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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비 Nov 16. 2022

그날의 기억 (1/2)

22년 5월 13일

4월 28일 아침에 일 가기 전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는데, 엄마가 전화를 안 받았다. 그 전날 엄마가 안 그래도 아픈데 자꾸 스팸 전화가 와서 너무 시끄럽다고 무음을 해놨다는 것이 생각나서 그러려니 했다.


 그다음 날인 29일은 내 첫 월급날이었기 때문에, 엄마랑 맛있는 걸 먹으러 가려고 엄마에게 내일 월급 받는다고 말하려고 전화를 했는데 또 받지 않았다. 그날은 엄마 집에 안 가고 그냥 집에 가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가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에게 한시라도 빨리 가봐야 될 것 같은 기분이. 엄마가 쓰러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엄마에게 갔는데, 엄마가 다리가 너무 아프단다. 허벅지가. 나는 그냥 항암 후유증인 줄 알고 몇 번 주물러주면서 “엄마 내가 와서 다행이지.” 같은 말이나 한 게 다였는데, 엄마가 소리를 지르면서 아프다고 했다.


 엄마가 그렇게 소리 지르고 우는 모습은 처음 봐서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엄마에게 병원에 가자고 했는데 엄마가 고집을 피우면서 안 간다고 했다. 그런 엄마한테 너무 짜증 나서 “엄마, 제발 가자.”며 계속 그랬는데, 엄마가 병원에 가면 화장실 가는 것도 불편하고 거기 있으면 6인실을 써야 하니까 너무 시끄럽다고 안 간다고 계속 고집을 피웠다. 

 엄마가 그 정도로 싫다고 하면 평소의 나라면 그러냐며 그럼 좀 참아보라고 넘어갔을 텐데, 그냥 이상하게 나도 고집이 생겼다. 꼭 엄마를 데리고 병원에 가야겠는 거다. 계속 엄마에게 가자고 가자고. 그러다가 엄마가 계속 안 간다고 하니까 동생을 불렀다. 그리고 동생이 오자마자 바로 119를 불렀다.


 엄마는 근처 대학병원에 실려 갔다.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엄마에게 링거만 7개 이상이 들어갔다. 엄마가 항암을 너무 오래 해서 혈관도 안 잡히고, 며칠간 전혀 먹지도 자지도 못해 혈압 수치도, 당 수치도 너무 낮았다. 간호사 다섯 분이 1시간 동안 매달려서 겨우 주삿바늘을 꽂았다. 뒤늦게 온 응급의사가 엄마를 살펴보더니 나에게 일단은 가장 최악의 경우 ’ 괴사성 근막염‘일 수도 있다고 했는데 그런 확률은 극히 낮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이때만 해도 집에 그냥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냥 단순한 항암 후유증으로 인해서 근육통이 생긴 줄 알았다.


 그렇게 MRI? CT? 등 내 인생에서는 없을 것 같던 그런 단어들을 계속 듣고 사진들을 찍고 있는데 엄마가 지금 너무 혈압이 낮으니 승압제니 뭐니 내가 들어도 알 수 없는 것들을 놔야 된다고 했다. 엄마의 가슴을 뚫어서 호스를 넣고 나니 나는 안심이 되기는커녕 더 무서워졌다. 그런데 곧 무서운 표정의 간호사가 들어오더니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 괴사성 근막염‘

엄마에게 떨어진 병명은 ’ 괴사성 근막염‘이었다. 지금 당장 수술을 안 하면 즉사할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저번에도 말했지만, 감정의 변화가 전혀 없다. 그리고 이전에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팔이 저리곤 했다가 약을 먹으면서 그런 것이 사라졌는데, 간호사님에게 그 얘기를 듣자마자 팔에 소름이 쫙 돋으면서 팔이 저리기 시작했다. 

 믿을 수가 없었고 그냥 이 상황을 피하고 싶었다. 엄마는 교수님의 말씀을 들어보고 수술을 결정하겠다고 했지만, 간호사도 나도 모두 말렸다. 빨리 수술하자고 했다. 이 상황을 피하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았다. ’ 즉사‘라는 단어가 내게는 너무 충격적이고 두렵고 무서운 것이었다.     


 엄마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나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를 설득하라고 했다. 엄마는 지금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엄마를 내가 수술대에 밀어 넣었다. 

 

엄마는 아파하고 있는 와중에도 나와 동생에게 사랑한다고 했다. 앞으로도 영원히. 그리고 엄마는 결국 마지못해 수술실로 들어갔다. 혈압이 너무 낮았기 때문에 승합제를 억지로 많이 투여해서 들어갔다. 이때 엄마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엄마는 들어가기 전까지 나에게 그리고 동생에게 농담을 던졌다. 내가 눈앞에 있으면서 너무 말라서 못 찾겠다고 말했다. 동생이랑 시시껄렁한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엄마에게 인사를 했다.


 이따가 보자. 엄마.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나는 지금 바쁘게 살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서 미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냥 그때 엄마의 말을 들었더라면. 교수님이 오기 전까지 엄마랑 이런저런 얘기 하면서 차라리 대화를 더 나누었더라면. 혈압이 오를 때까지 기다렸더라면 엄마는... 

 지금도 살고 있지 않을까.


 내가 억지로 엄마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 같다. 엄마는 엄마가 그때가 마지막이라는 걸... 알았을지도 모른다.


 그때의 심정이 어땠을지 상상도, 아니 가늠조차 할 수 없다. 내가 죽인 것 같다. 나 때문에.

 내가 그냥... 엄마의 말을 들었더라면, 평소에 엄마 말 안 듣는 거 그날 하루만 들어줄 걸. 눈물이 난다. 내가 죽인 것 같아서. 


 내가 엄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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