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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비 Nov 16. 2022

엄마의 전화

22년 5월 11일

오늘 정말 시무룩한 일이 있었다. 화장실에 앉아서 한숨을 쉬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엄마에게 전화를 걸 뻔했다. 저번에도 그렇고 문득 생각해보니, 나는 심심할 때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엄마는 단 한 번도 내 전화를 받지 않은 적이 없다.   

  

 사실 이것에 대한 큰일이 있었는데, 우리 엄마는 내가 23살이던 시절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 했던 적이 있다. 그때의 트라우마로 나는 엄마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정말 ’ 지랄‘스럽게 소리를 지르며 엄마에게 전화를 꼭 받을 것을 당부했고, 그 이후로는 엄마가 내 전화를 받지 않는 일은 없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못하는 걸 알고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하려 했지만 전화를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다시 휴대폰을 닫았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고 해도 어느 정도의 선이 있다. 얘가 바쁠 수도, 또는 친구 나름대로의 일이 있을 수도 그런 여러 가지의 이유로 전화를 하지 못하거나 무작정 찾아가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런데 엄마는 그런 게 없다.  엄마는 한 번도 내 전화를 귀찮아하거나 –장난식으로 그만 좀 전화하라고는 했지만- 내가 찾아가서 싫어했던 적이 없다. 왜냐면 엄마는 나를 절대적으로 사랑했기 때문이다. 내리사랑으로만 느낄 수 있는 그것. 그 사랑을 주던 존재였기 때문이다.     


엄마의 휴대폰

 이제 나는 그냥 심심해서, 피곤해서, 짜증 나서, 기뻐서 마구마구 전화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엄마의 휴대폰을 해지했기 때문에, 그리고 또 엄마의 휴대폰 패턴을 풀지 못했기 때문에 엄마의 휴대폰은 없었던 것이 되었다. 얼마나 휴대폰 패턴을 풀고 싶었으면 엄마에게 패턴을 물어보는 꿈까지 꿨다. 꿈에서 엄마가 패턴을 가르쳐 주었지만 그 패턴이 맞는 일은 없었다.   

 

 친구들은 힘든 일 있으면 연락하라고 하지만, 나는 그것도 정도가 있다는 것을 안다. 어느 정도 선을 지켜가며 연락해야 된다는 것을 안다. 나는 이제 누구에게 전화를 해야 하지. 나는 어릴 때 엄마와 떨어져 무서운 고모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평생 어리광이라는 것을 부려본 적이 없다. 이제야 엄마와 그렇게 살 수 있었는데... 내게는 더 이상 절대적인 사랑을 주는 존재가 없다.   

  

 내 나이가 스물여섯, 내 나이 두 배면 오십둘. 보통 사람들은 그 나이 때 부모를 잃어도 이르다고 한다. 근데 나는 너무 일찍 엄마를 보냈다. 내가 더 이상 마음껏 어리광을 부릴 수 있는, 그리고 그 어리광을 받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그것도 갑작스럽게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한 채 없어진 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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