 80년대를 배경으로 했다는 자막을 보고서야 그 시절의 이야기라는 걸 알았다. 영화는 탄탄한 시나리오에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 두고두고 생각해볼 거리들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었다. 다시 한 번 보고 싶을 만큼 좋았다. 


영화의 스토리가 나를 이리 저리로 끌고 다녔다. 버마 아웅 산 사건과 남산과 광주와 그리고 편지 책 몇 권. 영화를 보는 내내 몇 권의 책이 머리 위를 둥둥 떠 다녔다. 그래서 영화 리뷰 말고 <헌트>와 함께 읽으면 좋을 편지책을 몇 권 소개하려고 한다.


먼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이미 많은 분들이 탐독했을 이 책은 신영복 교수가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됐을 때 쓴 편지를 엮은 책이다. 편지는 주로 가족들에게 보낸 것인데, 한 달에 한 번, 유일하게 기록이 허락되는 날 그동안 생각한 것들을 엽서 위에 적은 것이다. 이 편지를 읽다보면 ‘이 글이 정말 감옥에서 쓴 글일까?’ 싶을 정도로 깊고 깊은 사색에 감동하게 된다. ‘엽서 한 장에는 못다 담을 봄’이 왔다고 전하고, ‘기쁨과 마찬가지로 슬픔도 사람을 키운다는 쉬운 이치를 생활의 골목골목마다에서 확인하면서 여름 나무처럼 언제나 크는 사람을 배우려’한다고 다짐하고, ‘등 뒤에 겨울을 데리고 있다 하여 가을을 반기지 못하는 이곳의 가난함이 부끄러울 뿐’이라고 고백하는 이의 편지는 가슴 속에 큰 울림을 만든다.   


두 번째 편지, 《봄을 기다리는 날들》.

이 편지는 수학자 안재구가 그의 가족들과 나눈 편지를 모은 책이다. 안재구는 국제적인 수학자였으나 박정희 유신 독재에 맞서 투쟁하던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1979년에 투옥되었다. 안재구는 감옥에서 가족들과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그 때 나눈 편지를 작가 안소영(《책만 보는 바보》, 《다산의 아버님께》, 《시인 동주》, 《당신에게로》 등을 썼다)이 추려서 엮었다. 안소영은 안재구의 둘째 딸이며 책 속에는 그의 편지가 상당수 수록돼 있다. 이 편지들을 읽으며 부모와 자녀가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 무엇인지, 부모가 어떻게 자녀들의 ‘멘토’가 될 수 있는지를 깨달았다.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정말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편지들을 읽으면서 안소영이 쓴 《다산의 아버님께》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다산의 아버님께》는 정약용의 둘째 아들이 강진에 있는 다산에게 쓴 편지로 이뤄진 책인데, 둘째 아들의 시선으로 다산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편지는 《우리 북동네 잘 있니?》

이 편지는 ‘한겨레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북한이탈청소년들이 쓴 것이다. 북한에 보낼 태양광 랜턴을 만들고, 각종 꽃과 채소 씨앗을 70알씩 넣어 선물을 보낼 때, 아이들이 북에 두고 온 지인과 가족과 친구들에게 쓴 편지를 모았다. 북한에 선물을 보낸다고 했을 때 아이들이 물었단다. ‘선생님! 김정은 국무위원장님께 편지 써도 돼요?’, ‘딱 친구가 있었는데 그 애에게 써도 되요?’, ‘할머니에게 쓸 거예요!’, ‘그곳에 혼자 계시며 울고 있을 엄마에게 쓸 거예요.’, ‘선생님! 이 편지 꼭 가는 거 맞죠? 내가 주소도 잊지 않고 있으니 봉투에 써넣을게요. 그러니 꼭 여기로 보내줘야 해요’라고.


이 책에 실린 편지들을 읽으며 북한 이탈 청소년들이 어떤 어려움을 딛고 이 땅에 닿았는지를 알게 됐다. 영화나 소설에서 보는 것보다 더 생생한 기억들이 아이들의 필체로 고스란히 담겨있어 마음이 싸했다. 그리고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을 그리는 마음은 우리가 우리의 가족을 그리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영화 <헌트>와 함께 읽으면 좋을 편지책들


영화 <헌트>는 많은 생각을 던져준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그 시대가 궁금하다면, 가슴에 뭔가가 꿈틀거린다면 이런 책들도 읽어보면 어떨까.


*

2022년 8월 15일. 컴퓨터 앞에 앉아 이 책들을 소개하고 있음에 감사하고 싶다. 민주화운동이 없었다면, 이런 책들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고, 설령 존재한다고 해도 이 책을 소개했다는 이유로 나는 어딘가로 사라졌을지 모른다. 그 야만의 시대를 견디고, 건너와 지금의 내 자리를 만들어준 분들께 마음을 담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영화_헌트 #이정재 #정우성

#감옥으로부터의사색  #신영복 #돌배게

#봄을기다리는날들 #안재구 #안소영 #창비

#우리북동네잘있니 #한겨레중고등학교 #책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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